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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는 종교-권력-언론-재벌의 침묵의 카르텔을 깨트린 희망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9769 작성일 2017-01-19 10:10 조회수 1479

한겨레 신문 휴심정에 소개된 길희성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글에서 길 교수는 국민들의 촛불집회는 한국의 미래의 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아울러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못본체 할 수 없는 이웃 미국의 대선에 대해서도 신선한 해석을 내렸습니다. 저는 길 교수의 글을 통해 한반도와 북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안한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해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길 교수의 글은 보수-진보, 종교인-무종교인, 유신론자-무신론자, 기독교인-비기독교인의 경계 넘어 양심과 상식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나서 개인적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조국의 앞날을 위해 희생적으로 용감하게 촛불 집회를 일으키는 에드몬튼 교민들과 조국의 국민들에게 찬사와 감사를 보냅니다. 길 교수의 글을 함께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종교학자인 길 교수는 서울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쳤고, 그의 대표적인 서적으로 보살 예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현암사)이 있습니다. 지금은 심도학사 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무수한 차이 넘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정의의 힘: 종교-권력-언론-재벌의 침묵의 카르텔 깬 희망>

 

어느 해이건 다사다난하지 않은 때가 없지만 지난해에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히는 일이 전국을 강타했다. 사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미국 대선에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미국인들 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남북한 관계는 경직될 대로 경직되었고 통일의 꿈은 점점 더 멀어 만 간다.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젊은이들은 ‘헬 조선’을 외치면서 나라를 아예 떠나고 싶다고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시작된 비극은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고, 세계는 언제 어디서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한 곳이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호하고 있는 신고립주의와 극우 민족주의 세력 역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면서 세계 일등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만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신고립주의가 문제의 해결은 못된다. 더군다나 지금껏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온갖 혜택을 누렸던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가 이제 와서 태도를 돌변해서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로 돌아선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이래저래 강대국에 의해 휘둘리는 약소국들만 당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인류역사의 필연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국내외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절망감마저 느끼게 된다. 미국 대선 패배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했다는 말, “내일도 태양은 뜰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겸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이 세계 최강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그의 실망이 얼마나 컸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상상해 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잊고 살기 쉬운 깊은 뜻이 담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최 아무개 덕이라는 역설:

최근에 우리는 전국적인 촛불 시위를 통해 기대하지 않았던 값진 수확도 있어서, 분노 가운데서도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 때문에 구겨진 나라의 체면과 한 사람으로 인해 받은 온 국민의 마음의 상처가 수백만이 들어 올린 촛불 때문에 그나마 보상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나라가 안개 정국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헌재의 판결이 앞으로 어떻게 내려지든, 우리는 나라의 장래에 대해 ‘희망’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안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이 최 아무개 덕택이라는 말하겠는가? 문자 그대로 여야, 진보 보수, 남녀노소, 신분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민심이 천심이라는 오랜 진리를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양심의 소리가 하느님의 음성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촛불 집회가 일종의 ‘종교적 행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참여한 사람들에게 소중한 ‘종교적 경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근대사회로 오면서 나라의 국교(state religion)라는 것이 사라지고 종교가 개인의 선택에 맡겨지고 다원화되면서, 사회가 개별종교들을 초월해서 구성원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이른바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것이 자연히 대안으로 형성되게 되었고, 계몽주의 사상가들이나 현대 종교학자들에 의해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미국의 시민종교는 개신교, 가톨릭, 유대교의 차이를 넘어 미국인들로 하여금 어떤 공통의 미국적 가치를 공유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시각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한국은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유교라는 종교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비록 ‘시민종교’라고 불릴만한 것이 눈에 잘 뜨이지는 않지만 항상 존재해오다가, 이번 촛불시위를 계기로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더럽다고 해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게 정치:

