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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수필) 거울이 남기는 표정 _ 灘川 이종학<소설가, 이종학>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욕실에 가서 세면거울 앞에 선다. 양치질도 하고 세수를 하기 위함이다. 아무런 검열 없이 내 얼굴을 똑바로 대면하는 것도 바로 이때다. 그러면 비로소 아침 냄새가 난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거울을 별반 의식하지 않은 편이다. 표정 관리나 외모 단속에 아둔한 성격이 원인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내 자신에 소홀한 탓이다. 소년 시절에 여드름을 박멸하느라 손거울과 억세게 씨름했던 기억은 아직도 얼굴에 남은 흔적과 더불어 생생하다. 아무리 여드름이 청춘의 심벌이라고 하지만 얼얼하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으니 거울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거울을 제일 많이 사용한 소년기였다는 기록적 추억을 갖게 되었다.

캐나다 이민 살이 30년을 맞는 나는 거울에서 더 멀어진 일상을 살아온 느낌이다. 특별히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경우가 적었다. 이민 초기에는 교회에 나가거나 상혼례 대사나 행사 모임에 참석할 때는 그런대로 정장을 하느라애를 쓴 편이었으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이곳 사람들의 복장이 평범한 편이라서 얼씨구나, 복장이 편해져 버렸다. 정장 의복들이 옷장의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옷이 날개라느니,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등 여러 격언이 떠돌아도 간편하고 평범한 차림에 만병이 다 달아나는 기분이다. 물론 결례가 되는 옷차림을 가릴 줄은 이미 익힌 터인지라 남 앞에서 체면 구기고 민망을 떠는 주책은 갈무리한다.

나이가 들면서 가족 앨범을 자주 들여다본다. 털고 버려서 간추린 이민 짐이었지만, 부피가 쾌 되는 앨범들은 용케 챙겨 왔다. 역시 빛바랜 흑백 사진이 많은지라 이제는 특별한 보정 관리가 시급해진 상태다. 새삼스럽게 옛날 앨범들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거울 앞에 서는 횟수도 슬며시 늘어났다. 언젠가는 뜬금없이 앨범에서 이민하기 직전에 찍은 독사진 서너 장을 꺼내서 거울에다 붙여 놓고 들여다본 적이 있다. 고국을 등진 내 얼굴의 변화가 궁금했다. 태평양을 건너지 않았어도 나이에 주눅 든 얼굴 앞에서 지난 세월의 사진과 비교하다니 터무니없는 청승이다. 그런데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분명함에도 갑자기 터무니없이 낯선 느낌에 콧잔등이 다 시큰했다.
천재 시인 이상의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이어 쓴 시 ‘거울’의 앞 삼 절을 빌려왔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이 시는 거울 속의 나와 본연의 내가 확연히 다르다는 자기 성찰을 표현하고 있다. 거울은 외모, 그것도 앞부분만 보여준다. 속내는 어림도 없다. 하물며 나 자신도 예측할 수 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변덕을 거울 속에서 어찌 찾겠는가! ‘거울 속 자아 이론’이라는 게 있다. 마치 내가 거울 속 나를 보듯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나 기대하는 모습대로 나의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것을 뜻한다고 사회학사전은 설명한다. 잠재한 능력을 발휘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참 좋은 일이다.

거울은 무려 8000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암석을 갈아서 거울로 사용한 게 시초라는 설이 유력하다. 지금도 우물과 연못의 표면으로 자신을 보는 경험을 한다. 거울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다.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그런 경향이다. 의류와 장신구, 화장품, 줄기세포 주사약 등의 급속한 발전이 거울과 무관하지 않다. 거울 집착 증후군이니, 외모 집착 콤플렉스니, 외모 지상주의니 하는 정신병리학 또는 심리학적인 지칭도 사그라지는 추세다. 잘난 척. 예쁜 체해야 인정받으며 잘 사는 현실이다. ‘나무거울’이라는 괴이한 말이 나올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백설 공주의 새엄마가 외친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이에 대한 대답은 이제 돈과 권력의 유무에 다렸다.

나는 거울 속에서 저 혼자 살금살금 와 버린 나이를 본다. 이렇게 부유식물의 삶을 사느라 애닲음에 푹 젖었음인지 주름살이 깊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으니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순리다. 과거로 후퇴하는 심리적 부담도 적어지고, 이제 나의 내면적(內面的) 자유를 얻었음에 안도한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는 오직 나 자신뿐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내가 대견하다고 거울 속과 밖에서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기사 등록일: 201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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