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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카나다편)
내 나이 7살 바로 위의 작은 오빠가 알밤을 한톨 주었다. “으앙~~~” “아~니, 아를 왜 때리니!” “에이구~ 요걸….” 오빠는 주먹을 틀어 쥐었고, 난 더 크게 울었다. 나는 집안의 막내 딸로, 밥상에 앉기만 하면 반찬 투정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참아 주는데 작은 오빠만은 참지 못했다. “아니꼬우면 막내로 태어나면 될꺼 아냐!!!” 내 나이 21살 카나다에 오면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다 준비돼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눈앞이 캄캄하다.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하나…’ 무료 ESL 학교에 등록을 했다. 언니집에서 눈치보는 것 보다는 낫다.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친구가 자기 오빠도 이 학교에 나온다고 했다. 미남형에 guitar도 치고 노래도 잘한단다. “Guitar를 치며 노래를 하는 남자!” 얼마나 멋있을까! 친구가 오빠를 소개해준단다. 왠지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내가 왜 이러지?’ “우리 오빠야!” 친구가 소개를 했다. ‘와~~! 어쩌면…..” 비쩍 마른 얼굴에 짤막한 키! 거기다 시꺼먼 푸라스틱테 안경! 바지는 무릎이 늘어나서 불거져 나온 골덴 바지! 겨울 잠바는 어디서 얻어 입었는지, 그렇게 클수가…. ‘와~! 난 Elvis Presley인줄 알았는데…. 멀어도 한참 멀다!’ 내 나이 25살 ESL 학교에서 만난 친구 오빠와 결혼을 했다. 무릎 튀어 나온 골덴 바지 입은 비쩍 마른 남자! 결국은 내가 그 남자와 결혼을 했구나! 주위의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사람을 소개시켜준다고 했지만, 마누라 속썩이는 일은 없을 것같아서 데리고 살아 주기로 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제안한 신혼여행이라는게 가관이다. Canoe를 가지고 Algonquin Park에 가서 camping을 하잔다 “세상에….” Niagara에 가서 썰렁한 호텔방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 보다는 더 romantic할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신혼여행을 camping으로 대신하다니….. 참 별종하고 결혼을 한 것같다. 텐트를치고 신방을 차렸다. 5월 중순인데도, 응달에는 눈이 있었다. 짐을 정리한 다음 canoe를 호수에 띄우고 서서히 저었다. 아름다운 숲! 잔잔한 호수! 상쾌한 공기! 역시 남편말을 따르길 잘한 것 같다! 아름다운 호수가에 노니는 원앙새 한쌍 같았다. 밥이 익는 냄새가 구수했다. 난 밥냄새가 이렇게 구수한 줄을 예전엔 몰랐다. 분위기 탓인가? 된장찌개에, 멸치복음, 무말랭이 무침에, 계란부침! 환상이였다. 게다가 camping와서, 음식 만들기와 설거지는 남자에 몫이라며, 날더러 신방에들어가 꽃단장하고 기다리란다. ‘고남자 노는게 정말 귀엽네!’ 해가 넘어가니까,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염치 불구하고 남편의 품을 파고 들었다. ‘야! 어쩌면 사람의 몸이 요렇게 따뜻할까!’ ‘처녀때 떨던 내숭! 다 어디갔어?’ 남편의 팔을 베고 누었다. 밖에는 바람소리가 텐트를 흔드는데, 남편의 품은 정말 포근했다. ‘이젠 죽으나 사나 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구나!’ “숙아, 춥지 않아?” “아~니~, 너무 좋아용!” 다시 파고 들었다. 내 나이 31살 남편이 마누라와 아이들 셋을 먹여 살리느라고 허리가 휘어진다. 이젠 아이들도 커가고, 2 bedroom에서 아이들 셋을 기른다는게 쉽진않다. 무리해서 집을 사기로했다. 일을 저지르고 보자. 혼자 버는 살림에 먹지 않고 쓰지 않고 모은 돈으로 down payment를 했다. 주위에서는 “쟤네들이 어떻게 할려고 저러나!” 걱정을 많이 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을 샀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차지 않았겠지만, 내 눈에는 대궐같았다. ‘야! 