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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과 시리아, 이라크 내전 _ 기자수첩
 
징조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가령 신경통 환자 무릎이 쑤시면 눈이 내릴 징조다. 2차대전, 인류가 마지막 겪은 대참사 2차대전도 일어나기 전에 징조가 있었다. 경제공황도 징조 중에 하나였지만 스페인 내전은 “리틀 2차대전”으로 세계는 스페인에 모여 2차대전 예행연습을 했다.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17에 시작되어 1939년 4월1일에 끝났는데 그 때 조선 민중들은 일본의 독수에 걸려들어 식민지 통치에 신음하고 있을 때라 남의 나라 내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역사적 사건들이 한 두 가지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서 배경 설명이 어렵지만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이 왕정을 끝내고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극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공화파는 사회주의 이념의 공화국을 건설하려 했는데 스페인령 모로코 방면 사령관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켰다.
프랑코 총통(1892.12.4-1975.11.19)은 1939년부터 죽기 전까지 독재를 휘두르며 스페인을 공포에 휘몰아 넣은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로 한국의 박정희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 하늘은 누구에게도 승리를 안겨주지 않은 채 반란은 3년을 끌며 민중에게 고통을 안겨주다 프랑코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바로 “하늘도 무심하지”.

스페인과 가톨릭

공화파 정부에 대항해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자 천주교와 민족주의 우파가 군부 편을 들었다. 군부가 반란을 일으킨 명분이 “무신론자 공산주의를 타도하고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반공이라는 요술방망이는 한국 사회에서 만병통치약이다. 내가 사는 사회를 배반하고 일제에 충성한 반역범죄도 반공만 내세우면 면죄되고 정부 시책에 반대하면 ‘종북 빨갱이’로 몰아 버리면 간단한데 스페인에서도 ‘빨갱이 타도’는 만병 통치약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둔 프랑스와 스페인은 가톨릭이 국교인데 종교가 국가의 보호를 받거나 국가권력과 가까우면 부패하게 되어 있다. 부패한 종교 가톨릭은 군부를 적극 지지했고 프랑코는 가톨릭 수호자를 자처했다. 가톨릭이 국교인 스페인 민중들의 가톨릭 신앙심은 대단해 가톨릭 신앙심=애국심으로 프랑코는 민심을 얻기 위해서라도 가톨릭이 필요했다.
우파와 가톨릭의 지원을 얻은 군부는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소리니 에게도 응원을 청했다. 유럽의 형님 독재자 히틀러와 무소리니는 프랑코가 “행님요,” 하기가 무섭게 다음 말은 기다리지도 않고 “하모!” 하면서 적극 지원했다.
히틀러는 내전 기간 동안 19,000명의 병력을 비롯해 탱크, 군수물자를 지원했고 전투기 군함을 보냈다. 무소리니는 “내가 히틀러보다 많이 도와야지” 하면서 경쟁심을 발휘, 50,000명의 병력을 보내 프랑코를 지원했다.
반면 선거에서 이겨 당당히 집권한 정통성 있는 공화파 정부는 유럽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글쎄요, 남의 나라 일에 중립을 지켜야지요.”하면서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1차대전 때 편싸움이 크게 벌어져 피해를 입은 상처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이러다 또 큰 싸움 나겠다”고 자제했기 때문이다.
자제를 한다고 하면서도 영국, 프랑스는 군수물자를 지원했고 소련 맥시코도 공화파를 지원했다. 미국은 기민하게 양다리를 걸쳐 공화파에는 항공기를 지원하고 프랑코에게는 유류를 팔았다.

