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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힘든 나무 (13번째)
1982년 9월

회사에서 돌아오니 아내의 얼굴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웬일이야, 아이들이 속을 썩혔나?’
“여보 무슨 일이 있었어?”
“………”
“왜 얼굴이 그래?”
“여보……”
“왜 말해봐”
‘오늘 왜 이렇게 심각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보, 옆집 할머니가 그러는데 애가 셋이면 2 bedroom에서 살지 못한데……”
“별~ 쓸데없는 소리!”
“정말 이래요”

나도 전에 누구에겐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카나다에는 별 희안한 법도 다 있네!’하고 못 듣은 걸로 했었다. 미시사가에서는 한방에 아이들을 두명 이상 두면 안되고, 또 두 아이가 동성이여야지 성이 다르면 각각 딴 방을 써야한단다.
“별~ 얼어 죽을 놈의 법이 다 있네!”
우리는 한국에서 힘들게 살때, 한 때는 방한칸에 아홉 명이 산 적도 있었다.
‘까짓거 내쫒기야 하겠냐?’

아내는 저녁 내 시무룩하게 지냈다. 아내의 눈치를 보니, 내 집 한칸 없이 사는 걸 가지고 바가지를 닥닥 긁고 싶지만 꾹 참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아들 둘로 끝낼려고 했었다. 이민의 삶을 살면서 아이들이 많으면 잘 키우지 못 할 것 같아서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했었다. 그런데 막내는 계획에 없었는데 생긴 아이였다.

친구들도 애들이 셋이 되니까
“야~ 너 야만인이구나! 요새 누가 애를 셋씩이나 낳냐?”
“아들 부자네! 좋겠다!”
“능력있나 보네! 요즘엔 능력있는 사람들만 애를 많이 낳는다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별의별 소리를 다 했다. 혼자 벌어서 사는데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고, 앞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돈이 더 들어 갈텐데…… 그렇다고 아내가 일을 하면, 버는 돈은 모두Baby-sitter에게 다 들어가고 남는 것도 없을테고……

잠자리에서 아내는 잠이 오지 않는지, 계속 뒤척이고 있었다.
“여보, 잠이 안와?”
“……”
“그 할망구가 말한 거 잊어버려”
“……”
“망할 놈의 망구같으니, 왜 쓸데 없는 소리는 해!”
“여보, 우리 집살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조금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자~”
“이 사람이~! 누군 집사고 싶지 않아서 안 사는줄 알아~?”
“……”
“뭘 가지고 집을 사겠다는 거야?”
“Home ownership saving plan에 모아 놓은 돈도 있고, 정부에서 보조도 해주잖아요”
“요즘 집 mortgage 이자가 얼만지 알아?”
“……”
“19프로야! 19프로! 어떻게 집값을 물겠다는 거야?”
“그렇지만 언젠가는 집을 살려구 하자나요. 좀 무리해서……”
“정신차려!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사는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아내는 없는 살림에 어떻게 해서라도 집을 사겠다고 이를 악물고 저축를 했었다. 고교동창들은 비들기장 같긴 하지만 모두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만 집이 없다는 것을 늘 속상해 했다.

(간단한 상황 설명: 그때만 해도 경제 사정이 아주 안 좋았고 이자가 너무나 높아서 집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집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정부에서 보조를 해 주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못할 보조를 해 주었다. 단 카나다나 한국에서 집을 소유했던 적이 없었던 사람에 한해서였다. 새로 진는 집을 사면 8000불을 무상으로 보조해 주었고, 헌 집을 사면 3000불을 보조해 주었다. 그 당시 8000불이라는 돈은 어머어머한 돈이었다.지금 가치로 계산하면 30000불 정도될 것 같다.)

아내는 내 집없는 설음에다 옆집 할머니의 염장지르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었다.
‘가장이라는게 이렇게 힘드는 것이로구나!’
‘그래도 나는 의식주 걱정은 없잖아, 욕심을 부려서 그렇지’
‘아버지는 그 많은 가족들을 돌보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내는 계속 시무룩해 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는 내 속도 편치 않았다.
‘까짓거 사던 못 사던, 집을 보지도 못할까?!’
“여보, 내일부터 집보려 다니자”
“정말~?” 어두운데도 아내의 얼굴에 확~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보기라도 하자구. 또 알아? 우리 사정에 맞는 집이 있을지…”
“여보, 고마워요!” 아내는 벌써 집을 산 것처럼 좋아했다.
‘어이구~ 저러다가 집을 못 사면 실망이 더 클텐데…’