이젠 아이들에게 방을 하나씩 줄 수 있겠구나!’ 은행에 넘어 가서 2년 동안 비어 있던 집을 싸게 사긴 했지만, 할일이 태산 같았다. ‘이 일을 다 어떻게 하지?’ ‘없으니 몸으로 때워야지….’ ‘이젠 정말 내집이 생겼구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하~앟게 날밤을 새웠다. 그래도 하나도 피곤치 않다. 내 나이 35살 긴긴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내나…. 남들처럼 day camp에 보낼 형편도 못되고…. 신문에 무료 축구교실 광고가 났다. High Park에서 하루에 3시간씩 두 주일 동안 한단다.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교실에 참석하기로 했다. 한 가지 걱정은 Bus-Subway-Bus를 갈아타고 1시간 반만에 걸려서 park까지 가는 것이지만,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집에서 묵히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싸고 가방에 축구화와 운동복을 넣고 떠났다.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줄 몰랐다. Soccer camp에 간다는게 너무 좋은가 보다. 푸른 잔디 위에서 공을 차며 뛰는 아이들을 보니, 참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젠 5살 난 막내도 공을 차는 발에 힘이 들어 갔다. ‘티없이 건강하게 자라다오!’ ‘너희들이 아빠와 나의 꿈이니까!’ 내 나이 41살 “여보, 당신이 일주일에 50불씩만 벌수 있으면 좋겠다!” 남편이 생각없이 던진 소리가 내 가슴에 아프게 파고 들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어 버렸나!’ ‘아이들을 기르느라고 긴 세월을 보냈구나!’ ‘이젠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것 밖에 없구나!’ 큰 집으로 이사하자고 무리를 한 내가 원망스럽다. 혼자 벌어서 가족 먹여 살리느라고, 집 mortgage를 갑느라고 안간힘을 쓰는 남편의 어깨가 요즘은 더 축 늘어져 보인다. “이사하지 말고 그냥 작은 집에서 살껄!” 이젠 나도 뭔가 해야 하는데…. 이렇게 마냥 부엌때기로 살수는 없지 않은가! 옛날에 하던 graphic design은 모두 computer화 되었고, computer를처음부터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는 세탁소(depot)를 판다고 한다. 첫째는 집에서 가까워서 좋고, 이젠 아이들도 제 앞가림을 할수 있다. 꼭하고 싶은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좀 무리를 해서 세탁소를 인수하기로 했다. ‘야~! 이젠 나도 여사장이다. 그 잘난 남편은 내 세탁소 helper이다!’ 학교에서 배운 life drawing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 몰랐다. 날더러 의상 디자이너란다. ‘뭐~? 날더러 일 주일에 50불만 벌어 오라고? 요X의 남편 코를 납짝하게 눌러 주리라!’ 내 나이 48살 퇴근해서 힘들다는 남편을 졸라서 한국식품점에 갔다. “아~니, 웬걸 그렇게 사?” “내일 아이들이 오쟎아요.” “어이구, 남편한테 좀 그렇게 해 보시지…” “삐지긴….” “내가 삐져?” “알았어요. 아이들이 간 다음에 잘 할께요” 집을 떠나 대학에 다니는 세 아이들이 모두 오는 날이다. “왜 이렇게 마음이 들뜨지?” 아이들이 하나씩 돌아왔다. 모두 산타크로스의 선물 보따리 같은 빨래 보따리를 지고 돌아왔다. “Hi mom! Hi dad!” 아들들이 더 의졌해진 것 같았다. “야~! 따거! 따거워~~!” 수염깍지 않은 얼굴로 입마춤을 하는 아들들! ‘이 놈들이 내 뱃속에서 나왔어?’ 믿어지지가 않았다. 현관에 발디딜데가 없다. 빨래 보따리에, 책가방에, 신발에, 갑자기 집이 돗때기 시장이 된 것 같았다. 음식을 해내도 내도 끝이 없었다. “그래~ 싫컷 먹어라.” 오래간만에 사람사는 집 같았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으로 돌아갔다. 집이 다시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아이들이 집에오면 좋고, 대학으로 돌아가니까 더 좋다. 