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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수필) 파머즈 마켓 _ 灘 川 이종학<소설가, 에드먼튼>
 
주말인데도 아침 일찍 차에 올랐다. 근처에 있는 파머즈 마켓(Farmer’s market)에 가는 날이다. 우물거리다가 해가 제대로 뜨면 화씨 100도나 되는 폭염의 위세에 시달려야 한다. 우리 부부는 미국 LA에 사는 딸들에게 가 있는 동안에는 주말에 한 번 열리는 파머즈 마켓을 자주 찾는다. 공원 같은 공터에 자리 잡은 이 시장은 규모가 작다. 휘장이나 텐트를 치고 임시 목판 매대 위에 물건을 모양새 없이 소탈하게 진열해 놓는다. 언제 가 봐도 친숙하고 그리운 풍경이다. 이런 장마당이 아침 한때 여간 분비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대도시에 이런 아주 서민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장턴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다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현대적인 대형 마트가 얼마나 많은가.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물건들이 구색을 맞춰 풍성하게 진열되어 손님을 맞는다.
나는 시골 오일 장터 같은 촌스러운 정서가 깃든 파머즈 마켓의 풍경에 마음이 끌린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시골 장터는 포근하고 친밀감이 물씬 풍긴다. 대부분 아는 얼굴이고 친숙한 물건들이라 그런지 다 내 것만 같아 만만하다. 농촌 어딜 가나 지천으로 보이는 농산물들이다. 그러니 새로운 느낌이나 호기심 따위가 생길 턱이 없다. 그런데도 그런 것들을 시장바닥에 전(廛)을 펴고 늘어놓으면 잔잔하게 울리는 새삼스러운 정으로 다가온다. 거기다가 어딘가에서 해금의 애잔한 가락이 들리고,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와 싸구려를 과시하는 장돌뱅이의 외침, 입담 좋은 만병통치약 장사의 너스레까지 어우러지면 흥겨움이 분주해진다. 시골 장터는 어수선하고 수런거리는 가히 난장판이다. 하지만 은근히 파고드는 친화력으로 인해서 질서(秩序) 같은 기운이 은연중에 감돈다. 곱게 차려 입은 가족나들이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까닭이다. 가객 장사익이 한 말이 있다.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은 서더라.”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 거기에 있었다.

이곳 많은 백인이 파머즈 마켓을 곧잘 찾는다.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띈다. 역시 가족나들이도 보인다. 오가는 풋풋한 담소와 해맑은 웃음이 묻은 예스러운 풍속도가 그리운 모습들이다. 특히 도시인들에게 흙내음은 아련한 향수 그 자체이다. 어떤 시인처럼 아스팔트 위에 피는 가녀린 야생화를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시장 물건 보따리 서너 개씩 양손으로 들고 산책하듯 다닌다. 이 장터에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있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노 악사는 마침 에델바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얼굴에 신명이 가득하다.

대부분이 작은 농장이나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법의 농산물인 싱싱하다. 과일, 채소는 기본이고 꽃, 육류, 치즈, 빵 등을 노천시장 목판에 놓고 판다. 집에서 뜨게질한 소품들도 있다. 커피는 기본이고 간단한 음료와 먹거리들도 판다. 겨울에는 오렌지와 감, 대추 등이 주종을 이룬다. 순수한 홈메이드라는 특징을 자랑한다. 소박하고 볼품이 없어 상품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대규모 마트에서는 절대로 취급하지 않는 상품들이다. 하지만 위생 당국의 단속과 검열은 철저하다고 한다. 인체에 해가 되는 물건의 거래는 절대 금한다. 도매상이나 큰 마트에서 팔고 남은 물건들이 있는지 철저하게 살핀다. 소박하고 허술하게 진열한 물건들이지만, 신선하고 청결하다.

기록에 의하면 LA 시민에게 사랑받는 유럽풍의 파머즈 마켓은 1929년의 대공황 무렵부터 생겼다고 한다. 많은 농민이 도시 변두리의 들판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직접 팔기 시작하면서 LA 시민에게 인기 있는 거래와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200 정도의 크고 작은 파머즈 마켓이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끌어들이며 성황을 이룬다. 대규모의 파머즈 마켓도 있다. 유명한 카페와 식당들, 선물용품점들이 들어서서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터뿐만 아니라 라이브 뮤직 공연, 분수 쇼, 극장 등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현대판 재래시장으로 변모해서 명소로 꼽히는 파머즈 마켓에도 가본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아무렇게나 잘라 묶은 호박잎이나, 잎하고 새끼 고추가 달린 고춧대, 뿌리째 뽑아온 생마늘을 사느라 동양계 가게를 기웃거린다. 고구마 줄기, 무청, 늙은 오이, 민들레도 보인다. 순 깡촌 농산물의 향수를 못 버린다. 개복숭아나 산딸기도 꿀맛이다. 못생긴 토마토 맛도 희한하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다. 토속적인 음식의 추억이 몸을 휘감는다. 파머즈 마켓에 다녀온 날은 식탁이 완전히 촌티 일색으로 차려진다. 호박잎 국에다가 고춧잎 무침, 고구마 줄기 무침, 민들레•부추 절임, 가지냉국. 애호박 새우젓볶음 등이 밥상을 꽉 차지한다. 찐 호박잎 옆에는 풋마늘 양념간장이 가지런히 놓인다. 아! 먹음직스럽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이게 진수성찬이고 다이어트 밥상이다. 소위 집밥의 원조이다.

장자(莊子)는 ‘약상(弱喪)’이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참모습을 잊고 헤매는 삶을 사는 이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널리 회자된다. 나처럼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고국을 잃어버려서 돌아갈 길도 모르게 된 처지와 비슷하다. 다른 나라의 화개장터를 기웃거리다 고향 집밥 상을 차려놓고 망향의 정을 달래는 내 심정에 비유하고 싶어 꺼내본 말이다. 우리 어머니가 끓인 된장찌개 맛이 최고라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8월 미국 LA에서>


기사 등록일: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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