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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드림 안티팬들 모시고 부산 시내 돌아다니기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10088 작성일 2017-06-05 19:33 조회수 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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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년 전 늦가을 어느 날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마약딜러가 살해됐다. 

소나기가 쏟아지던 그 날 오후,

마약딜러에게 접근한 살인자는 코트 안에 감추고 있던 일본도를 꺼내들더니 피살자의 머리를 조준하고 위에서 아래로 칼을 휘둘렀다.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은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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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화 속 이야기다.

하지만 계단에는 여전히 자주빛으로 탈색한 핏자국이 남아있는 듯 하다.


아래 위 각각 20 개 씩 40 개로 이루어진 계단 아래 공터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만남의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찾기가 쉬운 장소는 아니었다.

만남의 장소 찾아 헤메다가 만날 사람 먼저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지하철 1 호선 중앙역에서 내려 홀수 출구로 나가면 된다.

11 번 출구가 계단에서는 가깝지만, 13 번 출구로 나오면 유명한 부산 빵집 백구당에 들르기 좋다.

이 빵집에서 빵하고 음료수를 사들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아코디언 켜는 나그네 옆에 앉아서 옥수수빵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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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은 원도심이라 불리우는 부산 중구에 있다.

신간이 아니라면 대형서점에서 책을 살 필요는 없다.

고전이나 출간된지 오래된 책은 중고서점에서 사도 된다.

알라딘 같은 중고서점은 교보나 영풍처럼 잘 organized 되어 있어서 원하는 책을 찾기도 쉽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가는 이유는 일반 중고서점에 가는 이유하고는 조금 다르다.

책을 사러 간다기보다는,

보물이나 건질까 하는 기대감으로 찾는 장소가 여기인 것 같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레이더스같은 보물사냥꾼의 안목과 호기심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절판되어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찾아낼 수도 있고, 

소장가치가 있는 고서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고서를 구입해서 SNS에 올리면 소더비즈 경매장 중개상로부터 수 백 만 달러 낙찰보장 오퍼를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스펨메일함으로 들어오는 메일도 잘 확인해야 한다.   


다만 경매업자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을 정도의 고서를 얼떨결에 구입했다면 

문화재관리법 등 법률에 의한 소유권 제한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문화재 전문 변호사와 상의해야 한다.  


쇠락해가는 서울 청계천 중고서점 거리에 비한다면 

보수동 책방골목은 문화공간으로서의 명성이나 기능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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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골목 공터 바닥에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이 새겨진 석판이 자리잡고 있었다.


책방골목이 전쟁당시 외국잡지 판매상으로부터 형성됐고,

책이란 한 나라의 언어를 뚸어넘는 의미를 가지는데 왜 훈민정음 석판이 저기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 주제에서는 좀 벗어나지만,

어쨌든 훈민정음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언급하고 넘어가자.    


실을 발견하고 사건의 본질을 추적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 중 하나가 민족주의 같은 집단적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훈민정음 제작의 동기와 출발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적어도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배운 적이 없다.

애민정신이 투철했던 세종대왕께서 글을 몰라 뭐가 죄인지도 모르는 백성들이 불쌍해서 배우기 쉬운 한글을 창제했다고만 알고 있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종천법에 근거한 가혹한 신분질서와 대명 사대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동시에 확립됐던 세종조의 시기적 성격하고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었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들은 왜 한 명도 없었을까?       


한국 국어학계와 국사학계의 맹목적 민족주의 풍토를 최초로 용기있게 비판한 사람은 원로국어학자 이숭녕이었다.

그는 그동안 숨겨져 왔던 훈민정음의 출생의 비밀을 폭로했던 거의 유일한 학자였다.

그가 은퇴한 원로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당시에 무자비한 집단 왕따를 당하고 국어학계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매장되었을 것이다.    

요즘은 관련분야 연구자들이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논문으로 발표해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부족주의적 환상과 고집을 한꺼풀씩 걷어내고 있는 문명화가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이제야 비교적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조선관리들에게 중국어 발음을 훈련시킬 수 있는 발음기호를 개발하라는 명나라 정부의 요구에 따라 당시 조선정부가 집현전을 다시 설치하고 표음문자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명황제 홍무제는 '홍무정운'을 만들었다.

지방에 따라 발음이 제각각인 명나라에서 새로운 음운 표준을 제작한 것이다.

홍무제는 홍무정운을 명나라 내부 뿐 아니라 주변 제후국들에게도 반포했다.

새로운 음운표준에 따라서 조선의 사신과 역관들은 중국어를 올바로 구사해야 했고,

명에 보내는 외교문서도 명의 음운표준 격식에 따라 작성해야 했다.


조선정부에게 중국말 표준어의 소리를 나타낼 수 있는 표음문자 체계 개발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긴급과제가 되었다.

언어에 천재적 감각을 지닌 세종이 거의 혼자 개발하다시피한 표음문자 체계를 이용하여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명황제 홍무제가 편찬한 '홍무정운'의 해석이었다.

