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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향 _약속의 땅 가나안 2부 5편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 313번지.
이 주소는 내가 본적란을 메꿀때마다 썼던 주소이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3학년 까지 다니던 곳이다. 원래 목동리는 오목동이라 하여 다섯 동네를 일컷는 이름이었다.
영등포에서 김포 공항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양하교를 지나면 길 오른쪽으로 한강 줄기를 따라가면서 길게 들어 앉은 동네를 소금 창고가 있는 동네라 하여 염창이라 하였고 도로 왼쪽으로 산밑에 들어 앉은 동네를 달이 산에 걸려 있는 동네라하여 달거리라 하였다.
달거리에서 조그만 산 등성이를 넘어가면 새말이란 동네가 있고 새말에서 또 조그만 산등성이를 넘으면 나말(내목동)이 나온다. 나말이란 동네에서 작은 논과 밭을 가로 질러서 건너다 보이는 동네를 모세미 (외목동)이라 하였다.
모세미에서 산넘어 반대편에 있는 동네를 옛날에 우마를 팔던 장터가 있던 곳이라 하여 마장안이라 불었다. 이렇게 달거리에서 마장안까지 있는 다섯 동네를 목동리라 불렀다.
나말(내 목동)은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약 200m거리를 두고 나누어 있는데 나의 집은 윗마을에 들어가면서 첫 번째 집이었다.
윗마을 입구에 수백년 됨직한 큰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버티고 섰는데 이 느티나무 그늘 밑이 여름철에는 온동네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곤 하였다. 부녀자들은 이 나무 가지를 이용해 그네를 만들어 탔고 아이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 원숭이 흉내를 내며 나무가지를 타고 노는 장소가 되었다.
또 젊은 남자들은 한쪽가에다 철봉, 수평봉, 역기등을 설치하여 운동하는 장소로 사용하였고 노인들은 장기를 두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동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나그네도 느티나무 그늘에만 오면 이렇게 시원한 곳도 있느냐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쉬었다 가곤하였다.
이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산것 만큼 많은 역사를 지켜본 나무 이기도 하다. 세계 2차 대전때에는 일본 군인들이 이곳을 지나다 느티나무 아래서 쉬었었고, 8.15 해방이 되니 미군들이 지나다 쉬다 갔고, 6.25전쟁때에는 인민군이 쉬다 갔고, 9.28 수복이 되니 국군과 UN군이 쉬기도 한 곳이었다.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어느날 일본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쳐 무엇에 쓸려고 했는지 느티나무를 자르려 하였다.
이 사실을 안 동네 어른들이 가만이 있을리 없었다. 총칼을 들이 대는 일본군인들 앞에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느티나무를 가로 막고 서서 결사적으로 못 자르게 하였다. 이 나무는 보통나무가 아니라 우리 동네를 보호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이 나무를 자르면 동네가 망하게 되니 먼저 우리들을 다 죽이기 전에는 못 자른다고 대드는 바람에 기세 등등 하던 일본군인들도 그대로 물러갔다.
이 동네에 남원 양씨네가 몇십대를 이어 가면서 웃마을과 아랫마을에 나누어 약 30세대 가량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나는 한국을 떠난지 22년, 고향인 목동리를 떠난지 43년 만인 지난 1990년 초에 목동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목삼동 OO 금고 이사장 양형모를 찾아가면 옛날 내 목동에 살던 사람들의 소식을 다 알 수 있다는 형님의 말을 머리 속에 간직하고 고향을 방문하였는데, 목동리가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완전히 변했다는 바로 그 고향이였다.
차로 나를 데려다주는 동서에게 김포공항가는 도로에서 양하교를 지나면서 옛날에 우마차길이 있던 곳을 상상하며 이쯤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데서 좌회전을 시키고 또 얼마쯤 가서 좌회전을 시킨 다음 이 정도면 내가 옛날에 살던 내 목동이 되리라 짐작되는 데서 차를 세우게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목삼동이 어디냐고 물었다. 여기가 목삼동인데 어디를 찾느냐고 하였다. 목삼동OO금고 를 찾는다고 했더니 OO금고는 우리가 있는데서 불과 몇집 건너에 있었다. 생각 했던 것 보다 쉽게 찾은 것은 다행이었다.
이사장실로 들어서자 내가 상상하던 양 형모가 아닌 반 백발의 영감이 의자에 버티고 앉아서 나를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이사장 양 형모란 팻말이 놓여 있었다.
양 형모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나는 양 재설이라고 했더니 그때야 나를 아는 척한다. 내가 양 형모를 몰라 본 것이나 양 형모가 나를 몰라 본 것은 매 한가지였다. 그도 그럴것이 10대에 헤어져서 60세에 가까이 되서 만났으니 서로 몰라 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43년이란 세월이 농사를 짓고 살던 아담한 촌락을 대도시로 변하게 한 것 만큼이나 양 형모의 모습도 십대의 소년에서 알아볼 수 없는 노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위세당당하던 일본 군인들도 자르지 못한 느티나무도 온데간데가 없고, 그 느티나무가 있던 곳엔 빌딩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양형모의 주선으로 몇 명밖에 남아있지 않은 양(梁)씨네 집안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하고 헤어졌다.
내가 찾아간 고향은 낯설은 하나의 어떤 도시에 불과했다. 이제는 돌아갈 고향도 없다고 생각하니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이 든다. 나의 고향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내 가슴 속에는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니 그것으로 대리 만족하리라.
나는 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한다는 것을 ….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약속한 하늘 나라 뿐이리라. 그곳은 아픔이 없고 슬픔이 없고 죽음이 없는 곳(계시 21:1-7) 이라 했다. 그 곳이 우리에게 돌아갈 고향이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합동 찬송가 507장 내고향은 하늘나라의 가사가 생각 난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근심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고향
하늘나라.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1/3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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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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