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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4]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는 통합적인 우주에서 이분법적 구원론은 망상이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0715 작성일 2018-02-26 09:18 조회수 1247

죄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구원이란 말도 다양한 의미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특히 유대교와 이것에서 유래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믿음체계는 고대 경전과 전통에서 사용했던 이 말의 풍부한 의미들을 솔직하게 밝혀 주기보다는 얼버무리거나 가려버렸다. 동서양의 전통적인 종교들의 구원은 흔히 죽음 후의 천당으로 올라가는 것 또는 극락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구원은 죽은 후의 내세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에서 우주 밖의 다른 세계는 없으며, 삼층 세계관의 지옥천당도 없기 때문에, 구원은 현세적이고 현실적인 의미가 되어야 한다. 믿음체계들이 주장하는 내세적인 구원은 21세기에 더 이상 효력이 없다.

 

필자의 멘토인 영국의 신학자 돈 큐핏은 구원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기독교는 스스로 구원의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구원의 능력을 상실한다면 더 이상 참된 종교라고 할 수 없다. 그 종교를 통해 구원을 얻지 못하는 종교를 참된 종교라 할 수 있겠는가? 종교란 형이상학이 아니고 구원이며, 구원은 자아의 상태이다. 구원은 주관적이거나 실존적으로 경험되어 자신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객관적인 종교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종교적 진리는 사변적이거나 서술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이고 사적인 구원의 체험은 일반적이고 공개적인 체험으로 강요될 수 없다. 어느 특정 종교 또는 교단의 교리적인 구원론이 온 인류의 구원론이 될 수 없다. 진화과학의 시각에서 전통적인 종교들의 구원론 즉 내세론을 살펴보면 세 가지 심각한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1) 내세를 강조하는 기존 종교들은 필수조건과 보상의 종교로 둔갑했다. 즉 믿음체계가 만든 필수조건들에 순종하여 천당에 갈 수 있는 사람과 조건들을 따르지 않아 천당에 갈 수 없는 사람으로 분리하는 이분법적이고 부족적인 종교로 전락했다; (2) 내세를 강조하면서 종교의 내부인을 우대하고 외부인들을 차별하는 우월주의에 빠졌다. 즉 내부인은 구원받고 외부인은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주적인 종교가 못된다; (3) 내세를 강조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일보다 다음 세상에 메어달려 죽음의 두려움과 보상의 욕심 속에서 이기적으로 산다. 따라서 인종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빈부차별, 생태계 파괴로 인류사회가 위기에 처한 상황을 무시하거나 모른체한다. 더욱이 이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분명히 말하자면, 21세기에 구원받는다는 말의 참된 의미는 믿음체계들이 주장하는대로 죽은 후에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천당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진화과학은 전통적인 종교체계들의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인 구원론을 재해석하여 21세기에 적합한 우주적인 의미를 밝힌다. 진화과학에 기초한 진화영성은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웰빙과 우리의 모든 관계들과 전체적인 통합을 위협하는 어두운 세력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이 3억 년 전 파충류뇌로부터 이어 받은 탐진치 기질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나의 참된 본성이 아니다. 그 본능은 인간의 뇌에서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으며, 바라기는 앞으로 진화과정에서 우리의 뇌로부터 사라지기를 바랄뿐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예외없이 파충류뇌를 이어 받은 모든 인간은 타락의 유혹을 경험한다. 대뇌생리학자인 폴 맥클린은 인간의 뇌구조를 삼중뇌(Triune Brain)라고 밝혔으며, 인간의 뇌는 신의 실패작이라고 창조론을 비난했다. 인간의 뇌는 6천 년 전 완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수억 년 전부터 물고기뇌에서 시작된 진화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다. 인간의 뇌가 자아의식을 지니고 인간다운 것은 가장 늦게 근세에 진화된 대뇌신피질이 발달한 결과인데 타락의 유혹과 이성 사이의 갈등은 인간의 뇌에 파충류뇌와 포유류뇌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과 본능의 상극 때문에 고통과 번민으로 괴로워 한다.

