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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유래
1. 부활절의 유래
부활절을 뜻하는 영어의 Easter는 'Eastre' 라는 이교도적인 이름을 고대 영어에 맞추어 바꾼 말이다. 이는 튜튼족의 신 중 봄과 새벽의 여신의 이름이었다. 이 여신의 축제는 해마다 춘분에 열렸다. 부활절의 원래 명칭은 유월절을 뜻하는 히브리 말인 파스카(Pascha)였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과 같은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자연스러운 명칭이었다.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유윌절, 즉 죽음의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이루었다는 뜻을 부여했다. Easter가 일반적인 명칭이 되기 전에는 이날이 '주님의 부활절' 및 '부활의 유윌절'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는 유대인이었던 사도들과 개종자들이 그들의 옛 절기인 유월절에 대한 새로운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 보고자 하는 노력으로 부활절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부 유럽에서는 봄에 "이스트르(Eastre)"축제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시기에 "파스카(Pascha)"를 경축하였다. 그 후 기독교인들은 이 파스카 축제를 "이스터(Easter)"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 '파스카'를 '이스터'라고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봄, 빛의 영광됨이 의미상 일치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만 있을 뿐이다.
파스카는 거룩한 주간으로 지켜졌다. 부활주일 전(前) 주일은 종려주일로 정하고 주님의 승리의 입성을 기념하여 저녁 때 성도들이 감람산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행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며 '호산나'를 불렀다. 목요일에는 '성만찬'과 금요일에는 '성 금요일'을 생각하여 주님의 고난과 관련된 금식을 하였다. 그러므로 부활절 축제는 부활하신 그 날만의 축제가 아니라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의 고난 주간과 연결되어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과 부활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여야 부활의 기쁨이 보다 크게 체험되는 것이다.

2. 부활절 계란
부활절에 달걀을 나누어 주는 풍습은 많은 부활절 풍습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까지 갈 때 잠시 십자가를 대신 져준 구레네 시몬의 작업이 계란 장수였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 보니 암탉들이 낳은 계란이 모두 무지개 빛으로 변해 있었고 이후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울러 옛부터 계란은 봄의 상징이며 풍요의 상징이었다. 계란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으며, 마치 겨울 뒤에 숨어 있는 봄과 같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초대 교회 그리스도교 시대의 사람들은 서로 서로 봄의 시작을 계란으로 상징하였다.
그런데 유대의 종교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때는 주님이 고난 받으심을 기억하며 경건히 보내야 하는 사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님의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부활절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부활절 달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으로 그 껍질은 예수님이 사흘 동한 머무르셨던 바위 무덤을, 달걀 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부활 계란은 아름다운 색이나 도안으로 장식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쁘게 맞으라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부활 계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에 참여케 하는 것이다.
붉은 색 또는 그 밖의 여러 색의 물감으로 색칠한 달걀을 선물로 주는 풍습에는 어느 불우했던 부인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3. 계란 장식의 유래
십자군전쟁 당시에는 동양의 새인 닭을 가진 유럽 귀족이 얼마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닭이 없는 마을에 정장을 한 귀족부인이 시녀 한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 두 사람은 긴 여행과 추위 때문에 몹시 지쳐 있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량하고 친절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부인은 계속 그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그녀는 본래 귀족 집안 출신 사람인데, 남편이 십자군에 출정한 후, 못된 신하에게 재산과 집을 빼앗기고 떠돌이 신세가 된 로잘린드 부인이었다. 로잘린드는 이 마을에 닭이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애석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닭을 주선해 와서는 정성껏 기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부활절이 되었을 때 로잘린드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활절 아침 일찍이 마을 어린이들 을 모아놓고 "자, 여러분 지금부터 숲에 가서 각각 자기 나무를 만들어 놓고 돌아 오세요. 그러고는 함께 부활절 식사를 합시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은 환호성을 치며 숲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마치고나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숲속으로 가세요. 자기가 만들 둥우리를 찾아서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세요."
숲에 다녀온 어린이들의 손에는 예쁘게 색칠된 달걀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위하여 반드시 도와 주신다."라는 로잘린드 집안의 가훈이 쓰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 은 부활절 선물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같은 날 오후 로잘린드는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고개길을 넘어온 한 소년을 보았다. 그는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찾아 가기 위해서 밤잠도 안 자고 걸어 왔던 것이다. 로잘린드는 이 소년에게 사려 깊은 위로와 함께 색칠한 달걀 한 개를 주어 가지고 가게 했다.
소년은 여행을 계속하던 중에 어느 산길에서 부상당해 고통스러워하고있는 병사를 발견하고는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소년은 망설이던 끝에 어머니께 갖다 드리려던 달걀을 내놓았다.
병사는 그 달걀을 받아들자 깜짝 놀랐다. 자기 집의 가훈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돌아온 그 귀족 병사는 아내를 찾아 읍에서 읍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오랜 세월 동안 고통스러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인데 마침내 달걀을 인연으로 해서 다시 찾게 되었다.

4. 부활절 토끼
우리 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부활절 상징으로 부활절 토끼가 있다. 토끼는 봄의 충만함과 새 생명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특히 부활절 토끼는 부활절 달걀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져다 준다는 민담을 가지고 있다. 부활절 이전, 즉 이스터 축제일의 상징은 계란이 아니라 토끼였다. 이스터 여신의 상징이 토끼였기 때문이다.
토끼와 관련된 부활절 풍습은 15-16세기경 독일에서 유래되었으며, 1572년경의 어느 독일 문헌에 토끼를 부활절 상징으로 삼았다는 최초의 기록이 실려 있으며 부활절 토끼 풍습은 독일인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함께 들여갔다. 이런 연유로 인해 독일인들은 부활절에 토끼 모양을 만들어 장식으로 사용하거나 그 모양을 새긴 과자나 파이 등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본 글은 cn드림 017호(4/18일 '03)에 실렸던 글입니다.

기사 등록일: 200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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