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꼬 까 꼬 러
 
녀석은 허우대가 훤칠한 녀석이 글쎄, 콧수염까지 떡하니 달고서 으시대는 꼴을 보느라면 솔직히 난 한풀꺽이곤 했습니다. 더도말고 딱 첨지 수염자리 만큼만 거뭇거뭇한 내 코밑을 빙긋히 흘깃거리며, “너도 수염 한번 길러보지 그러냐?”고 녀석이 부추이기라도 할량이면 건성인줄 뻔히 알면서도 “나도 한번?”, 맘이 흔들린 건 사실이었습니다. 죤은 내가 제 또래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접시 닦는 기계하나 제대로 다를줄 모르는 멍텅구리로 알았거나 하여간 내게만은 한껏 으시대는 직장 선참자이자 한편으로는 한시가 급한 나의 영어회화 ‘스파링 파트너’였습니다. “야, 임마! 뭘 꾸물거려. 빨리하라구.” 말투라고해야 영 이렇게 막 돼먹었지만 악의는 없는 친구였습니다. 나도 한몫 끼어준걸보면 제깐에는 나를 그만치 신뢰한다는 뜻으로 여겨 난 자못 흐뭇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는 냉동고 뚜껑을 열고 서서는 머뭇거리는 날 채근하였습니다. 난 녀석이 부엌에서 숨겨온 것을 받아서 아이스큐브 속에 푹 질러넣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안치느라 애를 썼습니다. 던 애비뉴에 있는 퀸 엘리자벧 종합병원의 부엌은 나의 직장이었습니다. 죤과 나를 빼고는 거기서 일하는 아줌마들은 모두 음식을 다루는 깨끗한 일만을 하였고 우리 남자들 둘은 허드렛 일이나하는 자기들 맘대로 부려먹는 졸개인 셈이었습니다. 그곳은 지하실인데다가 하루 종일 스토브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서그런지 여간 후덥지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린 늘 땀에 절어 일해야 했습니니다. 오전과 오후 하루에 꼭 두번 15분 씩의 휴식시간에라야만 한숨돌리며 타는 갈증을 해결할 수있었습니다. 그럴때면 으례 죤 그녀석은 어디서 났는지 찬김이 서려 물방울이 맺혀 지르르 흐르는 코카콜라를 병채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그건 내게는 참기어려운 유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긴 남자 록커룸, 무슨일이 있어도 그 무서운 프리다가 여자인 한은 어쩌지 못할 남자들만의 보호 성역인 셈이었습니다. 내가 한국에 살 때까지만하더라도 한국판 쎄븐업이랄 수 있는 사이다란 것만 있었지 다른 음료수 종류라고는 없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나는 코카콜라를 마셔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외국에 생전 처음 나올 때 마치 읍내 장터에 끌려나온 촌닭 꼴을 해가지고 토쿄고항의 빠에 들어서선 기껏 주문한다는 것이 ‘소프트 드링트, 플리스’ 어쩌고하며 우물쭈물하였습니다. 빠텐더가 어떤 것을 원하냐고 되뭇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멍청한 내게 제 맘대로 내밀어준 것은 지금 곰곰히 해보니 그게 바로 코카콜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는 얼마나 지났을까 쉬운 말마디 꽤나 알아듣게 될 때 쯤해서 난 그것의 정체를 분명히 알게되긴 했지만 당시 8센트만 하던 콕인데도 맘놓고 사 마시게 될 때 까지는 또 얼마가 더 지나야 했습니다. “윌, 빨리가봐!” 내 이름 우일을 한데 묶어서 빨리 소리를내면 윌(Will)이 됩니다. 서양인들이 힘들어하는 발음을 일일히 고쳐주며 귀찮게 살 수도 없는노릇이고, 어떻게든 이 힘든 형편을 이겨내야 한다는 나의 ‘의지’(Will)의 내 자신에대한 다짐이되기도해서 그리 작정해버린 이름입니다. “니껀 아직 거기 있다.” 난 이것저것 따질 겨를 없이 뛰쳐내려갔습니다. 냉동고 뚜껑을 열자 찬 김이 얼굴에 확 끼쳤습니다. 얼음에 잘 채워진 병을꺼내 내 직장복인 설거지앞치마 속에 감추려는데 그만 미세스 프리다와 딱 마주쳐버렸습니다. 프리다는 이 병원식당의 총 감독이며, 키가 6척장신에다가 근수도 상당한터라 난 그만 기가 탁 죽어버렸습니다. “내 사무실로 오시오. 