나는 이를 계기로 해서 그동안 시민종교,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주창하는 이른바 이성종교(Vernuftreligion) - 기독교의 초자연주의적 신관과 계시 신앙을 대신해서 인간 이성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진리와 도덕성을 모든 종교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 에 대한 종래의 이해가 달라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성종교나 시민종교가 개별종교들(실정종교, ‘자연법’과 구별되는 ‘실정법’이라는 개념이 있듯이)이 지니고 있는 뜨거운 종교적 열정이나 감동이 없는 미지근한 종교, 지나치게 합리화된 싱거운 종교라는 비판을 받아 왔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보면서 시민종교도 기독교 같은 특정종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수백만이 외치는 함성에는 종교 특유의 성스러움이 느껴졌고, 사람을 매료시키는 강한 마력과 흡인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뿐 아니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무수한 차이들을 넘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경험에는 분명히 어떤 초월적인 종교적 요소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십만 명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구호에서 사람들은 분명히 개인이 지니고 있는 이런저런 관심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고 개인들이 겪는 천차만별의 운명 또한 사소한 우연에 지나지 않다는 것, 심지어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강화에 사는 나의 가까운 친구는 먼 길을 마다 않고 5번이나 집회에 참여했다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특히 요즘 학생들과 청년들은 사회의식이나 정치의식 같은 것이 없고 연예인들을 둘러싼 루머나 잡담에나 관심이 있고 취직과 스펙 쌓는 일에만 열심이라는 비판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일등 국민’에 ‘삼등 정치’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면서 그런 생각도 근거 없는 자기비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미국 국민의 정치수준이 우리만도 못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 대해 너무 자조적이거나 비판적일 필요가 없다. 정치가 ‘더럽다’ 해도 관심을 접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치란 좋게 말해. 가치를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고 비판정신이 마비된 종교: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이 단지 우리 정치계만이 문제가 아님을 곧 알 수 있다. 우선 최태민 같은 사람이 사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풍토를 조성한 우리나라 종교계 일반의 문제가 있고, 오래전부터 이런 엄청난 비리를 알고 있었을 것 같은 데도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부와 권력을 탐해 온 우리나라 권력층, 언론계, 폴리페서들, 그리고 정보력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우리나라 재벌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종교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는 역시 우리나라 종교계와 신앙풍토에 무게를 두고 싶다.

 

