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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장벽을 넘은 노먼 퀑, 그를 기리며’
앨버타, 캐나다 전역에서 추모 열기 뜨거워
(사진: 캘거리 헤럴드, 경기에 앞서 노먼 퀑을 추도하는 스탬피더스 선수들) 




지난 주 토요일 86세의 일기로 영면에 든 노먼 퀑에 대한 추모 행렬이 앨버타뿐만 아니라 캐나다 전역에서 쇄도하고 있다.
노먼 퀑은 1930년대 캘거리 센터 스트리트 힐에서 성장했다. 그는 생전 캘거리 헤럴드와 인터뷰에서 어릴 때 놀던 크레슨트 하이츠의 수영장에 유색 인종이라 이유로 입장하지 못해하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차별의 벽을 넘어 캐나다 풋볼리그 (CFL)에 중국계 케니디언 선수로 활동했으며 4번의 챔피언 컵을 들어 올렸다. 그는 캘거리 스탬피더스와 에드먼튼 에스키모 양팀에서 모두 선수로 뛴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또한 상업용 부동산 비즈니스에 뛰어 들어 큰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이후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캘거리 플레임즈 그룹의 공동 소유주를 역임했다. 스탬피더스 대표이사로 역임할 때 스탬피더스의 채무 불이행을 해결하는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노먼 퀑을 앨버타 16대 루테넌트 가버너 취임을 선포한 전 폴 마틴 주수상은 “노먼 퀑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라며 그를 기렸다.
1947년 이전까지 중국계 케네디언은 캐나다에서 투표 조차 할 수 없던 시대를 거쳐 노먼 퀑은 앨버타 최초로 아시아 인으로서 루테넌트 가버너에 올랐다.
노먼 퀑은 1929년 캘거리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중국 광저우에서 이민 온 후 보우 강 북쪽의 리버사이드에서 그로서리 스토어를 운영했다. 어릴 때부터 인종차별을 겪어 온 퀑은 굴하지 않고 웨스턴 캐나다 고등학교와 노스 힐 블리자드 풋볼 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퀑이 대학에 들어 가기를 원했지만 퀑은 18세의 나이인 1948년 캘거리 홈팀 스탬피더스에 백업 풀백 선수로 입단했다. 선수 생활 당시 그는 77Kg의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컵 대회에서 오타와 러프 라이더를 12대 7로 누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이후 세 시즌을 스탬피더스에서 뛴 후 발목 부상 때문에 팀과 연봉 갈등을 빚었으며 결국 에드먼튼 에스키모스로 팀을 옮겼다.
1960년 밴쿠버 미스 차이나 타운 출신의 메리 여사와 결혼했으며 은퇴 이후 주식 브로커와 상업용 부동산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이루었다.
2010년 5월까지 앨버타 루테넌트 가버너를 역임한 노먼 퀑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내가 역할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살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을 개척하며 살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서덕수 기자)


기사 등록일: 201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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