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자작수필) 찢어진 청바지 _ 灘川 이종학<소설가, 에드먼튼>
 
해마다 여름이 조금씩 일찍 찾아오는 느낌이 든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더위가 여성들에게는 더없이 살맛 나게 한다.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여성들의 옷차림이 열정적이고 섹시해진다. 역시 여름은 여성의 계절이다. 소매와 치마나 바지의 길이가 과감하게 짧아지면서 부드럽고 육감적인 살결의 노출이 가히 선정적이다.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찢어진 청바지의 출현은 언제나 주변의 시선을 끌고 다니기에 손색이 없다. ‘디스트로이드 진’이니 ‘빈티지 진’이라는 패션 용어가 붙을 정도로 유명해진 찢어지고 해진 청바지이니 유행의 당당한 위세는 오래 갈 것 같다. ‘찢청’으로 애칭 되는 볼썽사납게 흠집 낸 청바지의 유행은 야하다는 금기에 대한 애교 넘치는 빈티지 혁명이라 지적할 수 있다.
옷을 일부러 찢어서 입는 유행은 15세기 유럽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살이 훤하게 드러나도록 일부러 찢거나 너덜거리게 해서 멋을 부리는 옷차림이 처음에는 영 낯설었다. 그만큼 시대의 유행을 제대로 따라 읽지 못하는 구세대인 탓이리라. 그러나 가난이 아닌 패셔너의 한 단면임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누더기진 스타일에서 최신의 감각적인 일탈(逸脫)의 멋을 찾아낸 파격적인 캐주얼 무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예로부터 옷은 삶의 절대 요건일 뿐만 아니라 그 옷차림은 생활의 정도와 품격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왔다. 옷이 날개라는 속담처럼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또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 옷을 화제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세차 모년모월모일에 미망인 모 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니…….”로 시작하는 조선 시대 유씨 부인의 유명한 ‘조침문(弔針文)을 우리는 기억한다. 오랫동안 아끼고 애용하던 바늘이 부러지자 바늘을 의인화해서 지은 제문이다. 그 조문 가운데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를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라는 내용이 있다. 실과 바늘만 있던 조선 시대에 작은 바늘 하나가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짐작케 한다. 실과 바늘은 옷을 새로 만드는 데 필요하지만 해지고 찢어지고 터진 옷을 꿰매고 깁거나 천을 덧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여인의 필수품이다.
신발 수선집에서는 신발 구멍 난 곳을 꿰매거나 밑창도 갈아 주지만, 옷 수선집에서는 찢어진 옷을 깁거나 꿰매 주지는 않는다. 다만 짜깁기 정도의 수선이 고작이다. 헌 옷 손질은 오로지 집에서 여인의 손이 해결해 준다. 여인들은 해지고 볼품 사납게 찢어진 낡은 옷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손질한 자리가 눈에 잘 보이지 않도록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다. 각설이나 입는 누더기진 옷은 바로 가난의 표증이다. 빈티가 옷에 주르르 흐른다. 제아무리 잘난 인물도 여기저기 손댄 헌옷 입고는 맥을 추지 못한다. 학교 교문에서도 복장단속 제1호에 해당한다. 그런데 빈곤과 천박함의 상징인 이런 너덜너덜 남루한 옷이 이제는 포인트 만점인 세련된 스타일이라고 선남선녀들이 돈을 주고 사 입는 세상이 되었다. 더구나 외모와 이미지에 목숨을 걸다시피 집착하는 여성들이 선호하다니 유구무언이다. 찢어지고 터진 채로 입을 수 있는 바지는 청바지가 유일하다고 한다. 청바지는 겉실과 안실이 달라서 찢어도 내부의 실이 멋지게 들어나 디자인적인 효과도 좋고. 나름 남들과 다르다는 개성 표현은 물론 여름에 시원하고 여성의 경우는 섹시해 보인다고 찢청 애호가의 예찬론은 끝도 한도 없다.
여성의 치마 단을 번쩍 걷어 올리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바지를 여성에게 입히는 일대 혁신을 주도한 사람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프랑스의 코코 샤넬이라고 한다. 몸을 가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여성들에게 노출을 선동하고 사회 참여를 유도한 파격적 행위였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각 분야의 발전에 여성은 크게 공헌하게 되었고 발언권 또한 막강해졌다. 동시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의욕은 무한지경으로 달려가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의 출현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찢어진 청바지는 노출 효과를 극대화한다. 가리는 것과 벗는 것, 그 중간이 노출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청바지의 여기저기 찢어진 틈새에 견눈질하며 훔쳐보는 호기심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음이다. 노출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고도 남는다. “슬쩍 보지마세용…….”이라, 써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노출이 아니라 외설(猥褻)에 가깝다.
패션이든 노출, 외설이든 찢어진 청바지만으로는 거지꼴 이외의 표현은 불가능하다. 살을 가리지 못한 빈곤에 불과하다. 특정한 개념을 살리려는 승화된 조화(調和)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헐어 구멍 난 곳은 개성으로 살아나고 매혹적인 멋의 대상이 된다. 소위 언밸런스의 미를 찾아냈음이다. 찢어진 청바지에 해지고 낡은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을 상상해 보자. 센스 있는 스타일이라며 한 번 더 눈길을 보내겠는가? 참신한 색상의 셔츠나 재킷, 패셔녀불한 신발 등과 세심한 믹스 & 매치를 해서 데미지 청바지를 입은 멋쟁이를 대하면 남성들은 정신이 어찔해진다. 비로소 찢어지고 구멍 난 데미지 진을 따라다니며 슬금슬금 호기심 짙은 눈길을 보내기 마련이다. 빈과 부, 추와 미가 기막힌 조화의 공존을 이루었을 때 첨단의 기막힌 세련미가 돋보임을 다시 감탄한다. 이게 비단 찢어진 청바지에서만 있는 일이겠는가.

기사 등록일: 2016-07-22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캐나다 소득세법 개정… 고소득자..
  앨버타 집값 내년까지 15% 급..
  첫 주택 구입자의 모기지 상환 ..
  로블로 불매운동 전국적으로 확산..
  에드먼튼 건설현장 총격 2명 사..
  개기일식 현장 모습.. 2024.. +2
  해외근로자 취업허가 중간 임금 ..
  앨버타 신규 이주자 급증에 실업..
  앨버타 주민, 부채에 둔감해진다..
  연방치과보험, 치료할 의사 없어..
댓글 달린 뉴스
  2026년 캐나다 집값 사상 최.. +1
  개기일식 현장 모습.. 2024.. +2
  <기자수첩> 캐나다인에게 물었다.. +1
  캐나다 무역흑자폭 한달새 두 배.. +1
  캐나다 동부 여행-네 번째 일지.. +1
  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