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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니! 우리 오마니! (어머니날에)
어머니! 어머니께서 가신지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아직도 어떤 때는 ‘어머니께서 LA 큰형님댁이나 누님댁에 가계시겠거니’하는 생각이듭니다. 요즘도 가끔 QEW를 타고 토론토 쪽으로 가노라면 어머니 사사던 아파트로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오마니, 내레 왔쑤다” “오! 어서 오라. 둘째가, 세째가, 막내가?” “오마니 등긁어 주는 아들이외다” “오! 세째로구나. 어서 오라” “오늘 오마니 얼굴이 참 도와 보입네다. 뭐 도은 일이 있소?” “야, 도은 일이 뭐이 있간…” “오마니, 세째 아들 이름이 뭐요?” “영석이…” 모든 일을 똑똑이 기억하시면서도 자식들 이름은 이상하게 혼동하셔서 이야기하실때 잘 새겨듣지 않은면 안됐던 어머니! 잘 보이지않는 눈으로 얼굴을 확인 하실려고 애쓰시던 우리 어머니! 점점 쇠약해져 가시는 어머니가 안타가워서 운동을 하시라고 제가 숙제를 내드리곤 했었지요. “자, 우리 오마니 숙제를 잘 하셌소?” “기까짓 운동은 해서 뭘하간! 잘 뵈디두 않는데… 이리다가 죽으야디…” “아니, 오마니 이거이 무슨 소리요? 기래두 운동 하야디 돼요!” “기까딧거…” “자, 우리 운동합세다” 처음엔 투정부리시다가도 유치원 아이처럼 고분고분 따라하시던 어머니! 정신건강에는 화토치기가 좋다고 생각돼서 어머니랑 참 많이 쳤었는데… 점점 시력이 나빠져, 홍씨리와 흑싸리, 매조와 벗꽃을 구별 못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토대신에 시작한 것이 하나부터 백까지 세는 것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힘들어 하시면서도 잘 해주셨습니다. “자~ 이젠 뭘 할 차랜가요?” “길쎄… 어! 이젠 등 긁어 주야디” “운동을 잘 하셨어야 긁어 주디~. 우리 오마니 오늘 운동 잘 하셨나~?” “야, 기럼 게서 어케 더 잘 하간!” “하하하, 고럼 긁어 드리야디. 오늘 운동 잘~ 했수다! 세는 것도 두번 밖에 안 틀리고…” “야! 거참 쎄완~하다! 어케 그리 잘 긁네?” “내레 등을 긁는데야 선수 아니요~” “야! 쎄완~하다” 저를 낳으신지 20일만에, 등에 업으시고 걸어서 삼팔선을 넘으셨다는던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등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었을겁니다. 제가 긁어드리던 어머니의 등은 저의 편안한 잠자리였겠지요? 어머니! 저는 아이 셋을 기르는데도 이렇게 힘드는데, 어머닌 어떻게 여덟을 기르셨습니까? 어떻게 여덟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공부시키셨습니까? 어머니! 저는 아직도 평남옥의 설렁탕 국물을 기억합니다. 막내를 낳으시고 젖이 안나와 애태우시던 어머니! 우유빛 설렁탕 국물을 잡수시고, 그게 금방 젖이되어 나오길 바라셨던 어머니! 설렁탕 국물에 밥을 말아 잡수시던 어머니가 저는 참 부러웠습니다. 입맛 다시는 자식들을 바라보시다가, 공기마다 설렁탕 국물을 나누어 주시던 어머니! 제가 자식을 길러 보니 그때의 어머니 마음을 조금 이해 할 것 같습니다. 끼니때면 먹을 것 걱정! 달이 바뀌면 월사금 걱정! 철이 바뀌면 교복 걱정! 해가 바뀌면 등록금 걱정! 입학금 걱정! 저희들이 커서는 시집 장가보낼 걱정! 시집 장가 간 후엔 손자 손녀들 걱정!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걱정이 아니였고,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Shopping가서 계란을 보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참! 거, 계란 닞디 말고 개 가라” “저 번에 개 간거 아직두 있는데…” “기래두 개 가라우~” “기럼, 한줄만 개 갈께요” “아니야, 세줄 개 가라~ 아덜두 많은데…” “하나만 개 갈께요” “아니, 길쎄, 세줄 개 가래두~” “딴 아덜두 주야디요” “딴 아덜 줄꺼 또 이써~” “오마니, 고럼 두줄 개 갈께요” “기래, 고럼 두줄 개 가라” 계란은 다같은 계란일텐데 어머님이 농장에서 사다 주시던 계란맛이 나지 않네요. 자식들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계란을 챙겨 주시던 어머니! “오마니, 나 이제 갈께요” “기래 날래 가라” “긴데 와 일어나요?” “내래 너 가는거 보야디” “그냥 누어 계시디….” “아니 괜찮아~” “기리다가 넘어지면 어카게!?” “야! 내래 와 넘어디네?” 뚜걱 뚜걱 뚜걱 어머니의 Walker소리! “오마니, 오늘도 내차 가는거 보시같소?” “고럼~ 보야디…” 어머니께서는 5층 아파트 창가에서 떠나는 자식들의 차에 손을 흔드시는 걸 참 좋아하셨습니다. 