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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힘든 나무 (아홉번째)
1982년 2월

황박사가 떠난 실험실은 예전 같지 않았다. 황박사를 대신할 사람을 채용했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Nick이라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카나다에는 2년 전에 왔다고 했다. 이민자이기에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다. 카나다의 화학계나 화공학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나이도 나보다 세살 아래였다.

군대에서 신참 ROTC 출신 소위가 부임을 하면 선임하사나 고참병장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힘드는 것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내가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은 연구를 하고,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우리가 연구한 것을 Sale해야 했다.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일거리도 물어 와야했다. 그런데 Nick은 영국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카나다에 줄이 닿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입사한지 5개월이 돼 오지만 이렇다할 실적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Nick은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모든 책임은 체계상 Nick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석달은 회사에서도 봐 주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게 모르게 눈총을 받는 것 같았다. 하는 일 없이 매달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 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Nick은 어깨가 축~ 늘어져서 실험실에 들어오더니 의자에 털석 주저 앉았다.
‘무슨 일이 있나?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
“Nick, 어디 아프냐?”
“…… 어진아……”
“무슨 일이야?”
“나…… 오늘로 그만 둔다”
“무슨 소리야?”
Nick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더니 눈물이 글썽해졌다.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뭐라구?”
“… 짤렸어……”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했었는데… 결국은 짤렸구나!’
Nick은 아무 소리 없이 자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Nick은 결혼한지 일년 되었고 아내는 임신중이라고 했다.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Nick도 속이 새까맣겠구나!’
6년 전에 D박사가 떠날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나도 눈앞이 캄캄했었다.

“Nick, 어떻게 할건데?”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직장을 알아 봐야지……”
“내가 도와 줄게 하나두 없구나! 미안하다”
“그 동안 고마웠어!”
“……”
“회사에서 한달치 월급을 거져 주기로 했어. 그리고 서류상에는 Project가 끝나서 그만두는 것으로 하기로 했어. Reference도 잘 써주기로 약속했구……”

나는 Nick과 함께 언제 점심식사라도 하자고 했지만, Nick은 싫다고 했다. 그럴 기분이 나질 않았던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손을 꼬~옥 잡아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었다. Nick은 입사한지 5개월만에 조그마한 상자에 자기 물건을 챙겨 가지고 회사를 떠났다.
‘난 어떻게 될려나?’
‘7년 가까이 일한 사람을 나가라고 하기야 하겠냐?’
이젠 카나다에서 먹은 짬밥 그릇수가 많아져서 그런지 여유를 부릴 수가 있었다.
‘어진아, 너 참~ 많이 컸다!’
‘이젠 나도 여길 떠날 때가 됐나?’
‘5년 전후해서 직장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는데……’
직장을 바꿀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에 맞는 떡이 없었다.

아이들이 셋이 됐으니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다. 잘못 움직이다가 삐끗하면, 내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고생할 생각을 하니 그것도 심난했다. 회사에서는 사정상 내가 황박사와 함께 하던 일중에서 고분자 물질을 만드는 것은 없애고, 화학분석 쪽으로 진로를 바꿔주었다. 다행히 나는 틈이 날 때마다 화학분석 쪽의 책도 보고 쎄미나도 참석해서 분석 쪽의 지식도 꽤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려서 부터 무엇이던 뜯어 보고 다시 마추는 것을 무던히 좋아했었다. 분석은 어떻게 보면 내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약간 어려움이 있었지만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1982년 4월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실험실로 막~ 들어 설려고 하는데, 옆방에 있는 동료가
“어진아, This is for you.” 하면서 뭔가 휙 던졌다. 얼떨결에 날아오는 물체를 한 손으로 잡아보니, 신문지를 똘똘 뭉쳐서 공처럼 만들어서 던진 것이었다.
“야~ 이게 뭐냐?”
“I said that’s for you!”
‘쨔식, 아침부터 싱겁기는……’
쓰레기통에 버릴까 하다가 종이를 펴 보았다. 신문지의 한켠을 아무렇게나 쭈~욱 찢은 종이였다.

‘이게 뭐야?’
찬찬이 들여다 보니4년 전에 내가 딱지를 놓았던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광고였다.
‘어~?! 여기서 또 사람을 뽑는거야?’
찾는 사람의 Qualification를 보니, 딱~ 내게 적격이었다.
‘쨔식, 기특하네’
‘신문을 아무리 뒤져도 내 눈엔 안 보이더니……’
‘거 참~ 묘~하네……’

기사 등록일: 200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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