우리나라 종교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고 도덕적 비판정신이 마비된 풍토에 있다. 특히 종교적 신앙과 윤리적 관심이 따로 놀면서 도덕적 비판을 감당할 수 없는 한심한 종교집단들이 독버섯처럼 마구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 큰 문제다. 지금 이 순간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종교에 놀아나고 종살이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새삼 종교란 것이 정말 무서운 것, 위험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기야 유독 우리 종교계만 그렇겠냐는 생각도 든다. 지난번 미국 대선 때 트럼프 같은 사람이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우기던 구역질나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런데 더 한심한 사실은, 당시 공화당 후보 12명 가운데 카터 전 대통령 같이 누가 보아도 복음주의자라 불릴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서로 복음주의자라고 우기는 꼴이 가관이었다. 내가 무슨 진실한 신자라고 착각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런 뻔뻔한 짓은 하지 못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여하튼 그런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이고 미국 기독교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인들의 낮은 정치의식에 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샌더스가 말하는 가난한 자에게 깃든 영성: 그러나 이와 매우 대조적인 장면도 지난 번 미국 대선에 있었다. 민주당 후보 지명을 얻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과 치열한 경합을 벌리다가 고배를 마신 샌더스 상원의원의 경우다. 아마도 선거운동 기간이 한 2주 정도만 더 있었더라면 역전 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패배는 아쉬운 일이었다. 어느 날 나는 CNN 방송이 타운 홀 미팅 형식으로 주최한 후보 토론회를 보게 되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샌더스에게 당신의 종교에 대해 알고 싶다는 질문을 했다. 마음속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던 나는 순간 약간 놀랐다. 그가 유대교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이 질문이 결코 샌더스에게 유리하거나 우호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나를 감동시키에 충분했다. 질문을 듣자마자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말하기를 “나는 정말 깊이 종교적인 사람입니다”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랐고 한 층 더 긴장해서 그의 다음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나의 종교, 나의 영성은 복음주의자들과 달리, 어떤 소녀가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간다거나, 어느 할머니가 돈이 없어서 약을 못 사먹는다면 나의 종교, 나의 영성은 바로 그런 데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유대교 영성의 가장 숭고하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비록 대권후보자로 선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미국사회 일반인들의 의식을 바꿀만한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사회의 정치판도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유대교 영성의 특징과 장점은 일찍이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윤리적 유일신 신앙‘(ethical monotheism)이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 나는 샌더스 상원의원의 모습에서 이런 구약성서 예언자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예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유대교는 신학이나 교리에는 별 관심이 없는 종교이고, 우리가 얼마나 율법에 나타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가에 있다. 경건한 유태인이었던 예수 자신도 신학이나 교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의 관심은 오로지 율법의 참 정신에 따라 사는 삶에 있었다. “누구든 하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다”라는 그의 말 그대로다. 정의의 예언자라 불리는 아모스는 “너희가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여라. 법정에서 올바르게 재판하여라”고 외쳤다. 구약 예언자들에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정의를 사랑하는 것이고, 정의의 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이다. 정의론의 저자로 유명한 철학자 존 롤스에게 큰 영향을 준 칸트는 말하기를, “만약 정의가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정의는 인생의 궁극적 가치, 즉 지고선이라는 말이다. 정의는 도덕, 정치, 종교 모두가 추구해야만 하는 궁극적 가치이다. 정의를 외면하는 정치와 종교는 현대 세계에서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런 정치, 그런 종교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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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17-01-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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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종교부 조현 기자가 길희성 교수의 강좌에 참석한 후 그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씨엔드림 독자들께서 한국을 방문하시면 서울의 새길교회 또는 강화도의 신도학사를 방문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독일에서 히틀러에게 쫓겨나 미국의 유니언신학대와 하버드대 등에서 가르친 신학자 폴 틸리히(1886~1965)는 “기독교만으로 신학을 하는 신학자는 내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폴 틸리히는 기독교 밖과도 대화하지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자극으로 이후 동서 종교간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다종교국가임에도 기독교와 불교는 아성을 굳건히 지키는데서 한발도 나아가려하지 않는다. 각 종교는 그 원인으로 상대탓을 들지만, 근본주의적 신앙이 지배하는 보수기독교에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적대시하는 배타주의적 이원론에, 불교에선 붓다의 가르침만이 최고이고 다른 것은 하등하다는 자만감에 갇혀 있기는 매일반이다.

그런데 이런 아성을 과감히 뚫고 나온 선구자가 있다. 인천 강화도 내가면 오상리 심도학사(尋道學舍) 길희성(69) 원장이다. . . 길 교수는 크리스찬이다. . . 종교학자인 그는 불교•인도철학자 몫으로는 유일한 학술원 회원일 정도로 불교학에서도 손꼽히는 학자다. 기독교 환경에서 자란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재학 때까지도 한경직 목사가 이끄는 영락교회의 ‘보수적’ 신자였다. 그러나 세상을 알면알수록 정통신학이 감옥처럼 느껴져 숨이 막혀왔다. 그 때 빛이 되어준 게 폴 틸리히와 영국의 다원주의 신학자 존 힉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예일대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허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했다. 하버드대에서 불교 원전을 읽을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팔리어까지 배웠다. 그의 박사논문 주제는 고려의 대선사 보조지눌(1158~1210)의 선사상이었다. 그는 서울대를 거쳐 서강대 교수를 하던 1980년대 보조국사의 본찰이던 전남 송광사에서 법정 스님, 김지견 박사 등 당대 최고의 승려 및 불학자들과 함께 ‘보조국사전집 편찬위원회’에 참여했다.