당시 외교관들을 비롯한 중국 표준말 습독관들은 홍무정운의 표준 한어 발음을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연습했다.


처음 만들게 된 동기야 어찌됐건,

만들어놓고 보니 훈민정음 발음기호체계는 조선 언어권의 보물같은 문자체계로 빛나고 있었다. 

세종이나 집현전 학자들조차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였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인정한다고 해서

코리아의 독자적 문자체계로 승화한 한글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폄하되거나 훼손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를 비롯한 라틴문자의 기원이 현재 IS 가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 이라크 일부 지역 사람들 조상이 만든 문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현재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언어 자긍심에 손상을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비확대정책을 생각하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싸르니아는 여전히 세종대왕을 지지한다.


이막동 o/ 이막동 o/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고, 쓸데없이 미화하거나 과장할 때 오히려 신용과 명예가 동시에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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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 있다면 해운대가 그런 곳이다.

어마어마하게 변했다.

더베이 101 에서 보는 스카이라인은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보는 로어맨하튼의 모습과 비슷하다.

업무용 빌딩이 아니라 대부분 거주용 레지던스 건물 처럼 보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과거에 해운대에 있는 건물다운 건물이라곤 동백섬 근처에 있는 조선비치호텔과 백사장 반대쪽에 있는 극동호텔이 전부였던 기억이 난다.

조선비치호텔은 웨스틴조선이라고 이름을 바꾼 채 아직도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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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가 영화 '국제시장' 때문에 분란에 휩싸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보증금과 월세를 둘러싸고 건물주와 세입자 (가게 운영자)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는데, 부산광역시가 중재에 나섰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듣기로는 최근 새 세입자가 들어왔고, 업종도 옷가게에서 잡화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역사왜곡과 작품성 양면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국제시장'은 역시 예상했던대로 중대한 오류를 저질렀다. 

흥남항구의 마지막 철수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피난민 승선허용 결정을 내린 사람이 미국군 제 10 군단장 Almond 중장인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당시 배에 선적되어 있던 무기와 화물을 바다로 투하하고, 대신 그 공간에 피난민을 태워 데려가기로 결정한 사람은 Leonard LaRue 선장이었다.

같은 배에 승선하고 있던 미국군 제 10 군단 민사부 고문 현봉학 씨가 Almond 에게 피닌민 승선을 부탁한 것은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이지만, 

Almond 중장은 모든 결정권은 선장에게 있으니 선장에게 부탁해보라고 결정권과 책임을 미루었다.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기 전에,

LaRue 선장은 부두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피난민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미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선장은 결단을 내렸다.

선장의 명령에 따라 무기를 비롯한 전쟁물자가 바다로 투하됐다. 

패잔병 후퇴병력을 이끌고있던 Edward Almond 중장은 아뭇소리 안하고 선장의 결정을 묵인했다.  


12 월 21 일 밤부터 22 일 오전 11 시 출항할 때 까지,

배의 빈자리를 1 만 4 천 여 명의 피난민이 가득 메웠다.

그 피난민 중에는 한국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끼어 있었다.


LaRue 선장은 훗날 이런 말을 남겼다.     

  

"I think often of that voyage. I think of how such a small vessel was able to hold so many persons and surmount endless perils without harm to a soul. And, as I think, the clear, unmistakable message comes to me that on that Christmastide, in the bleak and bitter waters off the shores of Korea, God's own hand was at the helm of my ship"


선장이기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 춥고 무시무시했던 흥남항구에서부터 경상남도 장승포까지의 특별했던 항해 경험이 그의 남은 여생의 향방을 결정했을거라는 느낌이 든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 선장을 그만 둔 LaRue 씨는 뉴저시 주의 한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40 여 년의 남은 생애를 보냈다.

그는 9.11 공격이 발생한 지 한 달 남짓 후인 2001 년 10 월, 87 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그를 전혀 엉뚱하게 묘사해 놓았다

영화에서는 Almond 중장이 결단을 내리고 LaRue 선장에게 이 배에 몇 명을 더 태울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선장은 "'Sir" 라고 물으며 군단장 Almond 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여기서 "Sir?' 는 군단장님? 이라고 번역하면 안되고 "당신 미쳤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라고 번역해야 한다.


영화 '국제시장' 제작진은 기회가 되면 LaRue 선장의 묘지에 가서 정중히 사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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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ata  |  2017-06-1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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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pbaoard님은 아마 CN Dreams traffic 최고의 공신입니다. ㅎ

부산 참 다시 가봐야 겠네요. 어렸을적 잠시 살았던 기억이 희미희미 합니다.

참 노래선곡은 탁월하십니다. 붉은 꽃 드립니다.

clipboard  |  2017-06-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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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사셨군요.
저는 부산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은퇴한지 오래인 고종사촌누나가 (나이는 거의 모친뻘인)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주 놀러갔던 도시이기도 하구요.

두 번 째 노래는 사십계단과 관계가 있지요.
사실 저 노래는 영화 '인정사정볼 것 없다'가 나오기 전 지강헌 사건으로 먼저 유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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