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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을 헤치고_5) 글 : 류지성
한강 종합 개발사업! 단군이래 단일공사 로서는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가 5공화국에 의해 추진될 때 나는 해외 현장근무를 마치고 약 1년 반을 여기에 참여했었다. 강동구 상일동에서 행주대교까지 그 긴거리를 국내상위 10개 건설업체로 하여금 10개 공구로 나눠서 한강 양쪽을 곧게 펴고 바닥을 똑같은 수심으로 준설하고, 저수부지, 고수부지를 만들어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저수부지 땅속에는 지하 콘크리트 하수관로를 만들어 서울시에서 나오는 생활 오수를 하류에있는 처리장으로 보내고 올림픽 도로를 새로 만들어 교통의 흐름을 원활히 한다는게 기본 계획 이였다. 물론 86년 아시안 게임 전에 필히 끝나야 한다는 전제 아래... 강폭과 수심의 설계는 100년 빈도로 오는 대홍수에 대비했고 50년 빈도의 큰홍수 때에는 고수부지 까지 잠기게 설계가 되었기에 고수부지에는 잔디만 깔고 나무는 심지않았다. 홍수가 나면 나무가 물흐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어차피 물에 며칠 잠기고 나면 살지도 못하니까 공원인데도 나무가 없는 것이다. 그 막대한 공사의 자금 조달 방법이 좀 특이했는데 한강바닥에 무진장하게 깔려있는 모래자갈을 파서 수도권 일대에 건설붐을 일으켜 콘크리트 재료로 팔아서 많은부분을 충당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도권에 있는 레미콘 공장은 한강 골재만 사용하게 하였고 강바닥은 어차피 준설을 해야하니까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자연환경을 파괴한다느니 해서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았지만 군사정부는 밀어부치는 뚝심이 대단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군인들이 집권한 나라의 특징중 하나가 도로나 댐, 항만 등 대형 토목공사를 잘하는건데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그외 강 양쪽의 저, 고수부지를 만드는데 드는 그엄청난 양이 흙은 어디서 구하느냐고? 서울시내에 공사하면서 나오는 모든흙은 딴데로는 못가고 한강에만 갖다부어야했고 집집마다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그때만해도 대부분 연탄을 땠다) 연탄재만 별도로 모아서 강을 메웠는데 이게 보기완 달리 물먹고 다져지니까 정말 끝내주는 재료가 되더란 이야기다. 강남쪽을 담당한 나는 염창동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까지를 오전 두번 오후 두번 야간 한번, 이렇게 걸어서 하루 20km 이상을 일요일, 공휴일없이 1년이상을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다리힘 하나는 남한테 지지않는다. 겨울의 한강바람은 매섭다 못해 살속까지 파고들 정도였는데, 특히 성산대교 당산철교 등의 다리밑이 유난히 더 추웠던 기억이 난다. 성산대교 밑에서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하나있어 몇자 적어 볼까한다. 겨울엔 매일 줄지어 들어오는 약 500여대의 구청 청소차들이 연탄재를 부으면 차들이 빠지지않게 불도저가 계속 밀고 다져줘야 하는데 그러면 먼지가 그 일대를 덮어버린다. 하루는 먼지가 한참동안 안보이길래 무슨일이 있나보다하고 가보니 도저기사, 청소차운전수, 차량유도원 등 세명이서 연탄재를 삽으로 파면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있었다. 다그쳐 물어본즉 어제 이차가 이 근방에다 연탄재를 부웠는데 그속엔 어느 아파트 에서 한 아주머니가 남편하고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다가 홧김에 결혼패물 전부를 봉투에 넣어서 쓰레기통에 버린게 있다는거다. 