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4월의 함성 _ 灘川 이종학(소설가, 에드먼튼)
 
4월은 절규가 아닌 생명의 함성(喊聲)이 들리는 달이다. 나뭇가지마다 가녀린 새싹이 돋는 소리, 초목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소리, 새들이 짝을 찾는 소리, 개구리와 벌레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 소리. 바람이 약동과 환희를 몰고 여기저기 흔들며 살랑대는 소리가 가슴 벅차다. 솟고 일어나고 터지는 새 생명의 여린 숨결을 고르고 연두색 칠을 하는 비단결 같은 봄볕이 싱그럽다. 이런 자연의 생생한 움직임이 바로 함성이고 향연이다. 계절이 있는 세상에 사는 우리는 해마다 새봄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혼신으로 듣는 함성이며 누리는 향연이다. 비록 꿈으로 이루어졌다 하여도 우리는 온몸으로 만끽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4월의 가슴 벅찬 함성과 향연을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감회는 사뭇 다르기 마련이다.

겨울이라는 혹독한 수난과 온갖 풍상을 겪고 난 함성과 향연으로 꽉 찬 4월이기에 사람마다 가슴에 희망을 품게 한다. 얼마나 세차고 무정한 엄동의 한파였던가. 얼어 터지고 꺾이고 숨통을 조였던 눈보라의 광란은 또 어떠했는가. 모든 움직임을 억누르고 지워버리고도 속이 차지 않아 아예 삼켜버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야멸치게 긴 인고(忍苦)가 내지르는 진실의 숭고한 함성을 자랑스럽게 듣고 있다. 죽음이 곧 다시 사는 것이라는 성인들의 명언을 묵상하는 귀한 시간을 가진다.

마침 몇 마리의 독수리가 높은 하늘을 유유히 선회하고 있다. 수만 리 장정을 무사히 마치고 남녘에서 돌아온 늠름한 기상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들 독수리도 감동적인 거듭나기 일생을 산다고 한다. 독수리의 알려진 수명은 70년 이상이다. 그러나 30년이 되면 거의 빈사상태로 노쇠해서 몸 상태가 나빠진다. 단단한 부리는 깨지고 날카로운 발톱은 낡아 무디어지고, 깃털은 모두 빠져서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 맹금류의 체면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오직 죽기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나 결단력이 강한 독수리들은 바로 이때 단식에 들어간다. 절벽 틈새에 들어가 이슬을 받아먹고 30~40일 동안 칩거하면서 재생의 노력을 기울인다. 바위에 부리를 쳐서 새 것이 나오게 하고 발톱도 뽑아 새 발톱으로 바꾼다. 털이 빠진 몸에서는 새 날개가 생겨난다. 이렇게 거듭난 독수리는 인고의 보상을 받아 다시 강인하고 위압적인 맹금류다운 삶을 산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은 ‘발달’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마흔 안팎에서 정신기능에 필요한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소위 철부지 ‘내면아이’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적절한 자기 개혁이 필요하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심신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자세가 있어야 한다. 자기 완성도를 이루려는 성찰이며 변화이다. 독수리의 금식과 같은 거듭나는 자체 혁신의 인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삶을 절대 권장하는 까닭을 거듭 생각하게 한다. 미국의 시단에 큰바람을 일으켰던 휘트먼(1819~1892)의 보석 같은 명시 ‘보다 힘찬 교훈’을 다시 낭송해 보자.

당신은 지금껏 당신을 찬미하며 당신에게 공손하고 당신에게 길을 비켜
주는 사람들의 가르침만을 배워 왔단 말입니까?
당신은 당신을 거슬리고 당신에게 버티고 당신을 업신여기며 앞서 가려고
당신과 다투는 사람들의 크나큰 가르침은 배우지 못했단 말입니까?
아직도 미생(未生)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이제 여든네 번째 봄의 함성을 듣는다. 그러나 아직도 내 영혼에 말을 거는 그 함성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안타깝고 송구할 따름이다. 자연의 재생 아닌, 완생의 계절 한가운데 서서 이렇게 늙어도 되는가 싶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절, 진리와 승리의 함성을 들을 때도 그렇다. 나는 언제까지 미완의 자화상을 지켜봐야 하는가? 염치없는 자문을 한다. 처음부터 완생은 없다. 우리는 모두 미생이라는 말에 자위하기에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미생(未生)은 바둑용어에서 나온 말이다. 완전한 두 집 이상을 확보하지 못해서 작은집이든 대마이든 살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미생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때에 따라 완전히 살아날 수도 있고 사적(死石)으로 전락하기도 하다. 바둑을 둬본 사람이면 누구나 심각하게 체험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기사(棋士)들은 신의 수를 얻으려 머리를 싸맨다. 그러나 극히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국자의 묘수에 허물어지고 패배한다. 다시 말하면 바둑이든 인생사든 미생이나 미숙하기 또한 어렵다.

나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새봄을 맞아 투박한 겨울옷들을 치우고 신발도 가벼운 것을 꺼냈다. 불목한이 미생(未生)을 벗어나는 노력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멈추고 싶지 않다. 다만 미생(未生)을 탈출하지 못할 바에야 그 피나는 노력을 미생(美生)이라는 민낯으로 만족하는 최선의 노력이라도 계속하기로 했다.

기사 등록일: 2016-04-22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웨스트젯 캘거리-인천 직항 정부.. +1
  캘거리 집값 역대 최고로 상승 ..
  4월부터 오르는 최저임금, 6년..
  캐나다 임시 거주자 3년내 5%..
  헉! 우버 시간당 수익이 6.8..
  앨버타, 렌트 구하기 너무 어렵..
  캐나다 이민자 80%, “살기에..
  앨버타 데이케어 비용 하루 15..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주유소, 충격에 대비하라 - 앨..
댓글 달린 뉴스
  넨시, “연방 NDP와 결별, .. +1
  재외동포청, 재외공관서 동포 청.. +1
  CN드림 - 캐나다 한인언론사 .. +2
  (종합)모스크바 공연장서 무차별.. +1
  캐나다 동부 여행-두 번째 일지.. +1
  캐나다 영주권자, 시민권 취득 ..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