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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데모, 황국협회와 어버이 연합_오충근의 역사기행
 



만민공동회

조선 말기에는 나라가 어수선했다. 조정은 무능했고 관리들은 부정부패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쥐어짜기에 혈안이 되었다. 러시아, 미국, 청, 일본 등 열강들은 조선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궁리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일부 깨어 있는 선각자들이 앞장 섰다. 500년을 이어온 왕업인데 나라 걱정하는 선비들이 어찌 없겠는가.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려는 지사들은 대중을 계몽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만민공동회다. 만민공동회의 성격은 요즘 말로 한다면 시민운동으로 독립협회의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가 시작했다.
만민공동회는 대중집회를 열어 시국에 관한 연설, 강연, 토론을 벌였다. 조정에 대한 건의사항을 의결하기도 했다.
만민공동회는 이름 그대로 만민(萬民) 즉,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양반관료를 비롯해, 평민, 근대 교육을 받은 지식인, 소상인, 농민, 심지어 천민인 백정까지 참여했다. 만민공동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1897년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1898년이다. 만민공동회가 결성될 당시 독립협회 회장은 국가대표 매국노 이완용이었는데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는 바람에 부회장 윤치호가 회장 대행을 했다.
만민공동회가 결성될 때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꿔 만방에 독립국임을 선포했다. 그러나 독립국 선포해 제국이 되고 전하가 폐하가 된다 해서 국내 외 상황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라 여전히 대한제국은 열강들이 보기에 만만한 호구였다.

아관파천, 러시아의 영향력

을미왜변 때 부인이 일본 양아치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치욕을 겪은 고종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했다. 이것을 아관파천이라 하는데 명색이 임금이란 자가 남의 나라 공사관에 기생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고 그나마 명색만 남아 있던 자주권은 명색마져 없어져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이런 저런 요구를 해왔고 조정에서는 러시아 요구를 물리치기 어려웠다. 항구를 내놔라, 벌채권을 달라, 금광 채굴권을 달라, 요구가 한 두가지 아니었다.
보다못해 민중들이 일어섰다. 1차 만민공동회가 열린 게 1898년 3월10일인데 모임을 기획한 것은 전술한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 3인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고 배재학당과 경성학당읮 젊은 교사와 학생들을 내세웠다. 그 때 배재학당 대표로 나선 이가 이승만이다.
1차 만민공동회에 대해 당시 독립신문은 “오늘 오후 2시에 종로에서 유명한 유지각한 이들이 좋은 연설을 한다고 뜻있는 군자들을 청하였다”고 모임을 소개했다. 이날 종로에는 만 명 가까이 모여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서울 인구가 20만명이 채 안되었으니 요즘 인구로 환산한다면 50만명이 모인 거다.
이날 회의에서는 쌀장수 현덕호가 회장으로 뽑혔다. 이것은 민중의 참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날 집회에서는 러시아 군사고문과 재정고문을 철수 시키자는 여론을 환기 시키고 이런 주장을 담은 결의문을 만민공동회 이름으로 조정에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만민공동회 러시아 규탄

