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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Hamel 목사님 _약속의 땅 가나안 2_21
나는 1974년부터 1976년 까지 Mica Creek에 있는 수력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이곳에서 Hamel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은 나를 오늘의 신앙인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 사람이다. 목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남미쪽에 선교사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선교사로 떠날 때까지 Mica Creek에 와서 교회를 인도하고 있던 분이다.
Mica Creek은 발전소 공사로 인해서 형성된 동네이기 때문에 공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갈곳으로 떠날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영구적이지 못하고 임시로 있는 곳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여서 교회가 갖추어야 할 장로, 집사도 없고 목사님이 필요에 따라 적당한 교인들에게 필요한 일을 맡기곤 하였다.
하루는 회사에 출근하여 얼마되지 않아서 집사람이 전화를 했다. “당신 오늘 아침에 Hamel목사님에게 전화해서 우리 집에 가보라고 했어?”. 나는 전화 한 일이 없다고 했다. 내가 출근하고 얼마있다가 차가 급히 달려와서 우리 집 앞에 정차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누군가가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문을 열었더니Hamel 목사님이 문밖에 서서 “ 아유 오케이?” 하고 물었다. “ 아이엠 오케이” 라고 대답을 했다. 또“ 아유 오케이?”라고 물었다. “ 아이엠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세번째 또 “ 아유 리얼리 오케이?” 라고 물었다. 세 번씩이나 심각하게 묻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했다고 했다.
사실은 마음이 불안해져서 어쩔줄 모르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오셨다고 했다. 목사님은 기도해 주시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직 해도 뜨기 전 이른 아침인데 전화도 없이 급히 달려와서 “아유 오케이?” 했으니 분명히 내가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집에 가 보라고 한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다음에 목사님을 만났을 때 물었다. 집사람이 마음이 불안해서 쩔쩔 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우리 집에 달려 왔었느냐고 했다. 그 시간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성령님이 Kay에게 가보라고 지시를 해서 급히 갔었다고 했다. 목사님은 그와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기도 하는 중에 성령님이 OOO집에 가보라고 해서 달려가 보면 꼭 필요할때 갔다는 것이다.
Hamel목사님은 나보다 십년 연하의 청년이었다. 십년 연하지만 그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하루는 공사장에서 임시 파업을 하기 때문에 계획에도 없는 휴일을 갖게 되었다.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느니Hamel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탁구를 치자고 했다. 목사님은 말하기를 지금 시간은 나의 근무시간이 되어서 못한다고 했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곳의 목사님도 근무시간이 있나 생각했다. 주일날 예배 드리고 예배를 위해 설교준비하고 가끔 교인 가정 심방이나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목사님 가정을 방문 하면서 근무시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작은 Trailer House에서 살았는데 출입구 옆에다 조그만하게 방을 만들어서 그 곳을 Study room 또는 Prayer room이라고 했다. 그 방은 아주 작기 때문에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로 꽉 찼다.
그런데 책상 위 벽에 목사님의 일주일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부터 저녁시간 까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기도하는 시간, 성경 읽는 시간 이런 식으로 꽉 차 있었다. 특별히 긴급한 일이 없는 한 짜여진 시간표대로 하루 하루를 산다고 했다.
내가 탁구를 치러 가자고 한시간은 성경읽는 시간이였다. 디모데 전서 4장 12절에 보면 “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 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자에게 본이 되어” 라고 했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 없는 이곳에서 스스로 시간표를 짜서 그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는 20대 젊은 목사님을 어느 누가 없신 여길 수 있겠는가. 목사님은 나에게 본이 되어 준 사람이다.
1976년 6월에 우리 가족은 Mica Creek을 떠나 캘거리로 다시 왔다. 목사님도 우리가 떠난 후 얼마 더 있다가 Mexico에 선교사로 떠났다. 25년이 지난 어느날 Hamel 목사님이 멕시코에서 캐나다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수소문을 해서 알아 봤더니 현재 Hamel 목사님은 Guelf Ontario에서 조그만 교회에 시무하시는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말을 나누고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말했다. 목사님은 이제는 오십대 중반 나이라고 했다. 머리색은 갈색에서 은발로 변했다고 했다. 자동차에 개스를 넣으러 가면 일하는 사람이 Senior Card가 있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멕시코에서 평생을 보낼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 하나가 정신 지체 장애아로 태어났다. 멕시코에서는 그런 아이를 교육하는 시설이 없어서 그 아들의 교육을 위해 캐나다에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그 아들 때문에 걱정이 많겠다고 위로의 말을 했다. 목사님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그런 아들을 주신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그 아이를 통해서 우리 부부가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했다. 목사님의 깊은 신앙심에 나는 늘 감탄할 뿐이다.
또 목사님은 나에게 묻기를 Mica Creek에 있을때 교회에 출석하던 Wonda라는 부인을 기억하느냐고 했다. 나는 기억한다고 했다. 그 부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한테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목사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이제는 성장하여 장로가 되어 교회를 열심히 섬긴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이 많다고 했다.
Wonda의 큰 아들은 그때 당시 십대의 말썽꾸러기였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도 목사님을 피해 달아났고 그 집에 심방을 가도 밖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는 한 번도 같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목사님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장로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대화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장거리 전화를 오랜 시간 계속하였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7년 2/23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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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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