시력이 나빠져서 제차를 못 보시는 걸 아는데도 아들을 배웅하시기 고집하시던 어머니! “고럼 내래 떠나기 전에 자동차 불을 깜박 깜박 할거니 손을 흔들라요” 창가에 서 계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동차 불을 아무리 깜박거려도 어머니께서는 손을 흔드시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자동차 불이 깜박거리길 기다리시다, 기다리시다 지쳐서 돌아서셨을 우리 어머니! 어머니! 성공율이 절반이 안 될지도 모른다던 눈을 수술하시던 날! 자식들이 얼마나 기도했는지 어머닌 아십니까? “오마니, 요게 뭐요?” “흑싸리” “요건?” “홍싸리” “자~ 이젠 이 둘중에 홍싸리를 집어 보라요” “요거 아니가?” 어머니! 저는 어머니께서 홍싸리와 흑싸리를 구별하실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어머니가 쓰시던 동전곽을 꺼내서 동전을 만져 보았습니다. “짤그락 짤그락” 어머니의 손이 닿았던 동전들! “야! 이젠 가 보라. 내일 일가야디~” “좀 더 있어두 돼요” “길디 말고 가라우~” “고럼, 다음에 또 올께요” “야, 이거 가지라” “이건 와요!?” “야, 내레 땄는데 기름값 좀 주야디….” “오마니, 내레 돈을 얼마나 잘 버는디 알우? 오마니 가지라요” “야, 내레 돈해서 뭘하간…” 2불50전 따시고 미안해 하시면서, 베개 밑에 곱게 접어 두셨던 20불 짜리 두장을 꺼내서 내미시던 어머니! “오마니, 저~기 호수에 떠 있는 거이 뭐요?” “야, 기거이 오리 아니가!?” “야~! 우리 오마니 이젠 정말 잘 보시네!” “고럼, 이젠 다 잘 보여!” “오리가 몇 마리요?” “네 마리!” “에이~! 어디 기게 네 마리요? 두 마리디~!” ”야, 네 마리야! 데~켄에 바위 위에 두 마리 앉아 있잖네!” 어머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꼬옥 잡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했습니다. “오마니, 내차가 어디 있소?” “야, 내레 오리두 보는데 네차를 못 보간?” “아니 길쎄, 어떤 거요?” “야레 참! 데거 아니가, 오른 쪽에서 두번째….” 어머니! 저는 창가에 서서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십니까? 눈을 수술 하신 후엔 창가에서 제차를 똑바로 알아 맟추셨지만, 힘이 없어 창가에 더 이상 서계실 수 없으셨던 우리 어머니! 어머니께서 안 계시는 어머니 날! 어머니 계신 곳에 갔었습니다. “오마니 내레 왔수다” “오! 우리 세째레 오누나!” “잘 계셌소?” “고럼, 아덜 다 잘 크디? 아에미두 건강하구?” “고럼요~ 보사라요 여기 있지 않소. 니뻐졌지요?” “기레 기레 도와 보인다! 야! 긴데, 너 어디 아프네?” “아니, 와요?” “네레 좀 마른 것 같따 야!” “아! 내레 니야기 안 했나? 내레 요새 운동를 해서 살을 좀 뺐수다” “야! 거~ 살이 좀 있어야 보기 도와!” “아이구, 우리 오마니 걱정두 팔자외다! 걱정 말라요” “야, 기거이 뭐가?” “꽃이외다” “거~ 비싼 걸 뭘하레 사오네?” “오늘이 오마니 날 아니요!?” 갑자기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녹두지짐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닌 녹두지짐을 참 맛있게 만드셨는데… 가장자리가 타기적전, 노릇노릇한 빛갈이 나는 녹두지짐! “야, 이리 오라. 요거 식기전에 맛 좀 보라” 젓가락으로 집어서 호호 부신 다음에 제 입에 넣어 주시던 어머니! 노릇노릇한 지짐을 한입 물면 “바삭”하고 내던 소리! 혀끝에 닿는 고소~한 맛! 어머니의 사랑의 맛이었습니다. ‘오마니, 오늘은 내레 오마니의 녹두지짐이 정말 먹구싶쑤다!’ 어머니! 저는 자그마하시던 어머니의 존재가 이렇게 크신 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힘들 때 생각나는 저의 영원한 고향이십니다!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해드릴 걸…’ 후회를 해보지만 이젠 곁에 안 계시네요. 어머니께 못다한 사랑, 자식들에게 쏟으면 어머니께서 흐뭇하게 미소지으시겠요?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했으니… “오마니! 우리 오마니!” 꼬리 글: 어머님은 저의 집의 막내 딸과 돌아가시기 전까지 15년간 함께 사셨습니다. 막내는 혼자 살면서 끝까지 어머님을 보살펴 드렸습니다. 막내는 “어머니 때문에 혼자 사는게 아니야”라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저는 믿기 힘듭니다. 다른 일곱의 몫을 막내가 다했습니다. 저희들은 막내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 돌아가시기 약2년간 어머님은 당뇨와 cataract (백내장) 때문에 힘들어 하셨습니다. 막내는 신문사 광고제작부에서 일을 했으므로 저녁에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식들이 교대로 저녁에 어머님을 돌보아 드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머님과 더 정이든 것 같습니다.

기사 등록일: 200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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