기독교 내에서도 그는 ‘새로운 길’을 연 개척자였다. 1980년대 한완상 교수 등과 함께 서울 강남 삼성동에서 목사가 없고, 교회 건물이 없고, 교단이 없이 대안을 모색하는 새길교회를 이끌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5월 서해바다가 보이는 고려산 자락 300여평에 세미나동과 숙소동 두동으로 지어 개원한 곳이 심도학사다. 16명이 동시에 숙박하고 공부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심도학사에선 주말 2박3일간 △기독인을 위한 불교강좌 △불자를 위한 그리스도교 강좌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신앙 △초종교영성론 등의 주제별 강좌와 함께 , , , , , , 등의 고전읽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선불교에 대한 그의 강의는 직독직해에 머물지 않았다. 선(禪)의 특성 그대로 즉각 본성을 직시하게 한다. “선 불교는 마음을 비우는 공부다. 즉 이를 위한 내려놓기, 덜기, 벗기, 비우기, 죽기다.” 그가 진행하는 수심결 강좌에서 선(禪)의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면서 ‘마음 보는 법’을 소개한다. 맑고 투명한 거울은 ‘진심’(眞心)과 같고, 이 거울에 미치는 생각들이 ‘망심’(妄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새가 허공에 달듯이 거울에 비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보라는 것이다.

길원장은 “모든 종교 모든 영성은 초월적 경지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된다. 그런데도 그에 이르는 명상법을 무시한 게 기독교의 맹점이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크리스찬 수강자들을 위한 사소한 배려를 잊지않는다. 그는 “가족들끼리도 여행 중에 종종 사찰을 방문할 때면 독실한 크리스찬인 처형은 사찰 벽에 이상한 것들이 그려져 싫다고 아예 문안에 들어가려고도 하지않는다”며 “이런 상(相•모양)은 무상(無相•만물의 본체는 공으로 형체가 없음)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시청각 자료로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그의 강의가 승려나 불교학자들과 남다른 점은 불교와 기독교, 동서사상을 회통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눈은 하느님이 나를 보는 눈과 같다.” 그는 마이스터 에카르트(1260~1327)의 말을 통해 참선의 정수를 전달한다. 에카르트는 그가 기독교와 선불교가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하게 한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이자 수도자다.

기독교내에서 문자를 액면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와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는 불교적 근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초기불교의 공(空•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사상은 대승불교의 불성(佛性)사상으로 발전했다. “공사상만으로 부족해 불성사상이 나온 것이다. 텅 비어있는 가운데도 투명하고 환한 빛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불교를 공부한 이들이 불성사상은 붓다가 말한 게 아니라며 배타한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2천년 불교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초기 불교 이후 발전 역사는 모두 잘못됐다는 것인가.”

길원장의 강의의 백미는 불교의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그의 화두는 선악과 윤리다. “기독교적 선악 이분법은 니체를 질리게 한 것이기도 하지만, 불교는 선악시비를 넘어서는 것을 지향하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돼 윤리의식이 약해졌다. 주자와 정도전이 불교에 대해 비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전후 독일의 사과와 달리 일본이 아무런 사과 없이 저렇게 나가는 것도 윤리의식의 부재 때문으로 설명했다. 그는 또 초월이 중시되는데 반해 불교적 윤리관을 확고히 하지 못했기에 불교에서 사회 참여의 논리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선악초월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무아(無我)설’에 대해서도 “히틀러와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이 죄와 공에 대해 제대로 징벌이나 보상을 받지 않고 똑같이 무로 돌아가는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독재자처럼 불의한 사람이 영원히 승리하는 것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의 강좌를 들은 한 기독교인은 “ 기독교를 통해서 불교를, 불교를 통해서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 스님들과 불자들과 만나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한 것과 달리 불교쪽 참여자가 거의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대에 대한 편견이나 대화에서 기독교보다 오히려 불교가 많이 닫혀있는 것 아닌가”고 물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7-01-2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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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보니, 또 한 분의 위대한 신학자가 탄생하신 것 같군요. 길희성 선생은 훌륭한 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분이고, 캐나다가 낳은 위대한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쓰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서강대 종교학과 학풍에 기반을 닦은 분이며 개신교도로서 불교를 전공한 분이죠. 이 분이 종교의 축적적 전통과 신앙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한 스미쓰의 제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종교의 본질주의(essentialism)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구요. 그런 면에서 요즘 본질주의에 대한 아주 비판적으로 보는 신세대 종교학자들과 구분되는 이분은 구세대 종교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글에서 촛불시위를 “시민종교”(civil religion)의 한 형태로 보신 것은 이 개념의 원조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의 개념을 지나치게 광의로 해석하신 것 같군요. 벨라가 의도한 것은 전통적으로 종교와 정치 (polity)가 상호 교차되어 대중적 형태로 나타난 일종의 종교적 현상의 조합, 즉 시민+종교 (polity + religion)인데 저는 촛불시위에서 어떤 형태의 religious implications를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시민종교적인 내포가 전혀없는 그냥 시민들의 저항운동입니다.