집중개인을 선정해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넉넉치 못한 자금으로 집을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셋을 데리고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림의 떡인 집을 보고 돌아오면 맥이 탁~ 풀렸다. 집을 20채 이상 봤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가격이 너무 비쌌다. 사실은 마음에 들고 안들고를 따질 처지도 못됐다. 아무 집이나 살 수만 있다면…… 잘 가꾸고 살면 되지 생각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집값과 살인적인 이자율 때문에 집사기를 포기해야겠다고 결정하고 중개인에게 연락했다. 아무래도 무리가 돼서 안되겠다고 했다. 카나다인인 여자 중개인은 여지껏 일한게 억울했겠지만, 치밀어 오르는 신경질을 용케 참고 있었다. 나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힘들고 맥은 빠졌어도 내집을 장만한다고 들떠있었던 아내였다.
“여보, 포기하자”
“……”
“포기하는게 아니고 좀더 기다리자”
“……”
“언젠가는 우리도 내집 장만할 때가 올거야!”
아내는 못내 아쉬워 했다. 그러나 어쩌랴! 형편이 안되는 걸……

일주일이 지났는데, 중개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만둔다고 했잖아요”
“이 집을 한번만 더 보세요?
“글쎄~ 그만둔데니까요”
“압니다. 한번만 더 보세요. 딱~ 한번만!”

아내가 다시 실망할까봐서 아내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중개인과 점심시간에 만나서 집을 가봤다. 위치도 좋았고, 학교, Shopping center, 교통 모두 좋았다. 그러나 안내서에 나온 집값이 만만치 않았다. 한가지 다른 것은 살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Power sale을 한다고 했다. 먼저 살던 사람은 집을 담보로 잡히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하다가 경제가 곤두박질을 하는 바람에 은행빚을 못 갚아서 집이 은행에 넘어갔다고 했다. 밖에서 보기엔 멀쩡한 집이었는데 집안에 들어서니까, 도깨비가 나올 것 같았다. 부엌 찬장문은 서너개나 없었고 방마다 벽지는 다 찢어져 있었다. 옷장의 문짝도 없었다. 뒷마당에는 철재 창고가 센 바람에 뒤집어져서 나둥굴고 있었고, 간이 수영장을 만들었던 자리에는 직경 7미터 정도 잔디가 없었다. 풀은 깍지 않아서 잔디인지 잡초인지 모르는 풀이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야~ 해도 너무 했다!” 페허가 된 집을 연상케했다.
‘카나다에도 이런 집이 있었네!’ 중개인의 말에 의하면 일년 반 정도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살던 사람은 은행으로 집이 넘어가니까, 화가 났던지 집을 아주 망가트리고 이사를 간 것 같았다. 그 심정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자기가 정붙이고 살던 집인데……

저녁에 아이들을 이웃에게 맏기고 아내와 함께 다시 가서 집을 봤다. 모든게 끝난줄 알았던 아내는 의아해 했다. 집안에 들어선 아내의 눈은 똥그레졌다.
“이런 집을 누가 사겠어. 아무도 안 살꺼야!”
아무말 없이 집을 다 돌아본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보… 우리가 이집을 싸게 살수 없을까?”
“글쎄……”
“우선 사고 보자구요. 그리고 돈이 생기는대로 조금씩 고치면 되잖아요”
“내가 할수 있을까?”
“당신 할수 있어요. 이런 기회는 다시 올 것 같지 않아요.”
“……”
“이집은 우리집이 될려고 일년 반 동안 안 팔린거예요”
아내의 얼굴은 근엄했다! 도저히 “안돼” 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고생문이 훤하겠구나!’ 아내의 “내집 장만”에 대한 집념은 상상을 넘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Offer를 넣기로 했다. 75000불에 나온 집을 66000불에 집어 넣었다. 도둑놈 소리를 듣을 각오를 했다. 중개인도 그렇게는 안될거라고 했지만 우리 형편에 66000불도 과한 금액이었다.
‘돈도 없이 집을 사겠다는 내가 나쁜 놈이지!’
은행에서는 그 가격에는 도저히 팔수 없다고 했다. 밀고 땡기고 하다가, 은행에서는 정부에서 3000불을 보조해 줄테니까, 69000불에 사라고 했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66000불에 집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제기랄~!

허가 받은 도둑놈(?)들이 변호사와 은행이라고 하더니 도저히 해 볼 방법이 없었다. 사실 69000불도 아주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만약 집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최소한 73000불은 주어야 했다. 집시세가 그랬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요렇게 저렇게 따져보니 겨우겨우 꾸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일 큰 문제는 19프로라는 살인적인 은행이자였다. 게다가 이자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아내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은행에서 온 Counter offer에다 Sign를 했다.

“여보~ 우리 정말 집을 산거예요?”
“그래……” 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혼자 버는 살림에 어떻게 집값을 물면서 생활을 해 나갈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여보, 정말 꿈만 같아요! 우리 집이 생기다니……”

내 속은 숱검댕이 처럼 새까만데, 아내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기사 등록일: 200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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