남편과 둘이서 커피잔을 들고 아무말 없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여보,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요?” “…..” “비디오 볼까요?” “일찍 잠이나 자지!” “벌써 자요?” “애나 하나 더 만들지 뭐…” “에이구~, 못하는 소리가 없어!” 찰싹 남편의 등을 때렸다. “아야! 아퍼” “맞아 싸!” ‘에이구~ 이러면서 늙어 가겠군! 아들들도 좋지만, 역시 남편이 있어야 돼!’ 내 나이 52살 “엄마, 여름이 다 끝나기 전에 camping갈까?” 저녁을 먹으면서 큰 아들이 말을 꺼냈다. “좋지! 우리가 가족 camping를 간지가 10년 넘었지?” “난 빠질래~. 엄마랑 나랑 너희들 뒷바라지 하게?” “아빠~ 들어 보세요” 큰 아들이 계획을 쭉 이야기했다. 가족끼리 camping을 가본지가 오래됐는데, 시간이 지나면 가기가 더 힘들어질테니까 더 늦기 전에 가자고 했다. 이번 camp엔 8명이 가자고 했다. 우리 가족 다섯에 아들들 여자 친구 셋! ‘야~! 요놈이 꿍꿍이 속이 있었구나!’ 아들들과 여자 친구들이 교대로 음식을 해서 받쳤다. 항상 해 먹이기만 했는데, 이번엔 여왕 대접을 받았다. 놀고 먹었다. ‘이래서 집에 딸이 있어야 하는데…’ 딸없는 서러움을 또 한번 느꼈다. 호숫가에 커다란 담요를 깔고 여덟명이 나란히 누었다. 밤 하늘에 별들이 참 많았다. “여보, 왜 이래?” “남편인데 어때?” 남편의 팔을 끌어다가 머리를 올려 놓았다. “야~! 참 조~오타~!” “아줌마, 보기 좋아요!” “보기 좋으면 너희들도 이렇게 해!” “그래도 돼요?” “애들아, 누가 말리냐?” 아이들이 어릴때, Cyprus Lake에 가서 다섯이 누어서 별을 봤는데, 이젠 여덟이 별을 보는구나! 그것도 짝을 마추어서…. 세월이 참 빠르다! 내 니이 62살 “여보, 아이들이 왜 안 오지요?” “아이구~, 사람하군! 아직 다섯시도 안됐어!” Christmas carol이 은은하게 들린다. Christmas tree에 불들이 오늘따라 더 반짝이는 것 같다. ‘저 Christmas tree를 산지도 25년이 넘었구나!’ 아이들과 성탄 장식을 할때 생각이 났다. 성탄 장식을 다 끝내고 마지막으로 나무 꼭대기에 다는 큰 별을 남편이 큰 아들에게 달라고 했다. “No~, 아빠, 그건 아빠가 해야 돼요!” 막내가 말했다. “Christmas tree 맨 꼭대기에 꽂는 천사나 별은 맨 마지막에 가장이 하는거예요.” 의젓하게 설명하던 애띤 막내의 얼굴이 떠 올랐다. 그게 가장에게 주어진 명예와 특권이라나? 남편이 별을 꽂고 전원에 연결했을때, 환하게 켜진Christmas tree를 보고 “와~~~” 소리치며 손뼉을 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막내도 벌써 애 아버지가 됐다. “왜 아직 안 오지?”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길이 미끄럽지 않아야 할텐데….’ “딩동 딩동” Door bell이 울렸다. “야~! 왔다” 난 용수철처럼 일어나 현관으로 뛰었다. “여보, 조심해! 넘어지겠다.” “하무니! 하부지!” 손자 손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Merry Christmas!!!” “Merry Christmas!!!” 손자 손녀들은 온통 눈투성이였다. 벌써 앞 마당에서 만나 눈싸움을 한바탕 한 모양이였다. “애들아, 눈털고 들어 가야지!” “괜찬다. 그냥 들어와! 어서~ 어서~” 남편은 손자 손녀들의 외투를 받아 걸고 있었고, 나는 빨갛게 언 손자 손녀들의 볼에 입 마추기에 정신이 없었다. “에구~ 내 새끼들! 에구~ 내 새끼들! “어머니 turkey 냄새가 너무 좋아요” “어머니, 언제 이렇게 준비 하셨어요?” “음~~~ 맛있겠다!” “너희들 줄려고 음식하는게 너희 엄마의 낙이 아니냐” “어머니, 좀 더 자주자주 하세요” “에이구~ 요 얌체!” “제수씨, 어머님댁 기둥 뿌리 뽑을 일 있어요?” “염려마! 우리 기둥 뿌리 든든해!” “I’m hungry!” “그래 그래, 어서 먹자” “자~! 할아버지 기도하세요” 우리들은 둥그렇게 식탁에 둘러서서 모두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가족들을 주셔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조용히 성탄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내 니이 72살 오늘은 자원봉사를 하러 가는 날이다. 남편은 몸이 불편해서 바깥 출입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달해 주는 일을 하고, 나는 양로원에 가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음식 먹이는 일을 도와준다. 사람이 늙는다는게 서글프다. 