위의 글이 신앙적 입장에서 쓰신 글이라면 충분히 일리가 있고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 분의 배경을 전혀 모른 사람이 읽는다면 아마 신학자의 글로 읽힐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금 종교학하면 굶어 죽을 가능성이 훨 ~많은데 그런 좋은 배경에서 신학자로 활동하는 것 같아서 그렇군요.

종교가 이성적 종교이든 그렇지 않든 역사적으로 나쁜 짓 한 것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보적 기독교건 선불교이건 역사적으로 나타날 때 언제든지 나쁜 짓을 할 수 있구요. 위에 언급된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도 나찌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했었구요. 한국에서 그동안 숭상해왔던 D. T. Suzuki 나 스즈키의 친구인 니시다 기타로는 [선(善)의 연구] 한국 철학계에도 유명한테 철저한 일제 군국주의자였습니다. 알라딘의 이 책 소개에 이렇게 나옵니다. “니시다의 「선(善)의 연구」(1911)는 일본인의 철학적 사색의 높이와 깊이를 잘 나타난 거대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는 오래 전에 이 작자가 그런 줄 알고 한국에서 이 책을 사보고 읽었습니다. 이 책의 영문판도 있습니다. 이 책 자체로는 이성과 영성이 결합된 가장 이성적인 책으로 보일 수 있는데 이 자의 배경을 보면 무시무시하다는 말씀이죠. 니시다 기타로 같은 놈이 바로 “나쁜 시민종교”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나찌와 선불교의 결합에 대해서는 Brian Victoria가 쓴 “A Zen Nazi in Wartime Japan: Count Dürckheim and his Sources”을 참조하시구요.
http://apjjf.org/2014/12/3/Brian-Victoria/4063/article.html

나시다 기타로와 스즈끼에 대해서는 Robert Sharf의 “The Zen of Japanese Nationalism”을 참조하실 것. 샤프는 다른 여러 논문에서 동아시아의 선불교와 남아시아의 비파사나(Vipassana) 명상이 어떻게 서구에서 이상화되어 종교의 본질주의(essentialism)의 예로 상품화되어 팔려 나갔는지를 보여줍니다.

일본의 신도와 시민종교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로버트 벨라의 “The Japanese and American Case” 참조하실 것.

스즈끼한테 엄청 영향을 준 Paul Carus같은 이는 신지학과도 연관됩니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완벽한 결합을 추구했고 그의 이러한 사상은 스스끼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들 모두 교리를 혐오했고 순수한 종교적 경험을 강조했으며, 늘봄님이 좋아하시는 이원론을 거부한 철저한 일원론자들이었습니다.

위의 길희성 선생의 글을 보면, 바로 순수한 종교적 경험, 본질주의, 이성적 종교를 강조하는데, 이렇게 이상화된 종교적 이념이라도 정치나 이념과 결합하면 트럼프와 같은 이상한 복음주의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촛불현상이 갑자기 “종교인” 길희성선생으로 전환되는 것 같아서 사족을 달아 봤습니다. 늘봄님이나 길희성 선생 같은 종교 본질주의자들의 문제점은 종교현상 중에서 어떤 특정부분을 특정해서 그것 만이 순수한 종교적 경험 또는 형태라고 보는데 있습니다. 최근에 젊은 학자들이 윌트레드 캔트웰 스미쓰나 루돌프 오토 등의 본질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학자의 의무는 종교의 선호도에 앞서서 현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치열한 노력은 Pepoles Temple, Heaven’s Gate, Branch Davidians의 비극을 이해하려는 신종교 학자들의 노력에서도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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