그런데 부부싸움이란게 모두들 해봐서 잘 알겠지만 칼로 물베기 아닌가. 하루밤 자고나니 마음이 바꿔져 통을 뒤져보니 새벽에 벌써 싣고 가버렸고 그 많은 패물을 어떻게 찾나 하다가 수소문 끝에 그기사를 만나 만일 찾아주며는 50%의 사례를 하겠다고 각서까지 써줬다나... 그 기사는 또 도저기사등에게 도와주면은 자기몫의 50%을 준다고하니 비록 근무시간 인줄은 알지만 어쩔수 없었다고 송구해 하는걸 보고 나도 얼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한후에 원칙대로라면 당장에 중지를시켜야 하지만 지시는 정반대로 했다. 그런걸 이 넓은데서 삽으로 찾다가는 내일 날샐때까지 해도 않된다. 김씨는 저 밑에 가서 포크레인을 빨리 불러오고 도저기사는 망을봐라...정신없이 찾는데 몰두하다보니 옆에 소장님이 와있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야! 너 지금 도대체 뭐하는거냐?' 라는 질문에 여차저차해서 저차여차 하다고 발굴작업의 취지와 목적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아! 나는 이제 찍혔구나 하는 때늦은 후회가 막심했다. 다듣고난 소장은 아까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런걸 이 넓은데서 포크레인 한대로 찾다가는 내일 날샐때까지 해도 않된다. 저위에 가서 2대를 더 불러오고 류기사 너는 감독이 오는가 망을봐라... 최영장군의 뜻을 거역한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통했다. 결국은 찾지도 못하고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후로 나는 부부싸움 할때마다 눈은 마누라 손에 끼어있는 반지에서 떼질 않는다. 강이 흐르다 보니까 상류에서 사체들도 심심치 않게 떠내려와 작업장에 얹혀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담당인 내가 클로즈업해서 사진찍고 경찰에 연락하고 현장부검 입회하고등 참 별 업무를 다 해봤다. 소장님 자녀가 고3이라 일찍 귀가하면 공부에 방해된다고 이양반이 매일 밤 10시 연속극을 다 봐야 소장실에서 비로서 나오는데 그때까지 전 직원은 퇴근을 해선 않된다는 불문율이었다. 매일밤 11시까지 할일없어도 책상머리에서 노닥거리다 얼굴도장을 찍고나야 비로서 퇴근하는 국내현장 분위기가 한심한 생각이 들어, 일만 끝나면 혼자 소신껏 퇴근해서 총각답게 보람있는 (?) 밤시간을 보내다가 정말 찍히기도 했다. 올림픽 도로를 만든다고 하니, 각계에서는 강남북에 이미 넓은 강변도로가 있는데 왜 또 돈을 들여서 새길을 만드냐며, 이나라가 올림픽만하고 문닫을 거냐고 난리를쳤다. 불과 몇년도못가 이 도로가 정체가 되니까 기왕만들거면 조금 더 넓게 만들지 그렇게 몇년 앞도 못내다보냐고 그길만가면 모두 궁시렁거렸다. 이민오기전 양평동 앞 올림픽도로와 인터체인지 그리고 고수부지를 바라보면서 가족들한테 말하곤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 이용하는 이 시설들을 아빠가 만들었단다. 물론 혼자서 다 한거는 아니지만 이 일대의 지도를 바꾸는 담당자였단다라고... 얼마전 가족을 태우고 N.W. Crowchild 를 지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정도 도로확장공사는 한국에선 대리급이 맡아서 5개월이면 끝내버리는데 이건 해가 바뀌어도 변화가 없네. 아빠가 하면 넉넉잡아 4개월만에 준공지킬 자신이 있는데도 이사람들은 아빠더러 그로서리가 더 적격이라니 어떡하냐? 그날 아마North Wholesale에 장보러 가는길이었을거다. 한강 개발사업! 연탄재와 결혼패물, 주야없이 퍼넣었던 그 많은양의 콘크리트, 그리고 뚝방위의 포장마차...이제는 20년의 아스라한 추억이되어 묻혀져간다... 편집자 주) 본 글은 CN드림 2003년 7/2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4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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