모두 젊었 때는 예뻤을텐데, 이젠 자기 몸도 가누질 못하니…. 딸이 올거라면서 딸이름을 하루종일 부르는 할머니가 애처롭다. 모두 살기가 바쁘겠지만, 저렇게 딸을 보고싶어 하는데, 한번 찾아 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나마 부를 딸이 없으니…. 미래에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나야 아직 하늘같은 남편이 있고, 듬직한 아들이 셋! 딸이 없어서 비교는 할수는 없지만, 주위에서 딸보다 더 낫다는 며누리가 셋! 게다가 손자 손녀가 일곱이나 있으니 무엇이 부러우랴! 내가 움직일 수있고 힘이 있을때, 나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이 살아야겠다. 내 니이 ??살 남편이 많이 약해졌다. 어제는 멀리 사는 아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모두 좋아 보였다. 손녀 손자 모두 멋진 처녀 총각으로 자랐다. “할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하부지, 나 하부지랑 camping 가고 시퍼요” “내가 어떻게 camping을 가니?” “하부지, 가쑤이써요” “그래, 알았다” 남편이 환히 웃었다. 이제 남편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다 봤다. 가만히 남편의 손을 잡아 보았다. 참 따뜻했다. ‘이 팔로 나를 꽉 안아 주는게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Tent 속에서 가진 신혼여행이 생각났다.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니까 데리고 사는 줄 알아!” 가끔 남편이 농담삼아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남편이 떠나면, 난 어떻게 살지?’ 눈을 감고 있어서 자는줄 알았는데, 눈을 뜨더니 눈짓으로 가까이 오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할려나?’ 소리는 안 들리는데 입모양을 보니 “힘 안들어?” 하는 것 같다. “내 걱정은 말고, 당신이나 기운 차려요” 내 손을 꼭 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힘이 없다. 한참만에 다시 눈을 떳다. 뭔가 이야기 할려고 애를 썼다. “여~보~~, 고~마워~. 여~보~, 사….. 라…ㅇ….. ㅎ….ㅐ….” “에구~ 내가 사랑하느냐구 물울 땐, 그렇게 핀찬을 주더니… 하여간 고맙쑤!” 남편이 히미하게 웃었다. 남편의 손이 내 손을 쥐는듯 하더니,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여보~ 여보~~ 나 혼자 놔두고 먼저 가면 어떻게~~~ ㅎㅎㅎㅎㅎ” “여보~ 여보~~~ ㅎㅎㅎㅎㅎ” ------------------------------------------------------------- 퍼온 글: 여자의 일생 (한국편) 내 나이 5살... 오늘도 할머니는 나를 쥐어박는다. "가시나가" "멀 그리 먹을라 카노" 내가 악을 쓰고 울자 우리 엄만 날 꼭 안아주신다... " 흥 " 할머니도 여자면서..같은 여자인 날 미워하다니.. 난 할머니가 싫다 이번에는 엄마가 아들을 꼭 낳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아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내 나이 18세... 오늘은 데이트 ... 언니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 일곱시까지 들어오면 안걸리겠지.. 창규녀석.... 쫌 고급스런 음식점에 데려가지... 맨날 떡볶이 집이다 ..ㅠㅠ 남자친구를 갈아 치우던지 해야지.. 능력이 부족하면 외모라도 바쳐주던가.. 에구 빨리 집에가야겠다.. 언니 올 시간이네 헉--- -- 살금살금 들어오는 날 언닌 팔짱끼고 내려다보고 있다.. 움찔 ~~~~ 넘 놀라 오줌 쌀뻔했다.. 누가 딸부잣집 셋째딸은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 했는지 -.- 지금 언니의 모습은 성난 살모사 같다. 날보더니 대뜸 손을 올린다... 또 한번 움찔 ..... 언니는 움찔거리는 내가 웃겼는지 이번 한 번만 봐준다며 따라 들어오란다. 아휴 다행이다.. 근데 골방으로 데려가는 이유는 뭘까 남자친구한테 차인걸까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은희야 너 공부 열심히 해 " "언니처럼 상고가지 말구 " 이놈이 의사랍시고 우리 언니를 속상하게 했겠다. 