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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쌀밥의 연대기를 읽는 저녁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10163 작성일 2017-07-01 23:30 조회수 1386

쌀밥의 연대기를 읽는 저녁 / 허영숙


압력밥솥이 푸- 우 하고 긴 숨을 빼는 순간
집 안 가득한 쌀밥냄새,
허기와 맞닿은 밥 냄새가 한 질의 전집 속에 있는
나를 꺼내 페이지를 넘긴다.

그 무렵, 아버지가 지게 위에 달빛을 한 짐 지고 내려오실 때까지
우리의 저녁은 유예되었다.
담요가 덮인 구들장에서 우리들의 까끌한 보리밥이 보온되고 있을 때,
부엌에서는 아버지의 술밥이 익고 있었다.
너른 채반에 꼬들꼬들하게 식어가던 흰 술밥을
몰래 한 줌 덜어 꼭꼭 씹으면
혀끝에 찰싹 달라붙던 츄잉껌의 기억,
보리밥 대신 하얀 술밥을 품고 익어갈 술독이 되고싶었던 간절한 저녁.

간혹 손끝을 박기도 하던 봉제공장에서 월급을 타는 날이면
초코파이를 사들고 오던 열 여덟의 누이에게도 쌀밥의 기록이있다.
누이가 청춘을 박을 동안 식구가 많은 우리의 밥상에는
보리밥 위에 소복하게 덧 얹어진 하얀 쌀밥으로 인하여 맛보았던
물에 말지 않아도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던 머쉬멜로우의 저녁,
지게에 얹힌 달이 뱃속에 만월로 떠있던
포만의 저녁이 그 무렵에 있었다.

식구들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TV에서 내보내는 지루한 유럽축구를 보고있는 늦은 밤,
날마다 술밥보다 더 고소한 뜸이 드는 저녁을 지나와도
밤늦도록 누구의 츄잉껌도, 머쉬맬로우도 되지 못하고 굳어가고 있는 쌀밥,
혼자 입안으로 떠밀어 넣어도
속은 여전히 그 때의 텅 빈 저녁과 같다.
아무래도 빈 것은 뱃속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푸- 우 하고
긴 한 숨으로 빠져나갈 때
창 밖에는 쌀밥처럼 하얀 싸라기눈이 맺음말로 내리고
나는 나를 덮는다.





 

경북 포항 출생
釜山女大 졸
2006년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시집, <바코드 2010> <뭉클한 구름 2016>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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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쌀'은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음식의 의미보다는
삶의 전망을 도출(導出)하게끔 하는, 끈적한 질료이기도 하다

요즘에야, 쌀이란 건 흔해져서... 예전에 그 배고팠던 시절의 의미는
이제 찾아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가난했던 우리들의 아픈 기억들이
현실에서 중첩(重疊)될 때마다 스스로 무거워지는 의미이기도 하고

츄잉껌의 달콤함과 머쉬멜로우의 부드러움을 간직했던 쌀밥...

과거의 굶주림과 헐벗음의 아픈 기억들이 과거로 물러가더라도,
쌀밥이 지녔던 만월(滿月) 같은 포만에의 기억은 우리의 가슴 속에
늘 아련한 추억으로 머물러 있겠다

다소, 긴 호흡의 시이지만... 현재의 빈 가슴 같은
무덤덤한 일상의 삶 속에서 충만한 가슴으로의 복귀를 바라는
시인의 조용한 의지가 참 고와 보인다


                                                                               - 희선,


 
 Nostal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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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꾸며  |  2017-07-0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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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머리에서의 수다가 식탁 안의 침묵으로
때때로 울리는 누군가와의 카톡 소리만 맴도는 화려한 식탁에서
쌀 밥의 화려한 영광은 이미 식탁 밑의 개밥처럼 떨어진지 오래....

'아무래도 빈 것은 뱃 속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수다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네요

안희선  |  2017-07-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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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감상이 좋은 시에 민폐를 끼친 감도 있습니다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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