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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수기) 야 빵 맛있겠다. _1
본 글은 CN드림에 2003년 5월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글 : 이경임님 (캘거리 교민)
작가 소개) 이경임님은 결혼한지 14년되었고 21년전 남편과 처음 만났으나 결혼을 하기까지의 애뜻했던 사연들을 담은 이 글은 총 5회에 걸쳐 CN드림에 연재됩니다. 남편께서 다리가 불편한 분이셨기에 겪을수 밖에 없었던 여러가지 여러움이나 아픔을 극복하고 두 사람이 결혼을 하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담겨있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이야기가 CN드림을 통해 펼쳐집니다.


제목 : 야, 빵 맛있겠다
1982년 11월25일.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이는 대구에 있는 A대학교 학생이었고 나는 B대학교 학생이었다.
숙모님 집에서 더부살이 하던 난 우리학교의 도서관 보다 더 가까이 있는 A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했고 그때도 학년말 시험기간이라 새벽에 가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원래 공부 안하는 학생이 공부하려면 정전이 된다거나 연필이 모두 부러진다거나 영어 사전을 잊어먹고 안 가져 왔다거나 등등 다른 잡다한 일과 생각이 들듯이 나도 배가 출출하다는 생각에 준비해간 빵을 뜯어 먹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난 먹는데 만큼은 목숨을 건다. 그런데 내 옆을 지나가며 말한 한마디 "야, 빵 맛있겠다." 라는 말에 고개 들어 보니 다리는 불편하였지만 해맑은 얼굴에 약간은 개 궂어 보이기도 하고 귀공자 같이 보이기도 한 그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만의 착각 일지도 모름. 그땐 눈에 콩깍지가 씌웠으니까)
햇빛 한번 쐬어 보지 않은 것 같은 뽀얀 피부에 고생이라곤 한번도 해 보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온실 안의 화초가 따로 없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책을 들고 그이에게 다가가 풀지 못한 문제를 묻곤 하는 것을 보아 공부를 꽤 잘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작은 메모지에 "시험 잘 치세요." 라는 글을 써서 그이의 책상 위에 얹어 놓고 학교로 향했다.
가슴이 설레인다 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이의 모습은 항상 내 머리 한쪽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시험 공부를 빙자해 나는 남의 학교 도서관을 몰래 이용했다. 하지만 그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공부는커녕 마음은 콩밭에 있었고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이의 모습이 자꾸만 내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그이의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이는 나와 같은 81학번으로 매월 학교에서 용돈까지 받아쓰는 장학생이며 교수님의 조교로 있으면서 조교실에서 주로 공부를 하고 도서관엔 가끔씩 온다고 하였다. 마지막 시험 날이었던가,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그이의 모습이 보였다. 학년말 시험이 끝나고 나는 내 친구를 끌고 나가 샌드위치 데이트를 하였다.
차도 마시고 오락장에서 사격이랑 겔러그 게임도 하고. 그때는 오락실이 생기기 시작한 때였고 오락 또한 겔러그나 벽돌치기, 제비우스 같은 종류였다. 아마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분이라면 이러한 종류의 오락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분도 많을 듯 하다.
그이의 겔러그 솜씨는 감탄사를 자아낼 만큼의 실력이었고 나는 고작 6-7만점이면 족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50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넣고 재미있어 하던 때였다.
우리집은 시골에서 여관이 딸린 목욕탕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 오면 목욕탕이 바빠지므로 겨울 방학이 되면 나는 시골로 하루빨리 가야 했다. 나만의 생각이었는지 그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데이트는 거기서 끝이 나는 듯 했다.
정신없이 겨울 방학을 보내고 3학년이 되었다. 숙모님은 작은 아파트에서 약간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길가다가 우연히 우리는 마주쳤다.
