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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정부 초청 방문 체험기(7_마지막회) _ 글 : 이미수 (캘거리)
금문섬 지도 
고량주공장 
칼공장 
방공호 
대만의 최전방: 금문섬

대만 정부 초청 방문 체험기의 마지막 회인 오늘은 대만 여행중 가장 한반도를 떠오르게 했던 금문섬을 소개하려 합니다 (金門島). 비록 그동안 방문했던 장소들 같이 정교하고 화려한 식사 대접을 받거나 뛰어난 경관을 구경한것은 아니었지만 미래에 대한 소망과 세계 평화에 대한 단상을 가질수 있었던 여행지 입니다. 금문섬은 중국과 대만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중국 본토와 가장 가깝게 위치한 대만령 국토입니다.

대만섬 보다 중국 본토에 훨씬 더 가까우며 위치에 따라서 금문섬과 중국과의 거리가 2km이하인 곳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1949년 이후로 줄곧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최전선의 역활을 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완화된 지금은 주둔 군대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섬의 많은 부분이 군사 작전 지역이여서 민간인 출입 및 사진 촬영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사진에 나온 지도에 나타나 있듯이 왼쪽 밑에 위치한 금문섬 북쪽에서 중국 본토의 푸지안성의 주요 여러도시들과의 거리는 금문섬과 타이페이 사이의 거리에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훨씬 가깝습니다. 대만과 중국 사이의 내전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 타이페이에서 멀리 떨어지고 중국에 밀접한 이 섬이 아직까지도 대만 영토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금문섬 전체가 대만 방어를 위한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인만큼 금문섬 일일투어 대부분의 시간은 기존에 사용되었던 과거 군용시설 및 대만 국방과 연관된 민간 시설을 방문하는데에 할애 되었습니다. 섬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금문섬 고량주 공장 이었습니다. 이 주류공장은 사람들이 거주하기 꺼려하는 최전방 지역의 경제활성화에 한몫한 장소입니다.

처음 싱가폴에서 이주한 화교 상인이 값비싼 쌀 대신 수수와 밀로 백주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 술이 금문섬에서 배치된 군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자 1952년에 대만 국방부에서 판매권을 강제 징발하고, 그후 2000년에 민영화 되기까지 대만 정부 산하 국영운영된 기업입니다. 주류공장 투어를 하면서 자연스레 과거 한국의 담배인삼공사가 생각 났습니다.

고량주는 첫 맛은 달콤하지만 알코올 농도가 자그마치 58도에 달하는 증류주로서 대만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즐겨 찾는 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이 12병이나 선물로 사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공장 밖에는 거대한 고량주 모형이 두개나 전시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이 쉽게 발견할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두번째로 고량주 공장후 방문한 곳은 우장인의 칼공장이었습니다. 이 기업이 시작된 계기도 중국과 대만사이의 내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원래 금문섬의 철광석 매장량은 섬안에서 사용할 농기구나 부엌용품을 만들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 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지 제철공들은 원래 일감을 찾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만의 격동의 현대사 덕분에 우씨 가문 대장장이들은 생각지 못한 호황을 경험 했습니다.

현재 칼공장 주인의 아버지인 우차오시 씨는 처음 세계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 포격한 포탄 잔해를 주워와서 강철 식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1958년 8월 23일과 10월 5일사이 44일간 벌어진 중국 공산당의 무차별 금문섬 포격에서 살아남은 이후 우차오시씨는 좀더 체계적으로 섬 전체에 퍼진 포탄 잔해를 사들여서 고급 품질의 식칼을 직접 제조해 판매 했습니다.
전쟁의 잔해를 이용해서 성공적인 중소 기업을 탄생시킨 아이디어에 절로 감탄하며 이것이 바로 어부지리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포탄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강철은 보통 철에 비해 훨신 밀도가 높고 정제된 쇠를 쓰기에 이를 재료로 하는 식칼 역시도 단단하고 질좋을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성들여 수공예로 만든것이기에 우장인의 칼은 대만 전역에서 인정 받는 명품 식칼로 유명해 졌습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우청통씨는 손님들이 직접 칼공장을 방문해서 원하는 포탄을 직접 골라서 맞춤형 제품을 주문할수 있게도 하고, 제조 과정을 구경할수 있게 하면서 사업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키워왔습니다. 1958년에 있었던 44일간의 폭격 동안 백만개 이상의 폭탄물이 금문섬 전체에 떨어졌고, 그리고 그후 냉전기간 내내 이틀에 한번씩 선전물 포탄들이 발사되었다고 하니 중국측에서는 의도치 않게 대만 측에 값싸고 질좋은 강철을 제공한 격이 되었습니다. 57년이 넘게 운영 되왔고 끊임없이 칼을 수제 제작해 냈지만 아직도 칼을 만들 포탄들이 부족하지 않게 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왔습니다. 공장에 진열된 수많은 포탄들 외에 더 많은 포탄 파편들이 다른 창고들에 쌓여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주방용 칼을 만드는데 쓰여지는 포탄은 주로 포탄 파편, 선전 유인문통 내부 강철, 그리고 선전 유인문 포탄 외부 탄피라 합니다. 전시물을 구경하고 있을때 모자이크 타이완 정부 초청 방문을 기념하여 특별히 우청통씨가 직접 칼제작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연해 주셨습니다. 장인이 능숙한 손길로 포탄 조각을 뜨거운 용광로에 여러번 달군후 사정 없이 망치로 두들기며 원하는 모양으로 능숙하게 잘라내는 동안 사람들 모두 어느새 숨을 죽이고 구경했습니다.

