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김지식 장로 은퇴예배에 참석하고..._김민식(캘거리 교민)
김지식 장로님! 시무 장로로 봉직하셨던 6 여 년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 3월 24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영락 교회 창립 16주년 기념 및 김지식 장로 은퇴 예배’에 시간 맞추어 허겁지겁 참석하느라 축하선물 하나 준비하지 못한 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한 교회에서 수십 년씩 시무장로로 훌륭하게 봉직하다 은퇴하신 분들의 하고 많은 은퇴 기념 예배에 참석하였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날의 감회는 저로서는 남다릅니다. 이렇게 서신 형식으로라도 그동안의 정분(情分)을 표하고자 합니다. 저의 가족은 1993년 10월 고국을 떠나 캘거리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당시 아셨던 것처럼, 수년 동안 캐나다 정부의 이민 문호 정책이 굳게 닫혀 있다가 사업투자 이민제도의 재개방으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캘거리로 이주하였습니다. 이민 오기 전 서울에서 이민자 모임인 ‘아리랑’회를 조직하고 3여 년 동안 한때는 130여세대가 매월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는 친목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시절에는 인터넷 등 정보 매체가 없어 캘거리 정보에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행 중 제일 먼저 도착한 김종해씨(현 보우불고기 대표) 덕분에, ‘아리랑’ 회 회원 중 개신교 신자면 으레 줄줄이 침례교회에 등록하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삿짐은 연탄집게를 제외하고는 다 가지고 오라고 충고하던 시절이었고, 이삿짐 남은 빈칸에는 화장지가 귀하다는 이삿짐센터 직원의 말에 속아 부리나케 화장지를 사서 채우고는, 몇 년 동안 소비하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던 추억의 시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저는 참 막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교민수가 적어서인지 사랑이 넘치던 시절이었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다투어 초대해서 만찬을 베풀어 주며 반겼습니다. 심신이 피곤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에 김 장로님께서는 침례교회 안수집사셨지요? 유달리 이민 자녀들의 장래문제에 관심이 많으셨구요. 매사에 아주 투명하고 강직하셨습니다. 스키라고는 타 본 일이 없는 제 딸아이와 갓 이민 온 학생들을 여러 차례 스키장에 데리고 가서는 그 추운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강 훈련을 시키시더니 손광남 집사와 함께 로키 산맥 스키장 정상에서 풀어놓고는 강인한 정신력 훈련을 시키셨지요. 한참을 지나도 내려오지 않아서 실종 신고까지 하고는 난리법석을 피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좀, 힘들더라도 강한 체력, 올바른 정신력을 가져야 케네디언 학생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어!” 훈화하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때 지도받았던 학생들이 지금까지 반듯하고 꼿꼿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는, 또 연약했던 딸아이가 서른이 넘어 지금까지 힘든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러한 헌신적인 노력이 무의식중 배어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장로님! 용접기능 교관으로 해군상사 제대하시고 1975년도에 이민 오셨으니 삼십년이 넘으셨습니다. 이 땅에서 거의 삶의 반평생을 보내시며 강직한 신앙의 성품때문에 몇 차례 교회를 옮기시더니, 이제 영락교회에서 명예롭게 은퇴식을 가지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60이 훨씬 넘은 이윤근 집사께서 “인생의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고백, 간증하며 독창으로 찬송가를 부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장로님! 그날 축사하신 김형석 목사님의 말씀대로 은퇴는 새로운 인생과 신앙세계를 향해 출발하는 기점이라는데 동감합니다. 우리가 이민생활을 하면서 서로 사랑으로 주고받으며 교제하며 지내던 중 퇴임하거나, 아니 우리의 인생살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을 고할 때에, 귀한 사랑을 주고 받았던 단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라도, 서로 돌아서는 “그대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나의 스승이었노라고, 인생의 아버지었노라”고 고백을 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삶을 꿈 꿀 수 있도록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여생을 하나님, 사람, 자연과 사랑의 선물을 더욱 분주히 주고 받으며 하루하루의 삶에 소중한 밑줄을 그으며 사시는 노년의 아름다운 생활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내내 강건하소서! “If I Could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 Emily Dickinson -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pain, I shall not live in vail. 내가 만일 한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막아 줄 수가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내가 만일 한 목숨이라도 아픈 것을 덜어주거나 고통을 위로해 줄수 있다면, 아니 졸도해가는 로빈새 한 마리를 자기의 둥지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7년 3/30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7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7-04-01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웨스트젯 캘거리-인천 직항 정부.. +1
  캘거리 집값 역대 최고로 상승 ..
  4월부터 오르는 최저임금, 6년..
  캐나다 임시 거주자 3년내 5%..
  헉! 우버 시간당 수익이 6.8..
  캐나다 이민자 80%, “살기에..
  앨버타 데이케어 비용 하루 15..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앨버타, 렌트 구하기 너무 어렵..
  주유소, 충격에 대비하라 - 앨..
댓글 달린 뉴스
  넨시, “연방 NDP와 결별, .. +1
  재외동포청, 재외공관서 동포 청.. +1
  CN드림 - 캐나다 한인언론사 .. +2
  (종합)모스크바 공연장서 무차별.. +1
  캐나다 동부 여행-두 번째 일지.. +1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