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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수필) 내 나이가 몇이더라_灘川 이종학(소설가, 에드먼튼)
 
2017년 정유년이 밝았다. 정월 초하루에 떡국을 먹었고 새 달력도 벽에 걸었으니 원하든 말든 한 살이 더 보태진 게 분명하다. 그러면 내 나이가 몇이 되는가? 셈이 헷갈린다. 아리송하니 정확한 대답이 머뭇거려진다. 80세 되던 해부터 비롯한 혼란이다. 이민해서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이를 따지는 버릇이 정돈되지 않았다. 한국 나이, 캐나다 나이가 무의식적으로 입 밖에 나온다. 그런 데다가 이제는 살 만큼 살았다는 사실 앞에 굳이 몇 살임을 들어낼 필요가 없어진 듯하다. 내 나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별반 없거니와 내가 많은 나이에 너무 오래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다만 시간일 뿐이라고 여기려 한다.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 전하라고 노래할 자신도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명예욕이나 돈 욕심을 내는 왕주책을 떨 정도로 몰염치한 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이 제 나이를 부정하며 나이를 먹고 있다지만, 나의 정확한 생년(生年)은 시민권에 적힌 숫자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나의 생체 나이는 하늘만이 알고 있는 터이다.
나는 젊어서 실제 나이보다 서너 살 올려 젊은늙은이 행세를 하고 산 적이 있다. 19세에 뜻하지 않게 큰살림을 책임져야 할 호주가 되었고 또한 직장 환경 탓으로 나이 들어 보여야 질서 사회성을 유지하기 편했다. 소위 연륜(年輪)의 과대 포장이 어는 정도 먹혀들어가던 사회 통념을 슬쩍 이용한 셈이다. 그러니 자연히 주변에 연장자가 많았다. 예비군 훈련 소집장이 나오는 바람에 호적 나이가 들통 나서 뒤통수를 긁적거린 무안 지경이 있긴 했지만, 적당히 주변을 처리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 같은 고의적인 연령 위장으로 말미암아 한 편으로는 심한 고독과 아집에 시달려야 했다. 영감들과 상종을 하자니 고리타분해서 속이 다 뒤집힐 지경이었다. 내심과는 달리 언행을 겉치장하느라 스트레스의 공격을 엄청 받아야 했다.

50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제대로 실제 나이를 자백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연소자들의 패기 앞에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이를 서너 살 낮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헛기침은 물 건너갔으니 고독이나 아집 타령 또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전에 그렇게 해왔다는 익숙함 따위에 안주할 처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굴러가는 돌에는 이끼가 끼는 법, 뒤처지지 않으려면 잠시도 멈출 사이 없이 낡은 것을 바꾸는 변화가 이루어져야 했다. 나는 연말이면 지난 한 해를 버텨온 자신에게 펴지를 쓰곤 했다. 부족하고, 아쉽고 후회막급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새해, 내일을 여는 각오에서 변화를 의식하고 안도했다. 열매의 씨를 땅에 묻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기에 가슴 설렘이 온몸에 전해졌다. 그래서 내 나이가 떳떳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 그러면서

인간의 유형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 둘째는 변화를 지켜보는 사람. 셋째는 변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세 번째 그룹을 <잃어버린 영혼들>이라고 했다. 지금 나는 기어이 구분한다면, 세 번째에 속한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체(停滯) 그 자체이다. 변화는 역지사지이거늘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목표 상실의 고목에 불과함을 다시 확인한다. 이제는 내 몸이 아니며 그래서 나이를 잊는다. 인간에게는 모순을 믿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데 틀니 소리를 내는 지금은 믿다가 개천에 빠질 만한 모순도 내 가까이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수명이 길어졌음이고 또한 나쁜 소식은 만년이 더 길어졌다는 사실이라고 100세 시대를 풍자한 말이 생각난다.

문명의 충돌은 귀가 불편한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와 비슷하다. 서로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파악하지 못하는 딱한 상황이다. 이민자들에게 자주 쓰는 비유이다. 그런데 이런 처지보다 더 난감한 사실은 나는 그런 비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이민자들의 태도이다. 민폐를 끼치는 서글픈 만용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이런 착각이 길어진다면 누구에게나 끔찍한 노릇이다. 나이는 바로 시간의 무게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딱딱하고 무거워진다. 서로의 대화에 바윗덩이 같은 단단한 중력이 실리게 마련이다. 이러면 자신도 주변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지난 연말에도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관행처럼 해오던 일이라 펜을 잡긴 했으나 내용이 빈약하고 초라해서 서글펐다. 겨우 서너 줄 쓰기도 힘들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이성이든 감성이든 변한 게 있어야 쓸거리가 생길 게 아닌가. 다만 바람 같은, 허공 같은 모습을 하고 걸었어도 여기까지 왔음을 감사할 따름이다. 이 순간, 이렇게 살아서 지금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비록 신념을 담은 미래를 계획할 기력은 없어도 새해를 맞아 주어진 여생, 영혼 궁핍하게 살거나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을 주절대지 않으리라 각오를 다져 본다. 내 나이가 흐릿해져도 곡조를 모르는 노래는 절대 부르지 않으리라.

기사 등록일: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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