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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대는 어디 있는가_조현정의 시대공감(8)
 

인생에서 즐거운 시간들은 빛의 속도로 흘러가지만, 괴로운 시간들은 분, 초의 마디마디가 얼마나 긴지 모른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비극이다. 인생에서 즐거웠던 시간과 괴로웠던 시간이 물리적으로는 반반이라고 하더라도 괴로울 때의 시간이 훨씬 더디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인생을 비극에서 희극으로 바꾸려고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한다. 진홍빛처럼 괴롭고 힘들었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망각과 착각의 금빛으로 채색된다. 그래서 “그땐 그랬지.” 라는 말에는 아련한 미소가 따라붙는지도 모른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를 보면, 소설가인 길은 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당시는 막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에 환멸을 느끼던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여 술과 파티를 벌리면서 교류하던 시절이다. 이 시기를 '로스트 제너레이션 (Lost Generation)'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주인공 길에게는 '황금시대 (Golden Age)'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길이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로 배경이 바뀐다.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자신 앞에 나타난 클래식 카를 타고 1920년대 파리에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막심 레스토랑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브로드 웨이의 전설적인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한쪽 구석에서는 헤밍웨이가 술을 마시며 글쓰기에 고심하고 있으며, ‘위대한 개츠비’를 쓴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 부인 젤다가 다투고 있다. 길에게는 위대한 역사의 현장 가운데 서게 된 것이다. 소설가 길이 동경하던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시대에 온 것이다. 그곳에서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같은 유명한 화가들도 만난다. 그리고 피카소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아드리아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천박하고 속물적인 자신의 약혼녀에 비해 아드리아나는 기품이 있고 낭만적이다. 길은 아드리아나와 함께 1920년대파리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정작 아드리아나는 자신의 살고 있는 시대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녀가 황금시대로 동경하는 시대는 ’벨 에포크 (Belle Époque)'라 불리던 1890년대다. 바로 이 시기부터 막심 레스토랑에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이며 물랑루즈에는 캉캉춤을 공연하던 시기이다. 길이 시간여행으로 자신이 있는 시대로 온 것을 알게 된 아드리아나는 길과 함께 다시 자신이 그리던 황금시대 189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한다. 이번에는 클래식 카가 아닌 마차를 타고 막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무희들의 캉캉춤 공연이 한창이다. 테이블에는 인상파 화가들인 폴 고갱, 에드가 드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앉아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길은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황금시기 속에서 황홀경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아드리아나를 만난 1920년대에 시간여행을 하며 넋을 잃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드리아나는 길에게 다시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아드리아나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 길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길은 자신이 사랑했던 시대가 1920년대라서 좋아했다기 보다 현실을 벗어나 추억으로 물든 과거이기 때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있는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망상과 착각이 빚어낸 과거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열풍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답게 채색된 과거에 대한향수일 것이다. 신이 주신 망각으로 괴로운 것들은 지워지고 좋은 기억으로만 남은 과거로의 여행은 괴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일탈이자 휴식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거로의 여행은 뜻하지 않게 다양한 매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단순히 시대극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만 회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인상이 담긴 물건, 향기, 소리 같은 것들이 추억의 문을 여는 도구가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이 구워지는 향기를 통해 과거를 경험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 듣고 부르던 노래가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한다고도 한다. 나의 경우는 이른 봄 라일락 향기를 맡게 되면 대학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이와 같이 채색된 과거는 치열한 일상 속에서 작은 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의 추억에만 빠져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 만일 습관처럼 “그때는~”, “그 시절에는~”, “왕년에는~” 하는 말을 쓴다면 과거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과거는 과거의 자리에 두고 오자. 가끔씩 쉼을 얻고는 다시 오늘을 살아가자. 나의 실존이 내 몸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자. 충실한 오늘이 쌓이고 쌓여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이 오면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며 쌓인 추억들이 마음의 연금이 될 것이다.


캘거리한인연합교회 전도사 조현정 kier3605@gmail.com
교회홈페이지: http://www.kucc.org

기사 등록일: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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