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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할미꽃
 
우리집에서 오리쯤가면 지세가 ‘보우’강쪽으로 쏠려내리면서 여기저기 골을 파놓았고, 거기엔 옛 시골 봉분같이 양팔을 벌리고누운 양지바른 한 곳이 있습니다. 88 동계올림픽 공원을 정남향으로 하여 오른쪽으로는 록키산이, 왼쪽으론 사오십리는 실히 될 캘거리시내가 보이는 곳입니다. 경관도 그렇지만 봄 언덕엔 할미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나는 이곳을 명당자리로 은근히 탐을 낸지 꽤 오래됩니다. 나중 일도 일이지만 우선은 이 세상 집터로도 아주 제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데고 파헤쳐 집을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설사 은행에서 빚을내고 시에 억지를 부려 건축허가를 따내더라도 버티고 늘어선 언덕위의 터주들이 가만두고 볼 것같지가 않습니다. 까짖거 가끔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마음을 달래야지, 도대체 이 세상이 얼마나 길것이라고 나는 이리도 욕심을 내는가 하면서도 88공원을 건너다보며 몰래 점찍어둔 ‘수’가 있기는 합니다. 알리사는 나를 아주 멋진 할아버지로 여깁니다. 저희반 아이들의 할아버지들처럼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아니라며 그걸 아주 자랑으로여깁니다. 그러나 꼭 한가지, 할아버지가 빨리 죽으면 어떻게하나 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장차 전문 발레리나가 될 작정이니까 일찍 결혼같은 것은 않겠지만 할아버지는 오래오래 살아서 제 결혼식에도 꼭 올 수 있어야 한다고 내게 다짐까지 받아놓았습니다. “내가 35살에 결혼을 하면……”, “이 할아버지는 26년 후가 되니 그땐 88살이 다 되어가는데….?.” 알리사는 선듯 제 결혼날짜를10년 땡겨주는 선심을 써 주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틀림없이100살은 넘길꺼야!” 내 기분을 맞출줄도 아는 착한 손녀입니다. 이번 봄 부활절 방학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 보러 올 수는 있는걸까?. 봄이라해도 날씨를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5월까지도 눈보라나 폭설이 있을 수 있는 이곳이니….., 그런데도 4월이면 눈덥힌 언덕에 할미꽃은 틀림없이 핍니다. 작년에는 4월25일에 첫 보라색이 하얀 눈을 비집고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절이 지나고 며칠이나 되었나? 할미꽃을 ‘부활절 꽃’(Pasqueflower) 이라고 하는데, 부활절 때 쯤해서 핀다고 해서인지 아니면 겨을동안 죽어있다가 새 생명을 피운다는 뜻에서인지 난 모릅니다. 여기선 부활절의 꽃으로 백합이 단연 자리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고결하고 순수한 색이 부활절의 제대장식에 아주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북부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를 별로 가리지 않고 서식하는 이 할미꽃을 부활의 의미로 마음써주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내게는 부활절은 봄이며 기억속의 나의 할머니며, 그 할머니와 손잡고 걷던 산 내 고향의 들꽃입니다. 눈을 헤집고 꽃피우는 이른 봄에 이름없어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꽃, 한들바람에도 저를 모두 내맡기고 흔들리는 할미꽃이라야합니다. 할미꽃을 ‘바람꽃’(Anemone는 바람이란 뜻)이라고도합니다. 정확히하면, 몇가지 바람꽃(Windflower) 중의 한가지라고 해야 옳습니다. 불었다하면 몰아치는 바람에 여기선 할미꽃이 시련을 많이 겪기는하지만, 그래도 양지를 좋아하는 이 꽃은 건조하고 펼쳐진 경사지를 제일로 여깁니다. 대궁이나 잎은 흰 머리색깔의 솜털로 덥히고 꽃잎은 가운데를 노란 색으로, 분홍색에서 진 보라까지 다양하게 핍니다. 색들도 어쩌면 그렇게 나의 고향색인지….. 할미꽃의 또 다른 이름은 ‘프래리 크로우커스’(Prairie Crocus)이지만, 사실은 ‘그래디오우러스’(Gladiolus)나 ‘아이리스’(Iris)같이 진짜로 ‘크로우커스’가 아님에도 이름은 거기서 빌려다 씁니다.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도 변변한 자기 이름 하나없이 누구네 할미라고만으로도 떳떳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 이름도 그저 할머니일 뿐이었고 내게 그것은 이름이상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어느날인가 언덕에서 미끌어져 넘어진 할머니, 난 할머니가 죽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고 할머니는 그런 내가 아주 대견스러웠습니다. 여러번이나 자기 손자 자랑하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얼마되지 않아 하얀 이불보에 덮여서 뉘어있던 안방 아랫목의 할머니를, 누나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도 덥석 끌어 안았을 것입니다. 주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습니다. 무거운 꽃술에지쳐 꼬부라진 ‘할미’가 서러웠을 뿐입니다. 힘든 농사일로나 부실한 영양으로 허리는 굽었어도 들로 산으로 살던 할머니였는데…., 지금 창밖이 부러운 양로원의 노인들과는 아주 다른 분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그 때의 할머니 나이 만큼이나 되어서, 나는 그 때의 나 만한 손녀의 손을 잡고 다니면 아주 흐뭇한 할아버지가 됩니다. 나는 내년 여름방학에도 꼭 온다던 손녀가 이 부활절에도 다녀갔으면 합니다. 긴 겨울잠에서 눈을 헤집고 나와도 나 말고는 아무도 아는체하는 사람 하나없는 이 할미꽃을 보여 주었으면 해서입니다. 나는 이 언덕으로 나의 손녀를 데리고와, 할아버지 나라 ‘코리아’의 할미꽃 얘기를 해줄 수 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본 글은 CN드림 2004년 3/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4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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