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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하느님 보다 더 소중하다. [최성철의 계심정 4]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면서 정직하고 이성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인간이 밤하늘의 별들을 보는가? 아니면 별들이 우리를 보고 있나? 전문가들은 밝히기를, 현대과학이 공개적으로 계시하는 138억 년의 우주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나? 에 대해 상식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물론 우주 이야기가 주는 답변은 과학적이고 동시에 종교적이다. 또한 우주 이야기의 해답은 서로 다른 세계관으로 살고 있는 수십억 인류에게 건강하고 아름답고 생명이 넘치는 밝은 미래를 위한 공통의 대의가 된다.

오늘 밤 전 세계 사람들은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 볼 것이다. 물론 21세기의 우리는 천체학, 진화생물학, 화학, 물리학, 지질학 등 현대과학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들에 근거하여 육안으로, 천체망원경으로, 인공위성 등으로 밤하늘의 은하수를 본다. 천억 개의 별이 무리를 지은 우리의 은하수는 100억-130억 년의 진화과정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해서 수많은 별들을 탄생시켰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은하수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45억 년 전 하늘 밖의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해서 미리 설계한대로 완성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지구는 오랜 세월동안 우주의 지율성과 창조성의 진화과정에서 출현했으며,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물론 우리 인간도 우주의 자율적인 진화과정에서 20-3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했다. 따라서 우리가 은하수를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을 탄생시킨 모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은하수를 보는 것은 우리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은하수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은하수에 의해 탄생한 바로 그 눈이다. 따라서 이성적인 우리는 우주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고, 자신을 아는 눈이다. 인간이란 지구가 의식의 눈이 뜨여져 자의식하게 된 생물종이다. 인간을 통해서 지구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자신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은 언어를 발명했으며,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세상들을 창조했다. 이러한 진화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위해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인간은 자의식을 지닌 우주이며, 지구 자체이다. 우주와 지구와 인간은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으로 자연스럽게 운행하고 있다. 우주의 법칙을 간섭하고, 인간을 통제하는 초자연적인 힘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본성 즉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잠재력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로 막는 힘은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일뿐이다.

삼층 세계관의 고대인들은 우주적 자연으로부터 느끼고 깨달은 생명의 신비스러움과 경이로움과 황홀함을 하느님, 야훼, 하늘님, 알라, 브라만, 도, 위대한 영, 등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성서와 코란과 경전들을 기록했다. 종교적 경전들에 묘사된 하느님이란 말의 의미를 현대어로 전환하면, 전체적 우주(세계), 개체들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 전체, 우주적 삶의 현실적인 실제(實際), 인간의 온전한 삶의 요청, 자율적인 삶의 요청, 행복한 삶의 비전, 평화로운 삶의 희망을 뜻한다. 기독교 성서는 이것을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하느님의 형상이라고 표현했다. 이성적인 인간의 본성은 하느님의 형상이며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성이며, 또한 인간의 창조성 자율성 가능성 그리고 잠재력이다.

다시 말해, 우주를 인식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하느님이란 인간의 숭배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하느님이란 말의 의미는 인간의 온전한 삶을 위한 궁극적인 진리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자율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깨달아 알게 된 궁극적인 실제(實際)이다. 즉 인간의 온전한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다.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인간 언어의 창작품이다. 또한 삼층 세계관의 믿음체계는 교회를 보호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최후심판과 지옥천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주는 하나의 생명의 망이라는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하늘 위에 인격적인 하느님이란 없을뿐만 아니라, 어떤 하느님이라도 인간 보다 더 소중할 수 없다.

신약성서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안식일에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십 팔 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이 치유받기 위해 예수에게 찾아왔다. 그러나 회당장은 예수가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율법을 범한다고 비난했다. 이때 예수는 “너희 위선자들아, 안식일이라 하여 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 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누가복음서 13:10-17) 예수의 도전은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만든 하느님과 하느님의 율법 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성서에 기록된 예수가 병고치는 이야기들은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각시켜 예수의 신성을 증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은 종교 신앙 전통 교리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은유적인 이야기들이다. 21세기 현대인들은 신구약 성서의 모든 기적 이야기들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참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 중요한 진실은 땅에 묻힌 진주처럼 문자 뒤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에 18년 동안 허리도 펴지 못하고 마치 암흑 속에서 죽지못해 살았던 여인을 보았다. 예수는 가르치던 것을 즉시 중단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치유해주었다. 이 여인의 희망은 오랜 세월동안 종교적 율법과 제도와 형식에 짓눌려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체 생존해온 자신의 절망과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당의 지도자는 예수가 안식일법을 어기고 여인을 치유해주는 것에 대해 격분하여 예수를 비난했다. 안식일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해서는 안된다는 소위 하느님의 율법은 유대교 율법 중에 가장 으뜸가는 법이었다. 안식일법은 하느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강조하기를 안식일은 하느님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예수의 말을 21세기의 말로 전환하면, 인간은 하느님 보다 더 소중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이란 인간이 자신의 보다 의미있고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 창조한 삶의 방식이며 표현이다. 태초에 인간의 느낌과 깨달음과 체험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은 나중에 왔다.