형부감으로 내가 점찍어 놨었는데 ... 넌 땡이야 내 나이 26세... 우리 셋째 언니 결혼식날 ....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말지.. 신랑측은 썰렁하다... 우리 언니가 어때서 상고 다니면서 장학금 쭉 타고 ..자격증이 다섯개에 .. 돈도 얼마나 많이 벌어 놨는데 .. 우리 언니가 더 아까운걸 ..훗훗 난 절대로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나이 28세.. 창규가 프로포즈를 한다. 잘해 주겠다는데.... 어쩌지 나도 나이도 있고 그냥 창규랑 결혼할까? 코찔찔 흘리던 넘이 .... 내 남편 ... -.- 내 나이 35세... 미역국도 지겹다.. 이번엔 태몽도 아들이었는데.... 내일 바로 퇴원해야겠다. 애들 눈치밥은 안 주시겠지.. 시어머니 뵐 면목이 없다. 남편이란 놈은 마누라가 애를 놓는데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잘해 주겠다더니 정말 사기 결혼이다.. 옆에 새댁은 남편이 준 장미꽃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새댁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난다. 처녀 땐 곧잘 꽃선물도 하더니... 벌써 권태기인가... 내 나이 38세... 뚝 ---- 팬티 고무줄이 끊어졌다.... 살이쪄서 그런가 .ㅠㅠ 다 낡은 팬티를 보니 눈물이 난다. 우리 엄마 다떨어져가는 팬티 꼬매입는 모습이 정말 싫었는데.. 왜 그렇게 사냐고 하면 너그러운 미소지으시며.. "아휴 너도 살아봐라 " 그러시더니 다섯딸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엄마가 보고싶다 ..... 우리 엄마 ... 가..... 내 나이 44세... 남편이 술에 쩌들어 들어왔다. 내가 잔소리를 하니 아들도 못놓면서 말이 많다고 한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쥐꼬리만한 월급.. 이리저리 매꾸다 보면 김치만으로 밥먹는 날이 허다한데 떡볶이 집만 데려갈때 끝냈어야 했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 당장 카드로 근사한 봄옷 한벌 사여지... 맨날 우중충하게 입으니 십년은 더 늙어보이는거 같다. 모두들 너무 화사한게 이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괜찮다 싶은 옷은 몇 십만원이니... 그냥 애들 티나 사가야겠다.. 내 나이 49세... 딸 뇬이 바락바락 대든다. 대학도 못보내 주면서 왜 낳았냐고.. 가슴이 에이어 온다. 내 마음을 알까 ...? 나를 팔아서라도 달러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고 싶은 내 맘을 알까.. 바락바락 대들더니 휙 집을 나가버린다...날씨도 추운데... 티쪼가리 하나 입고 어딜가는지...찾아 나서야겠다. 내 나이 55세... 사윗감이 인사를 왔다.. 어디서 저런 놈을 데려왔는지 기가막히다. 딸 뇬은 좋다고 입이 귀에 걸렸다. 내가 보기엔 고생길이 훤하구만 ... 가만히 있으면 밉지나 않지..잘 살거란다.. 엄마처럼 안살 자신있다네/// 이뇬아 한번 살아봐라 세상살이 맘대로 되는지 홀시어머니만 아니어도 괜찮으련만.. 그래도 저렇게 좋다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이럴때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딸뇬 손이라도 잡아 주고 가지... 내 나이 63세... 엄마처럼 안살겠다고 큰소리 치더니 ... 눈이 시퍼렇게 되서 왔다.. 그래도 난 맞지는 않고 살았는데.. 에이구 이뇬아 왜 결혼 안말렸냔 말이 입에서 나오냐.. 요놈의 이서방 오기만 해봐라 ... 눈을 똑같이 만들어 놓아야지. 내 나이 74세... 오늘 다섯 살난 손주년하고 싸웠다 한대 쥐어 박았더니 손주년 하는말......... 할머니도 여자면서 여자만 미워 한단다 내 나이 75세... 요즘은 먼저간 영감이 자꾸 꿈에 나타난다.. 그동안 혼자사느라 고생했다며.... 잘해 주겠다며...... 내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아준다.. 이 놈의 영감탱이 ... 이번 한번만 더 속아주리다...

기사 등록일: 200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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