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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힘든 나무(열번째)
오르기 힘든 나무(열번째)

1982년 4월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갔다. 벌써 Xerox에서 offer를 받았던 때가 3년 반이나 지나갔으니……
‘나를 인터뷰한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까?’
‘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면 무엇이라고 할까?’
‘그때 offer를 거절한 이유를 물어 보면 어떻게 하지? 솔직히 대답할 수 밖에……’
내가 싫다고 떠났던 여자에게 다시 돌아가서 나를 받아 달라고 하는 것 같은 약간은 낯이 간지럽다고 생각해 봤다.

이력서를 준비해서 보냈다. 나의 경력이 거의 그들이 원하는 것과 일치했고 이젠 카나다의 연구소에서 일한 경력이 7년이 되니까, 어느 정도 마음에 자신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생각했던 대로 일주일 후에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전에 인터뷰를 할때는 빌려서 쓰는 건물에서 했는데, 이번엔 바로 옆에 크게 건물을 짓고 이사를 와 있었다.

나를 처음 만나주는 HR 책임자가 전에 사람이 아니였다. 인터뷰 schedule은 예전과 같이 5명이 했다. 한번 한 경험이 있었기에 훨씬 수월했다. 그간 영어도 좀 늘었을테고, 연구소 생활에도 많이 이력이 나 있어서 인터뷰는 잘한 것 같았다. 5명 중에 한 사람이 전에 인터뷰를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아 보겠는데 그사람은 나를 기억 못하는 건지 아니면 못하는척 하는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이번에 사람을 뽑는 이유는 Pilot Plant를 아주 크게 신축하고 일할 사람을 증원하고 있었다. 하는 일은 화학보다는 화공학에 더 가까웠다. 다행히도 나는 황박사와 함께 Polymer(고분자 물질)를 많이 만들어 보았기 때문에 인터뷰하는 사람들도 호감을 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나오면서 ‘이런게 Canadian Experience라는 것이로구나!’생각했다. 많이 침착해졌고, 자신감도 생겼고…… 하기사 이젠 카나다에서 11년을 살았으니……
골프장개 3년에 Par를 한다는데…… 11년이라는 세월은 긴 세월이었다.

월요일에 인터뷰를 했는데 목요일 아침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웬 일이야? 회사로 전화를 다 하고…”
“빨리 Xerox로 전화해 보세요”
“왜?”
“전화가 왔어. 목소리를 들어 보니까,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 좋은 소식 같아요”
‘이 여자가 도사(?)가 다 됐네!’ 나도 가슴이 뛰었다.
‘아~니 이렇게 빨리 소식이 와?’

메세지를 남긴 사람은 지난 번에도 인터뷰를 하고 이번에도 한 Paul이라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진이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지금 전화를 해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저희들은 어진이씨를 채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채용됐다는 이야기를 듣으니 기뻤다.

“그렇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습니까? 저희들과 함께 일해 보시겠습니까?”
‘되게 급하시네!’
“저희들의 계획이 급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
“자세한 이야기를 전화로는 할 수가 없고, 오늘 오후에 여기 오실 수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4시에 가겠습니다”
이젠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황박사도 떠났고, Nick도 그만두었고, 회사에서 배려를 해주긴 했으나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떠나자 미련없이!’

Paul은 아주 오래 사귄 친구처럼 나를 대해 주었다. 아주 편안했다. 모든 조건을 설명해 주었다.
“함께 일하시겠습니까?”
”네~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aul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꽈~악 쥐고 흔들었다.
‘이제 부터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구나!’
“언제 부터 시작하실 수 있습니까?”
”회사에 2주간 Notice를 주어야 합니다”
“……”
“그렇지만 가능하면 빨리 시작하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수도 좋았고 Benefit도 참 좋았다. 집에서 가까워서 좋았고 아내도 좋아했다. 나는 사실 아이가 셋이 되면서 말은 안 했지만 많이 걱정이 됐다. 셋째는 계획을 안 했는데 생긴 아이였다.
아내는 “사람은 다 자기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나!” 할 때마다
‘어떻게 된 여자가 철없는 소리만 골라서 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정을 책짐져야 하는 가장의 심정을 몰라 주는 것 같아서 불만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의 말대로 일이 척척 풀리는게 아닌가!
‘하나님의 축복이구나! 난 한 것도 없는데…’ 참 감사했다!

회사에서 환송 파티를 해 주었다. 7년간 일한 회사를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많이 섭섭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 만큼 키워준 곳이기도 했다. Director가 새 직장에 가서 열심이 일하라고 격려해 주고, 날더러 한마디 하라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지?’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우선 일어섰다.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졌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내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영어로 인사말을 한다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사람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습니다. 이곳은 저에게 아주 귀한 직장이었습니다. 학교를 막 졸업한 새내기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곳입니다.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곳입니다. 저에게 카나다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것 같은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저에게 Green House같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늑한 삶을 누렸습니다. 이곳은 폭풍우와 눈바람을 막아준 곳입니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어서 저를 키워준 곳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Green House 속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묘목들이 Green House에서 얼마만큼 자란 후에는 비바람 몰아치는 들판에 나가야합니다. 그래서 저도Green House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비바람 눈보라 몰아치는 세상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배운 경험으로 이겨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우정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가끔 아늑했던 Green House를 생각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동료들이 커다란 박수를 쳐주었다. 내가 박제를 만드는게 취미인 줄 어떻게 알았는지, 예쁜 Robin새를 조각해 놓은 것을 이별 선물로 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햇다. 마지막으로 함께 일하던 여자동료가 나를 껴안으면서 내 귀속에 속삭였다.
“어진아, I really like your speech! The green house analogy was excellent! I almost cried! Good luck!”
“고마워!”

나는 7년 가까이 나를 키워준 Green House를 그렇게 떠났다.



꼬리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추측을 뒤업으시고 일을 하시는 것 같다.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놀라게 해 주셨다. 기회라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왔다. 만약 친구가 신문을 쭈~욱 찢어서 공을 만들어서 던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직장에서 23년간 일을하고 있지 않을거다. 직장을 옮기고 한달 후에 그 친구를 점심에 초대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에게 좋은 직장을 잡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더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 보고 있었다. 그 친구가 이해를 하건 못하건, 나는 그 친구가 던진 신문 쪼가리 때문에 Xerox에서 23년간 일하면서, 세 아들들을 무난히 키웠다.


기사 등록일: 200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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