모양이 어느정도 다듬어진 후에도 다시 몇번에 걸쳐 불타오르는 용광로와 망치질을 거치고 나서야 칼이 숫돌에 갈리고 날카로와 졌고, 15분이 채 안되서 투박했던 포판 조각이 광나는 대만 전통 전사 검으로 변하고 나서야 다들 침묵을 깨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공식적인 칼 제작 시연이 끝난후에 하나둘씩 기념품 가게로 향했지만, 다들 떠난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다른 칼들을 만들고 있는 직원을 구경 했습니다. 용광로의 열기와 망치질의 따가운 소음속에서 제련되는 빨갛게 달구어진 강철을 보면서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포탄과 정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탄들이 장인의 손을 거쳐서는 목적이 바뀌어 져서 사람들이 즐겨 먹을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식칼로 변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같은 재료로도 사람을 죽일수도 있고 살릴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선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판매되는 주방용 칼세트를 하나 사고 싶었지만, 이 공장에서 판매되는 칼들 전부가 수공업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비쌉니다. 게다가 생각지 못하게 타이페이 호텔에 신용카드를 전부 다 놔두고 오는 바람에 있는 현찰을 긁어모아서도 미화 $21에 상당하는 작은 과도만 하나 살수 있었습니다.

현찰이 없던 탓에 다른 기념품을 구입 할수 없었지만, 평생 간직하고 사용할수 있는 기념품을 하나 건질수 있는 만족스러운 투자였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전쟁용 무기를 재활용해 만든 과도를 구할수 있는게 쉬운일은 아니니까요. 그동안 산 기념품들중 가장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물건 인듯입니다. 게다가 제 요청대로 우청통 씨가 흔쾌히 손수 제 이름과 방문 날짜를 과도에 새겨주기까지 했으니, 이세상에 하나뿐인 저만의 과도가 생긴것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방공호와 마샨 방송-관측탑을 방문하며 금문섬 투어를 마무리 했습니다. 처음 이곳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 받은 후에, 대포 발사 시범식 전까지 각각 흩어져서 어둡고 서늘한 방공호와 관측탑을 조용히 구경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곳곳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들과 탱크를 구경할때 이전에 한국에서 갔던 제 3 땅굴, 임진각, 그리고 전쟁 기념관들이 자연스래 연상되었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공포탄 대포 발사 시범을 구경하려 다들 모였을때 한국과 다른 점을 발견 한것은 시범에 참여한 군인들이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만내 계엄령이 철회될때 까지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섬들의 경우 여자들도 의무 병역을 수행했던 과거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군들이 공포탄 발사 시범에 포함 된듯 했습니다. 중국을 향해서 큰 소리를 내는 공포탄을 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부러웠습니다. 비록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는 정치 체제는 한반도와 다를게 없지만, 대만과 중국은 완화된 관계 덕에서로 왕래가 많이 자유로워 졌고, 현재는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서 큰소리로 공포탄을 쏠수 있을 정도로 군사적 갈등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만과 중국관의 관계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갈등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합니다. 그래도 임진각이나 공동 경비구역에서 이런 규모의 공포탄을 쏘는 것은 상상할수도 없기에 한국처럼 경계가 삼엄하지 않은 금문섬이 부러웠습니다. 비교적 적은 긴장감이 감도는 금문섬을 방문하면서 현재 분단국가로서 무력 대치중인 한국과 북한을 떠올리며 한반도 통일이 빨리 이루어 지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마샨 방송-관측탑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중국 푸지엔성를 행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때쯤에는 안그래도 조금 불편했던 마음 한구석이 더욱 무거워 졌습니다. 임진각에서 바라보는 북한 만큼이나 멀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깝고도 먼 대만과 중국 사이를 생각할때면 마음이 가벼울수 없습니다.

과거 대만과 중국 사이의 무력 충돌 사이에서 금문섬이 대부분의 타격을 입은 어두운 역사가 있고, 비록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했다고는 하나 영토권과 주권을 정반대로 해석하며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대만과 중국 두 정권의 해답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아직도 국제 사회에서 자주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미국의 비호 아래서 위태롭게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대만의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호전되지 못할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포탄 조각들이 주방용 칼로 변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대만 해협 양쪽에 사는 중국과 대만 사람들이 언젠가는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더불어 사는날이 오길 소망합니다. 또한 단순히 두나라 뿐만 아니라 이사야 2장 4절에 나오듯 전세계가 무기를 쳐서 농기구로 만들고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금문섬은 아직 이 세상이 분쟁, 다툼, 그리고 끝없는 대립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 섬의 많은 지역들은 아직도 군사적 이유로 또는 지뢰의 위험으로 민간인 접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문섬의 대장간에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평화의 날이 나가오고 있음을 살짝 엿볼수 있었습니다. 대만에서 보낸 3주간의 여행은 즐겁기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놀라운 경험을 할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과, 대만 외무부 그리고 대만 관광부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만 짜이찌엔! (다시 만나요!) 연재 끝.



기사 등록일: 20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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