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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수필) 조화(造花)의 숲 _ 灘川 이종학<소설가, 에드먼튼>
 
내가 12월 중순에 캐나다에 이민하고 그다음 해 3월 어느 가정을 방문했을 때였다. 거실에 놓인 큰 도기 항아리에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한 아름 가득 꽂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가슴이 다 두근거리고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아, 이곳에도 진달래와 개나리가 제때에 꽃을 피우는구나! 나는 결례를 무릅쓰고 꽃으로 다가가서 코부터 들이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 그거 조화예요. 며칠 전 한국에 갔다가 사 온 거랍니다.” 주인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생화가 아님을 알고 실망했다. 아직도 밖에는 눈이 두껍게 쌓인 날씨에 새봄을 알리는 활짝 웃는 꽃들을 생각하다니 꿈도 야무졌다.

캐나다의 북서부 북극권에 속한, 내가 사는 이곳은 4월 중순쯤에야 조금씩 해동해서 튤립, 민들레를 비롯한 라일락, 앵두꽃, 살구꽃 같은 여러 종류의 꽃봉오리가 생기기 시작하다가, 4월 말경에 어렵사리 꽃이 피지만, 온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장담하기 어렵다.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영하권으로 급강하하는 변덕 날씨가 꽃샘추위라고 하기엔 너무 처절하다. 삽시간에 꽃들이 눈꽃으로 변하고 기후가 따뜻해져도 시들하니 윤기를 잃고 볼품이 신통치 않다. 하긴 제대로 피었어도 꽃향기는 아주 미미해 안타깝다. 아무래도 5월 중순이나 되어야 꽃을 찾는 벌과 나비를 볼 수 있다. 이런 광경도 8월 중순이 되면 사라진다. 로키산맥을 넘어오는 바람이 한기를 품어 내기 때문이다.

지역적 조건으로 조화를 많이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쇼핑몰과 공공기관 건물이나 심지어 병원, 양로원에도 조화와 인조나무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식당 같은 곳의 내부를 장식한 조화 인테리어는 대단하다. 꽃과 초목이 계절을 비웃는다. 식당 외부 근처에도 여러 개의 커다란 조화나무를 세우고 만발한 꽃마다 꼬마전구를 달아서 밤이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장식은 없는 것보다는 보기 좋다. 화초나 화목을 오래 감상하지 못하는 기후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가상하다. 그러나 자연미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공예품의 냄새까지 지울 수 없다. 가면 같은 느낌, 풍요한 서러움을 풍긴다고나 할까? 겨울에 눈이 펄펄 날리는 날 불빛에 드러난 조화의 모습은 상가의 촛불 같은 슬픔을 연상케 한다. 거기다가 이 가짜들의 몰골이 먼지가 묻고 때에 절어 보이면 혐오가 미간에 주름을 잔뜩 그리고 만다. 이곳 가정에서는 조화보다는 집안에서 화초를 많이 가꾸는 편이다. 긴, 긴 겨울을 견디는 슬기로운 생활의 지혜이다. 비록 한랭지대에 살지라도 화초의 아름다운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가상한 심성이다. 누구보다도 앞서서 반려식물 시대를 즐기고 있음이다.

조화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종이, 천, 비닐 등을 재료로 인공적으로 만든 꽃이다. 수공화, 가화(假花), 채화(綵花), 권화(勸花) 그 밖에 여러 이름으로도 불린다. 조화는 인류와 더불어 오랜 역사를 가졌음이 고증되었다. 우리나라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 시대부터 널리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화는 사용 용도에 따라 다양한 자료로 만들어 분류했고 신분과 장소, 용도에 의해서 쓰이는 방법도 달랐다. 이걸 보면 인간은 꽃을 신성시할 정도로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조화의 제작 기술도 끝없이 진보하고 재질 또한 무한히 개발해 나갔다. 이제는 생화로 착각할 만큼 발전했다. 따라서 조화는 생화를 대신하는 역할을 넘어 다름의 독특한 영역을 확보해 나간다.
조화는 절화(切花•꽂이꽃)와도 대비가 된다. 꽃꽂이용으로 잘라낸 꽃은 생화긴 하지만 극히 시한부인 아쉬움을 가진다. 생명을 연장하는 물이 꼭 있어야 하며 특수 운반비를 포함한 원가가 조화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문화생활 향상과 운반시스템의 발전으로 절화가 세계시장을 넘나든다. 무엇보다도 생명과 함께 정이 담뿍 담긴 표증이 되는 강점을 자랑한다. 조화로 만든 꽃다발과 생화 꽃다발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비교해 보자. 요즘은 생화와 조화를 뒤섞인 꽃다발이나 화환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경제적 고려가 작용했겠지만, 가짜가 진짜를 홀대하는 요즘 세태를 생각하며 고소를 머금게 한다. 인간 로봇이 조화 다발을 받고 희희낙락하는 동화 같은 상상을 하며 또 한 번 고소를 머금는다.
지금은 꽃이 지는 계절이다. 사실 조화는 계절과는 무관한 존재다. 씨를 품은 열매가 자라기 위해 꽃잎은 거침없이 떨어진다. 낙화(落花)의 자연 이치를 조화에서 느낄 수 없다. 그래서 화려하게 치장한 조화 앞에 서면 외로워질 때가 가끔 있다. 최금녀 시인의 ‘슬픈 조화(造花)’를 옮겨 감상해 본다. 어느 세상 짊어진 업보일지/배시시 비린 웃음//구겨진/탈이 웃는다/해골이 웃는다//스스로 끊지도 못하는 목숨으로/가면 속에서/핏기 거둔 입술을 깨문다.

기사 등록일: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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