지금 당장!” 당황한 나는 음료수병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모른채 엉거주춤 그의 사무실로 따라들어서자 그는 내게 으름짱을 놓았습니다. 난 비열 하게도 죤을 팔아 대었습니다. 녀석의 꾀임에 빠져 한 짖이니 한번 봐달라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나를 봐라. 내가 그런 짖이나 할 사람같아 보이는가?” 현장에서 들통나버린 현행범의 변명치고는 설득력 없이 열을 올리는 나는 상대도 않고 신상철을 뒤척이던 그는, “넌 교육도 제법 받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죤같은 애숭이와 얼려 이따위 일을 져지르냐!”고 얼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난 이 부엌이 아니면 생계를 어찌 꾸려야 할지 막막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공장같은데서 힘에 부치는 일을 버틸 엄두도 못내고 그렇다고 무슨 장기 계획을 세워볼만한 여유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장의 희망사항은 이 부엌보다 임금이 좋은 일을 구해서 다른 이들처럼 중고차라도 한대 장만하고 좀 깨끗한 아파트에 들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 부엌이야말로 어떻게든 붙어 있어야 할 수입 보장처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어쩌자고 만년 접시나 닦으며 떠돌지도 모를 철부지 죤같은 녀석과 코카콜라를 슬적하려다 덜미잠힌 현행범이 되다니 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말입니다. 나는 내가 한심했습니다. 프리다는 풀죽어 서있는 내가 좀 안스러웠는지, 뭐 그만한 일쯤가지고 이리 야단할 것까지야 있겠냐는 생각이었던지, 이번 첫번 한번만은 불문에 부치기로하고 이 일은 흐지부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후로는 냉동고 꼴만 봐도 고개가 다른데로 돌려지곤 했는데, 그건 행여 눈길만 닿아도 큰일날 것같아서 였습니다. 어느날인가 백과사전 팔러다니는 중국여인이 코카콜라를 캔토니스(廣東語)로 소리나는대로 적으면 ‘꼬까꼬러’(高價高樂)라고 가르쳐준적이 있었습니다. 마시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최상의 즐거움에 아주 큰 대가를 치룬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입에 땡긴다고(可口可樂), 나는 비싼값을 치루고 쓰고 단맛을 톡톡히 맛보았습니다(高價苦樂). 지금은 코카콜라 쯤이라면 돈 걱정없이 마실 수 있을 만큼은 되지만, 후덥지근한 부엌이 더워서거나, 슬적 하려다 겁먹어서거나 간에 진땀흘리지않고 손 쉽게 마시는 콕은 아무래도 그때 그 맛이 아닌 것을 이참에 자백해 버려야 속이 후련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7/16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4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4-08-10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캐나다 소득세법 개정… 고소득자..
  앨버타 집값 내년까지 15% 급..
  첫 주택 구입자의 모기지 상환 ..
  로블로 불매운동 전국적으로 확산..
  에드먼튼 건설현장 총격 2명 사..
  개기일식 현장 모습.. 2024.. +2
  해외근로자 취업허가 중간 임금 ..
  앨버타 신규 이주자 급증에 실업..
  연방치과보험, 치료할 의사 없어..
  앨버타 주민, 부채에 둔감해진다..
댓글 달린 뉴스
  2026년 캐나다 집값 사상 최.. +1
  개기일식 현장 모습.. 2024.. +2
  <기자수첩> 캐나다인에게 물었다.. +1
  캐나다 무역흑자폭 한달새 두 배.. +1
  캐나다 동부 여행-네 번째 일지.. +1
  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