    

전쟁, 테러, 질병, 빈곤, 생태계 파괴, 인종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빈부차별로 인간의 선함과 존엄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오늘 온 인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구원의 의미가 절실히 필요하다. 21세기에 인류에게 새로운 구원의 대안은 기존 종교들의 삼층 세계관적 구원론이 될 수 없으며, 진화신학이 밝히는 경계 넘어 우주적인 구원론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진화적 종교는 작은 개체들과 작은 개체들이 모인 작은 전체들(holons)과 작은 전체들이 모인 더 큰 전체들과 더 큰 전체들이 모인 궁극적인 실제(현실)-전체적인 실제(현실)-통합적인 현실(실제)를 위한 구원을 제안한다. 따라서 진화적인 시각에서 구원은 무작정 믿어야 하는 교리적 믿음이 아니며, 사변적이거나 서술적인 것도 아니며, 내세에 대한 것도 아니며,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체험하는 실천적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죄를 체험하듯이 구원을 체험한다. 구원은 신학적, 철학적, 전문적으로 복잡할 필요가 없다. 구원은 세속적이며 지극히 단순하고 현실적이다. 인습적인 종교의 믿음체계들이 구원에 대한 특정 교리를 어떻게 주장하든지, 우리 모두는 일상생활 속에서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비겁함이 용감함으로, 비굴함이 떳떳함으로, 오만함이 겸손함으로, 이기심이 자비로움으로, 불의함이 정의로움으로, 원한이 용서로, 미움이 사랑으로, 편견이 포용으로, 불신이 신뢰로, 죄책감이 책임감으로 변하는 다양한 구원을 스스로 체험하며 살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의 패러다임의 묵은 렌즈를 새로운 패러다임의 렌즈로 바꾸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구원, 자신을 기만하고 자기만족의 노예생활을 청산하는 구원, 부인하던 것을 인식하는 구원이 매일매일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다.

 

진화적 기독교가 밝히는 만인을 위한 구원의 의미는 이미 역사적 예수가 선포한 복음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종교적 정치적 체계들의 통제와 착취와 억눌림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 참된 구원이다. 내세지향적인 믿음체계들의 구원론은 역사적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살았던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현세적인 구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역사적 예수의 구원론은 내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예수는 극히 현실주의자였으며 기존의 종교 경제 정치 사회 제도들에 항거하여, 이 땅 위에 공정한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회개혁가였다. 예수의 하느님은 하늘 밖에 존재하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사람들의 내면으로부터 느끼고 외부로 드러나는 영적 실제(Reality)였다. 예수의 구원은 작은 개체의 개인적인 구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구원의 완성은 더 큰 전체 즉 불의하고 불공평한 세상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죄로 물들었으니 멸망해야만 하고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예수의 구원이 아니었다. 예수의 하느님은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했다. 이 세상은 오직 하나의 세상이다. 인류에게 이 세상은 멸망해서 없어지지 않는 유일하고 영원한 세상이며 다른 세상은 없다.

 

진화신학의 시각에서 구원의 의미는 인간의 존엄성과 모든 생명의 고귀함이 존중되는 것이며, 상처받은 인간 관계들이 치유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구원의 체험은 나의 실수와 불행과 절망을 부정하고 부인하기 보다 겸손히 받아들이고, 나의 삶에 대해 100% 책임지고 이기적인 욕심없이 사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적인 구원의 체험으로부터 사랑과 평화와 정의의 정신이 자연적으로 흘러나와 사회적인 구원이 성취된다. 진화과학을 이해하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한과 원망과 미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죽음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없이 자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결론적으로 21세기 진화신학의 구원의 참된 의미는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에 기초하여 인간의 본성을 겸손하고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우주진화 이야기는 인간들에게 좋은 소식(복음)이다. 우주진화를 인식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이고 구원이다. 따라서 구원의 체험은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이 실천적으로 존중되고,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의 심층적인 삶의 의미와 목적이 몸과 마음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더 읽을 책>

 

로버트 펑크.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존 도미닉 크로산. 예수: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

돈 큐핏. 떠나보낸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_________.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Hefner, Philip. The Human Factor: Evolution, Culture, and Religion. Fortress Press, 1993

Sandburg, Carl. Cornhuskers. Leopold Classic Library, 2016

MacLean, Paul D.. The Triune Brain in Evolution. Springer, 1990

Sagan, Carl. The Dragons of Eden. Ballantine Book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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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18-03-0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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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본문에 소개된 이분법적 구원론을 쉬운 말로 하면, 우리(나)만 구원받고 우리(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은 구원은 커녕 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다는 편협적이고 부족적인 발상입니다.

이분법적 구원론을 믿는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 중에 종교와 믿음이 다른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망상에 빠져있습니다.

하느님이란 말의 의미는 경계 넘어 모든 생명들과 자연을 골고루 보호하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종교체제가 만든 교리와 공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고 암송해야 구원받는다는 믿음은 고대사회에서 부족적인 생존의 수단으로 창안된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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