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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임새의 삶 (자작수필)_ 灘川 이종학(소설가, 에드먼튼)
 



“......외로운 꽃 춘향이가 남원 옥중 추절이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동헌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이 날 살렸네 ……(얼씨구, 쿠쿵 더러러럭).”
달 같은 마패를 해같이 들어 메고 ‘어사출두’를 외치며 이몽룡이 춘향을 구하고 춘향이 기뻐하는 판소리 춘향가의 절정 순간이다. 춘향가의 대역전 대목을 중모리장단으로 명창이 흥겹게 부를 때 고수(鼓手)의 소리북 장단과 추임새 또한 신명이 하늘에 닿는다. 가락의 알맞은 곳이나 구절 끝에서 ‘좋다’, ‘얼씨구’, ‘아먼’, ‘좋지’, ‘으이’ 따위 흥겨운 추임새와 ‘쿠쿵 덕 기덕’ 같은 소리북 장단은 명창은 물론 청중의 흥을 돋우는 일등공신 노릇을 한다.
백과사전은 추임새를 이렇게 정의한다. “소리판에서 창자의 소리에 고수 또는 청중이 감탄사를 내면서 흥을 돋우는 것. '추다', '추어준다.'는 동사와 '새'라는 불완전명사의 합성어인데 칭찬해 주는 뜻과 참여하는 뜻을 함께 가진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민요, 잡가, 무가 등 다른 분야의 소리판에서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인류구전과 무형유산걸작’으로 뽑힌 판소리의 구성 요소의 하나에 포함될 만큼 고수의 추임새는 절대적이다. 명창의 흥을 부추기고 힘을 돋우는 한편 청중의 감흥을 자극하는 조흥사(助興詞)이다. 이토록 그 역할이 대단하다 보니 고수의 능력은 진정한 고수(高手)이어야 하겠다. 고수는 또한 장인(匠人)이다. 추임새 넣는 순간을 잘못 짚어 아무 때나 남발하거나, 음정의 강약을 비롯한 고저와 빠르고 느림을 조절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명창과 관중의 흥을 깨는 작파가 생기므로 고수는 추임새를 선택하는 날카로운 순발력과 판단력을 갖추는 게 기본이다.
우리는 재즈와 랩뮤직이나 클래식과 포크 음악에서도 강렬한 추임새를 경험한다. 울림통이나 탬버린 같은 악기로 간간이 추임새를 넣는다. 램 뮤직에서 박자를 맞추어 비트를 넣는 비트 박스는 판소리의 고수 못지않은 재기 넘치는 음악성을 요구한다. 특히 플라멩고에서 손뼉 치며 올래! 하고 외치듯 정열적으로 화답하는 추임새도 인상적이다. 노래 중간에 들어가는 효과음은 바로 추임새가 분명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열광하는 청중의 뜨거운 소용돌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더없이 멋들어진 추임새가 아니겠는가. 한편, 서양의 고전음악에서 정숙은 청중이 지켜야 할 예법이다. 바로 일종의 의도된 침묵 자체가 차원 높은 추임새임을 입증한다. 또한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청중의 기립박수와 우레와 같은 환호는 판소리 마당 청중의 좋다! 얼쑤! 같은 추임새와 다른 바 없다.
추임새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우리 삶에 추임새는 짙고 두껍게 깔렸음을 부인할 수 없다. 먼저 가정을 돌아보자. 부부를 위시한 가족 서로가 긍정하고 이해하고 칭찬하는 추임새 분위기 없이는 잠시도 가화만사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부간에 고비마다 여보 ‘고마워’, ‘애썼어요’ 라는 정겨운 추임새는 피곤을 씻어 주고 애정을 불러온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적절한 한 마디 추임새는 훈도와 용기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한다. 서로 눈빛만 보아도 안다는 등의 무관심한 암묵(暗黙)은 판소리나 뮤지컬 청중의 의도된 침묵과는 완전히 다르다. 말과 표정 이상으로 적극적인 소통의 뜻을 함축한 정중동의 조요한 분위기는 바로 추임새의 효과를 나타난다.
사회생활에서도 추임새의 역할은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온다. 대인관계의 특별한 처세 교육이 그래서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거든다, 맞장구친다고 말한다.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는 추임새이다. 박수하고 화답하는 행위,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 이 모두가 남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 주는 추임새이다. 남이 열심히 자기주장을 개진하는 자리에서 하품하고 졸거나 헛기침으로 딴청을 부리고 차가운 눈빛을 보이는 짓은 추임새가 아니라 초를 치며 엿 먹이는 언동이다. 반대의견은 기회를 얻어 당당하게 표명한다. 듣기 거북하면 조용히 자리를 뜨는 예절은 현대를 사는 사람의 덕목이다. 추임새에 인색한 삶은 각박하다. 추임새는 바로 협력이며 소통이다. 협력과 소통이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고독과 아집을 몰고 온다. 독선과 자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바람직한 추임새의 삶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겉치레 추임새, 지나친 추임새, 위장된 추임새, 대가성 추임새 등에 주목한다. 바늘에 실을 꿴다(穿針引線) 해도 옳소! 하는 사람들, 알바로 짜인 오빠부대, 박수부대, 펜클럽의 정열적인 추임새 조작은 사회악을 조성한다. 추임새로 등급을 매기는 불완전사회의 시작이다. 무지, 묵인, 무언은 잠재적 동조의 혐오스러운 아성을 만든다. 끼리끼리 손뼉 치는 사람들, 자기 자신에게 추임새를 넣는 사람들을 말한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어 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자가도취 저질 추임새의 트라우마가 공포로 다가온다.
남을 위한 추임새에는 극히 인색하면서도 나를 위한 추임새만을 욕심내는 우리가 다시 되새겨야 할 말이 있다. “인생이 지나가는 무대에서 우리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각하라.”(셰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 대사 중에서)

기사 등록일: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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