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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지원 박사 - 당뇨병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아
 
윤지원 목사는 지난 20년동안 침례교회 목회를 맡으며 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으며 아울러 캘거리 대학에서 당뇨병 예방과 치료 연구를 통해 당뇨병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윤목사는 지난해 7월 시카고 의과대학 대학 당뇨병 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현재 침례교회 원로목사로 있다.

(편집자 주_시카고 의과대학은 면역학 분야 에서 세계적인 연구시설로 인정받고 있다.)

질문) 우선 20주년 기념식을 맞이하신 소감 한 말씀부탁드립니다. 침례교회는 목사님의 땀과 노력이 베어 있어 감회가 더욱 남다르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답변) 제가 지난 20년동안 침례교회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말씀들 하시는데 저는 솔직히 겸손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내세울만한게 없습니다. 다만 저는 항상 하나님께 “침례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 마음의 합한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하나님 쓰임으로 쓰일만한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요” 라고 기도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질문) 다른 교회에 비해 침례교회는 그동안 집사님들의 활동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집사님들이 목사님을 보좌하는 파트너역활을 많이 하다보니까 교인들의 능력 개발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답변) ‘하나님의 교회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내자’라는 게 제 목회방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자는 의미에서 재직훈련을 많이 실시했습니다. 1년에 4~5회 정도, 한번에 2~3일동안 매우 강도높게 실시 했습니다. 그러한 여러차례 강도높은 훈련을 통해 의욕과 능력을 길러주었습니다. 그 후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간 것 같습니다.
질문) 윤 목사님이 오랜세월 신도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으셔서 후임 목회자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힘들지 않을까 우려가 많이 되었는데요.
답변) 그래서 저는 은퇴시기에 대해 많은 기도를 하였고 후임자를 위해 세가지 준비를 하였습니다. 첫번째, 교회에 빚을 남겨서는 안되겠다. 빚더미 속에서는 소신껏 목회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빚 없는 교회를 만들어 놓기로 하였습니다.
두번째, 교회가 어느 정도 일할 수 있는 능력 즉 성도의 증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세번째, 후임 목사님이 인수할 수 있을 정도로 성도들과 친숙감이 있어야 한다. 이 세가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이 모두를 들어주셨습니다. 침례교회는 2~3년전부터 빚이 100% 없어졌으며 저축도 어느 정도 되었고 교회시설도 잘되어 있습니다. 특히 부엌, 시청각시설, 웹싸이트 구축까지 큰 교회들이 갖추고 있는 시설들이 어느 정도 다 완비되어 있습니다. 제 후임으로 오신 김형석 목사님은 이곳에 오셔서 2년 가까이 부목사로서 저와 동역하면서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 있었습니다. 또 제가 캘거리에 계속 남아 있으면 후임 목사님이 빨리 뿌리를 내리는데 애로가 있을 것 같아 제가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시카고의과대학에서 빨리 좀 와 달라고 간곡한 부탁이 있어 지난해 7월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현재 시카고 대학에서 당뇨병 연구소 소장 및 석좌교수를 맡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질문) 20여년간 목회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있으시다면....
답변) 성도님들이 서로 오해할 때였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 그분들이 바른길로 돌아올 때 까지 많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특히 교회를 비방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신도부터 더욱 껴안아 주었습니다. 남들은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해를 못하기도 하였죠.
저는 목회에 하나의 큰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원을 그려 신도들을 그 원에 세우고 목사는 그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가까운 사람, 먼 사람이 없어 갈등이나 파탄으로 고생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항상 평신도가 바라는 목회자상, 하나님이 바라는 목회자상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 그 결과 “중심에 서라” 라는게 가장 핵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목회를 시작하시게 된 동기는?
답변) 제가 NIH(국립건강연구소-미국 워싱턴DC에 소재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기관_편집자주) 수석 연구관으로 10년간 재직할 당시 ‘평생 직장’ 자격을 받고자 원했는데 실은 받기 매우 어려운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받게 된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생겨 그 후 야간 신학교에 들어가 1주일에 3일씩 야간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후 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안수를 받게 되고 목회지가 생겼는데 당시 워싱턴 DC에서 북쪽으로 60마일정도 떨어진 프레딕이란 도시에 교회였죠. 2년쯤 된 교회인데 성도들이 없어 목회자가 버티기 힘들어 2~3개월 있다가 모두 그만두고 가서 목회자가 없던 교회였습니다.
처음엔 부흥회에 참석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신도가 4명밖에 없어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아이들을 포함해 14명정도의 교인으로 시작하였는데 솔직히 설교를 하려고 앞에 서면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을 구하는 심정으로 목회를 했는데 6개월이 지나니까 신도들이 늘기 시작해 1년반만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질문) 전에 계셨던 캘거리 대학과는 이제 일이 없으신 건가요? 그리고 현재 시카고 대학에서 하시는 당뇨병관련 연구 계획은 어떠신지요?

답변) 캘거리 대학에서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실도 아직 있구요. 한달에 한번씩 와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당뇨병 예방 및 치료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동물로는 실험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며 금년 말이나 내년 초쯤이면 원숭이까지 실험을 할 예정이며 원숭이 실험까지 성공하면 인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이민오신지는 얼마나 되시는지요? 그리고 캘거리로 오시게 된 동기는?

답변) 미국에서 19년, 캐나다에서 20년 있었으니까 이민온지 39년이 됩니다. 20년전 저는 캘거리란 곳이 어디 있는지 조차도 몰랐을 당시 캘거리 의과대학에 당뇨병 연구소가 처음 오픈하여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제가 밴프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석하였다가 캘거리대학에서 와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아 캘거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름에 캘거리를 방문했었는데 참 좋더라구요. (웃음)

질문) 끝으로 고향은 어디신지? 그리고 슬하에 자녀는?

답변) 제 고향은 전라도 해남입니다. 저희 집안은 고산 윤선도 선생의 직계 후손이 됩니다. 당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셨던 다산 정약용선생이 윤선도 선생의 사위가 되죠. 저는 아들만 둘있습니다. 큰 아들은 MIT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UCLA에서 컴퓨터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디즈니사가 주관하는 애니메이션쪽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둘째는 토론토쪽에 있는 워터루 공대에서 컴퓨터를 전공 후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오랜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6/2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4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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