역사적 예수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믿는 것과 사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폐기처분하고,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엄성 즉 하느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본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언했다.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는 사람과 하느님, 세속적인 정치와 거룩한 종교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극히 현실적인 종교이다; 기독교는 세상을 등지고 교회 안에서 성서의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경전 종교도 아니고, 믿음체계가 만든 도덕을 지키는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선한 일을 많이해서 내세를 위해 하늘에 공적을 쌓는 내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고 제도적 교리을 무조건 믿으면 하늘과 땅에서 천 배 만 배의 보상을 받게되는 황금만능주의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기도하면 만병통치를 얻는 무당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깨달음의 종교이며, 사심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하느님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의 종교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 생태계가 상호의존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생태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보호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2:34-40).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 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오직 하느님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믿는 대상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느끼고 보고 듣고 살아가는 실제(實際)이며, 깨달음의 길이다. 평화와 정의와 사랑과 희망과 용기와 기쁨과 용서와 포용을 느끼고 실천하면 하느님을 느끼고 깨닫고 체험하는 것이다. 절망과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한 가닥의 희망과 기쁨과 용기를 느끼면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다. 하느님의 실제(實際)는 세상의 밝고 어두운 곳들, 깨끗하고 더러운 곳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자신은 더러운 죄인이고 벌레만도 못하고 아무 값어치도 없는 쓰레기같은 인간이라는 잘못된 믿음과 교리에 얽매여서 떳떳하게 허리도 펴지 못하고 살아온 여인에게 예수는 ‘너는 온전한 사람이다’ 라고 선포했다. 우리에게도 그 이상의 구원과 축복과 사랑은 없다. 이 여인처럼 나는 더러운 죄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을 입은 성스러운 인간이며, 나는 하느님의 조건없는 사랑과 축복이라고 확신한다면, 누구는 죄인이고 누구는 구원받았고, 누구는 더럽고 누구는 깨끗하고, 누구는 거룩하고 누구는 추하다는 편견과 이기심과 사심에서 자유하게 살 수 있다.

하느님이 인간보다 더 소중하면 통제와 탄압과 착취가 일어나지만, 인간이 하느님보다 더 소중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고, 온 세상이 평등과 사랑과 정의와 평화로 풍요롭게 된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의 하느님 나라 즉 영원한 하늘나라이다.


<더 읽을 책>

Armstrong, Karen, A History of God, Ballantine Books, 1993
Harari, Yuval Noah,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Signal, 2014
Wilson, Edward O, On Human Nature, Harvard Univ Press, 1978
Gleick, James, The Information, Vintage Books, 2011
김경재, 이름 없는 하느님, 삼인, 2003
돈 큐핏,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_______, 떠나보낸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마커스 보그, 새로 만난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
데이빗 그리핀, 포스트모던 하나님, 포스트모던 기독교, 한국기독교연구소, 2002
Rue, Loyal, Religion Is Not About God, Rutgers Univ Press, 2005
Geering, Lloyd, Reimagining God, Polebridge Press, 2014
_______, Christianity without God, Polebridge Press, 2002
_______, Tomorrow’s God: How We Create Our Worlds, 2000
_______, From the Big Bang to God, Polebridge Pres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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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our, Ian G., When Science Meets Religion, HarperSanFrancisco, 2000
Cobb Jr, John B, Postmodernism and Public Policy, SUNY Press, 2002
Cupitt, Don, Only Human, SCM Press, 1985
________, After God: The Future of Religion, BasicBooks, 1997
________, Ethics in the Last Days of Humanity, Polebridge Press, 2016
________, A New Great Story, Polebridge Press, 2010
________, Kingdom Come in Everyday Speech, SCM Press, 2000
________, Creative Faith: Religion as a Way of Worldmaking, Polebridge Press, 2015
Leaves, Nigel, The God Problem: Alternative to Fundamentalism, Polebridge Press, 2006
Newell, J. Philip, Listening for the Heartbeat of God, Paulist Press,1997
Crosby, Donald A, The Thou of Nature, SUNY Press, 2013
Grayling, A.C., The God Argument, Bloomsbury, 2013






기사 등록일: 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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