이날 연사로 나선 이승만, 현공렴, 조한우, 홍정후 등은 비분강개한 목소리로 러시아를 규탄했다. 러시아는 부산 앞 바다의 절영도를 석탄 저장소로 조차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친러파 인사로 가득한 조정에서는 이를 허락하려고 했다.
이날 연사들은 절영도 조차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날 만민공동회는 “이 땅을 러시아게게 내 줄 수 없다”면서 “절영도 조차 허가를 취소할 것, 러시아 군사 교관 및 재정 고문 철수, 러시아 자본으로 설립한 노한 은행 철수”를 정부에 요구했다.
대회는 성황리에 마쳤다. 질서정연하게 대회가 끝나자 서재필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보시오, 내 말이 맞지 않았소. 우리 민족이 워낙 자질이 뛰어난 민족이라 교육만 제대로 받으면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란 내 말 그대로 되지 않았소.”
요구사항을 적은 편지는 대표 세 명(이승만 현공렴 장붕)이 민종묵 외부대신에게 전했다. 민종욱은 “공동한 의론을 알았으며 러시아 고문관과 사관을 보낼 일은 군부와 탁지부 소관으로 정부에서 의판하기를 기다리라”고 회신했다.
만민공동회의 요구는 관철 되었다. 러시아는 절영도 대신 만주 요동반도로 해군을 이동했고 3월17일 재정고문과 군사교관 철수를 통보했으며 노한은행 설립도 폐지하였다. 만민공동회의 승리였다. 이때를 기해 만민공동회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고 독립협회 회원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민중은 깨어나고 있었다. 1898년 3월12일 독립신문은 “수백 년 의 고질든 양반의 창자는 빼어버리고 다시 평등 관리에 문명 자유의 오장육부를 새로 집어 넣어야 한다.”고 평안북도 구성군의 사는 독자 투고를 실었다.

탄압 받는 만민공동회

이 때를 계기로 자신감을 가진 만민공동회는 여러가지 개혁안을 정부에 요구해 관철 시켰다. 깨어나는 민중들은 제국의 신민이 아니라 나라의 근본인 인민으로 변해갔다. 변화를 두려워 한 것은 정부였다. 특히 헌의 6조에서 왕권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고종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무능한 지도자일수록 내 백성, 내 국민 탄압하는데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데 고종도 그랬다. 고종의 뜻을 받들어 황국협회가 생겼다. 황국협회는 보부상들의 조직이 주축이 되었다. 보부상들은 조직이 잘 되어 있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보부상들은 조선 시대 관제동원 된 적이 많은데 외적을 무찌르는데 동원 되기도 했지만 정권유지에 동원된 적도 많았다. 대원군도 보부상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조정에서는 보부상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대가로 상권을 인정했다. 황국협회가 조직될 때 황태자는 1,000원을 하사했는데 이는 고종의 뜻이기도 했다. 이들은 만민공동회가 열리면 물푸레 몽둥이로 무장하고 대회를 급습해 군중을 마구 구타하며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군중들은 피를 흘리며 쓸어졌으나 분연히 관제폭력에 저항하며 일어섰다.
만민공동회가 열리는 종로에는 농민 백정 가마꾼 소상인 떠돌이 각설이 패 기생 어린아이 심지어 걸인들까지 집결해 감동적 시위를 벌였다. 타오르는 민중의식은 대한제국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황제폐하는 민중의식에 찬물을 끼얹었다.
황제폐하가 하사하는 국밥으로 배를 불리고 나눠주는 재물에 감읍한 황국협회 회원들은 더욱 악랄하게 만민공동회를 습격했다. 나중에는 군대까지 동원해 탄압했다. 자발적으로 모인 수만명이 대회를 개최하려다 군인들이 출동하다 투석전을 벌이면서 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조직적인 관제 폭력으로 만민공동회는 일년을 못 넘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되풀이 되는 역사

젊은 날 만민공동회 연사로 활약했던 이승만은 관제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자 관제폭력을 동원해 정권유지 수단으로 삼았다.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백골단, 땃벌레, 민족자결단 이란 관제폭력 집단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위협해 정권을 유지했다.
언제부터인지 어버이 연합이라는 조직이 시민단체 시위에 맞불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시위마다 찾아 다니며 폭언 폭력으로 시위를 무산 시키려 했다. 경찰은 어버이 연합의 폭력을 보고도 못 본척 해 “혹시 정권과 결탁한 단체가 아닌가”라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다 그 배후가 밝혀졌다.
청와대 행정관의 지휘를 받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금품을 지원받은 사실이 밝혔졌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라를 빼앗기는 슬픔이 있었고 국토가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어 오늘도 관제 폭력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다.
역사에서 깨닫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내일이 없다는데 일당 2만원에 동원되는 관제폭력, 대한민국에게 내일은 없는 것인가?

기사 등록일: 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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