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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예수님, 뻣뻣한 기독교인 _ 조현정의 시대공감_2
 

며칠 전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갔다. 의사가 관절 마디들이 유연하지 못하고 뻣뻣해서 다치기 쉽다고 충고한다. 유연한 몸은 다양한 동작이나 자세에도 잘 적응하지만 뻣뻣한 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운동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몸을 유연하게 해서 운동으로 근육이나 관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만히 보면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다. 어릴수록 유연하고 나이가 들수록 뻣뻣해진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이와 같다.

예수님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셨다. 당시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셨다. 그래서 당시 소외되고 천대받던 고아와 과부, 이방인과 세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셨다. 안식일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서 비벼 먹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안식일을 가리지 않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다.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방인도 이웃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당대 종교지도자들은 뻣뻣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금식을 하지 않고 밀이삭을 먹는 것을 보고 분개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하는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고 격분했다. 예수님이 천하고 부정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못마땅했다. 그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사람”,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사람”,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 비아냥댔다.

종교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하며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광주리에 담긴 부정한 음식을 하나님이 먹으라 명령할 때 부정한 음식이라 먹지 못하겠다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고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보다 율법을 우선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편견 가운데서 예수님은 외로우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자신은 머리 누일 곳도 없다고 자조하셨다. 예수님은 본인 스스로가 편견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편견 없는 자유로운 행동들로 더욱 미움을 받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신심이 깊고 율법에 해박한 사람들일수록 예수님을 싫어했다. 물론 가말리엘이나 니고데모와 같이 예외적인 인물들이 있긴 하다. 이들과 다른 종교지도자들의 차이는 예수님에 대한 편견의 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길 좋아하셨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자연, 생활, 농업, 풍습 등과 같이 서민친화적인 예화를 많이 드셨다. 반면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트집 잡으러 오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면 예수님의 말을 쉽게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반성 없이 죽은 지식만 답습해온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예수님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자주 말씀하시는 말이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이다. 생물학적인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들을 귀란 부드러운 마음, 옥토 같은 마음으로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가장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어린 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만일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교회의 목사, 장로들은 모두 나와 환영할 수 있을까? 긴 갈색 머리에 쌍꺼풀 깊은 인자한 눈, 얌전한 수염에 두루마기를 걸친 모습으로 오신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성화로 자주 보았던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께서 곱슬곱슬한 짧은 머리에 입술이 두터운 흑인으로 오신다면, 염색한 머리에 여기저기 문신을 해서 오신다면, 여자로 오신다면 어떨까? 그가 조폭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본다면, 무슬림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본다면, 동성애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본다면 어떨까? 더더구나 당신에게 이들도 우리의 이웃이라 말한다면 어떨까?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뻔뻔하고 돌 같이 마음이 굳었다고 질책했다. 그러나 고난과 연단의 시간이 지나가면 새 영과 새 마음을 주겠다,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는 회복의 말씀을 선포했다. 몸이 부드러워 지기 위해서 매일 스트레칭을 하듯 부드러운 마음을 위해서도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고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은 지식은 우리 마음의 편견을 돌처럼 굳게 한다. 오늘 기독교인은 현장성과 체험을 상실한 죽은 지식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실천하는 삶 가운데 체득하는 산 지혜가 필요한 때다. 나를 비롯해서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 받아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기를 기원해 본다.


캘거리한인연합교회 조현정 전도사
Kier3605@gmail.com

기사 등록일: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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