어쩌면 우리의 만남은 하느님이 만들어 내신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의 소개도 없이 처음부터 우리는 도서관에서 만났고 두번째 역시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으니 말이다. 그이는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편 아파트에서 누나랑 남동생이랑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샌드위치가 아닌 우리 둘만의 데이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벚꽃이 눈송이처럼 흩뿌릴 때면 앞산 길을 걸으며 손을 잡았고 케이블카를 타며 좀더 가까이 앉을 수 있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면 자판기 커피 한잔을 나눠 마시며 서로의 체온을 녹였다. 만나는 첫날 손잡고 팔짱 끼고 키스하는 요즘의 신세대들이 들으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친구처럼 애인처럼 조금씩 조금씩 너무 빠르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게 가까워졌다.
그러면서도 난 행여 우리의 데이트가 아는 사람이나 친구들의 눈에띌까 걱정했지만 겉으론 그이가 서운해 할까 봐 안 그런 척 하였다.
몸이 불편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남의 시선, 그이는 그 어려운 일을 세 살 때부터 해 와야 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아기일 때 그이는 그만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이에게는 누나 셋에 형이 한명, 남동생이 한명 있었는데 그 형은 세 살 때쯤 하늘 나라에 가버렸다. 그리고 태어난 귀하고도 귀한 아들이 이번엔 소아마비에 걸린 것이다.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어머니는 뛰어 다녔지만 병을 고칠 수는 없었다.
그이를 바라 보는 나의 시선에는 이미 그이에 대한 연민의 정이랄까 모성 본능이랄까 하는 것이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식당에 가서 해물탕을 주문했다. 조금 뒤 먹음직스런 해물 탕이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었고 그이는 꽂게 다리에서 게살을 발라 내 숟가락 위에 얹어 주기도 하고 대합이랑 낚지 다리도 잘라 주었다.
미더덕을 먹을 땐 미더덕 속의 국물이 뜨거우니 입 안이 데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으라고 까지 했다. 그 자상함 이야 말로난생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나의 대학 시절 나의 어머니는 내게 물 탱크 청소, 페인트칠, 여관방 도배 같은 일을 내게 시키고 용돈을 주셨다. 집에 일 할 사람도 없고 품값도 비쌌기 때문이다. 몇 날, 몇 일을 천정을 벗 삼아 도배를 했고 때론 석면으로 파이프를 감기도 했으며 사람키 보다 높은 물탱크 속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솔질을 하기도 했다.
이곳 캘거리의 보석 같은 눈처럼 하늘색 페인트가 롤러에서 떨어져 내 머리위를 장식 하기도 했다. 목에 깁스를 한 것 같이 목을 가누기 힘들어도 석면 때문에 피부가 몇일 동안 따끔거려도 그 다음에 내게 주어 질 용돈에 신나 일을 했었다. 그땐 나도 목돈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나는 그 돈으로 명품 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명 브랜드 옷을 사 입거나 다른 필요한곳에 쓰곤 했다. 그렇게 자라온 나에게 그이의 자상함은 난생 처음 받아 보는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나에게 주었다. (지금 목하 열애 중인 분들은 해물 탕을 사 먹읍시다.) 감동, 감동 그 자체였다.
그이의 단과대는 대명동에서 성서 캠퍼스로 일부 이사를 하였는데 그이는 학교가 너무 멀어 통학하기에 힘들었으므로 친구랑 방을 하나 얻어 자취를 하였다. 그 친구는 대학교에 입학 하던 날 우연히 만난 친구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주먹 꽤나 쓰던 의리 많고 터프한 경상도 사나이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대뜸 그이에게 말하기를 “보아하니 그쪽은 공부를 좀 하는 것 같으니 내게 공부를 좀 가르쳐 주고, 나는 그쪽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것 같으니 그 성격을 활달하게 고쳐 줄 테니 우리 친구합시다”하고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둘이는 서로의 단점을 잘 보완해 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덕에 그이는 많이 밝아지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총 5편까지 있어요. 기사 검색으로 찾아보세요)

본 글은 CN드림 2003년 5/2일자와 2005년 1/1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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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3-05-02
운영팀 | 2021-12-09 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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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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