국제여단,
전세계 자유주의자들 모임

또한 유럽, 미국의 자유주의자, 양심적 지식인,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개인적으로 공화파 정부를 돕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했다. 이들은 ‘국제여단’이라고 부른다. 국제여단에는 정말 다양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으나 이들의 공통분모는 “스페인의 민주공화국을 위하여”였다.
미국 의용군들은 에이브러햄 링컨 여단이라고 했다. 캐나다 의용군은 메켄지-파피뉴 여단이라고 불렀다. 아일랜드에서는 청년 250명이 공화파를 위해 참전했으나 ‘푸른 셔츠단’ 700명이 프랑코파를 위해 참전해 외국 땅에서 동족끼리 총 뿌리를 겨누는 슬픈 일이 벌어졌다.
국제여단에는 쟁쟁한 인물들이 스페인 공화파를 위해 참전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을 토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어린 왕자’의 저자 생덱쥐베리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에밀 졸라도 행동하는 지식인의 양심을 걸고 참전했다. 프랑스의 지성 시몬느 베이유는 취사병으로 참전했다. 윈스톤 처칠의 조카 에스몬드 로밀디도 참전했다. 조지 오웰, 피카소, 로버트 카파도 참전했다. 26개국에서 스페인 공화국을 위해 모였다.
스페인으로 직접 간 사람들도 있으나 대부분 프랑스로 가서 안내원을 따라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인터내셔날 가’를 부르며. ‘국제여단’은 공화파의 유일한 무장병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히틀러, 무소리니가 파병한 정규군을 이길 수는 없어 반란군 승리로 내전이 종식 되었고 그로부터 5개월 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시작되었다.

이라크 시리아 내전

이라크 시리아 내전은 스페인 내전보다 복잡다단한데 요점을 추리자면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 민주화 운동이 시리아에도 불었다. 시리아를 철권통치하던 알 아사드 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미국, 서방세계는 민주화 세력을 지원했다.
민주화 세력이 힘을 얻자 사태는 내전양상으로 번졌는데 그러자 테러그룹 알 누스라전선이 세력확대 한다고 끼어들었다. IS도 시리아 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며 세력 확대를 해 준 국가조직을 갖추고 건국 선언도 했다. 알 카에다도 끼어 들었다. 중동 테러단체들은 종교이념, 영역 확대 때문에 자기들끼리도 죽고 죽이곤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진퇴양난이다. 민주화 세력을 도와주니 테러단체들이 때를 만난 듯 기승을 부리고 남의 이목이 있어 손을 뗄 수도 없고. 미국이 IS공습을 비롯해 테러단체를 공격하니 한숨 돌린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은 다시 민주화 단체를 탄압하고. 그 와중에 쿠르드족까지 독립할 기회라고 끼어들었다.
2200만명에서 3800만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나라도 없이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인구 700만명인 유대인도 나라를 갖고 있는데.
IS는 시리아, 이라크에서 영역을 확장하는 중에 쿠르드 자치구역까지 침략했다. 쿠르드 민병대는 결사적으로 IS 침략에 맞섰다. 외국에 살고 있는 쿠르드인들은 IS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자치구역으로 돌아갔다. 쿠르드 민병대(YPG)는 미국, 터키가 테러단체로 분류하고 있어 적이 누군지 아군이 누군지 모를 지경이다.

가자, 중동으로

IS가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점령해가며 쿠르드족 최대도시 코바니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며 포로로 잡힌 쿠르드 민병대 여전사들을 참수했다. 쿠르드 민병대의 1/3은 여자대원으로 알려졌다. 쿠르드족의 위급한 상황과 IS의 잔혹한 만행이 알려지자 서구의 젊은이들이 코바니로 향하고 있다.
밴쿠버에 살고 있는 질 로젠버그(31세)는 수니파 광신도 IS와 싸우기 위해 쿠르드 민병대에 합류했다. 유대인인 그녀는 이스라엘 국적도 갖고 있다. “이스라엘 군에서는 아히라이(나를 따르라)라는 구호를 외친다. 나는 그자들(IS)에게 이게 무슨 뜻인지 가르쳐 주겠다.”
이스라엘은 자국민의 적국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 당국도 로젠버그 이후 시리아 내전에 참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날까 우려하고 있다. 국제 분쟁에 참여 하는 것이 캐나다에서는 불법이 아니다. 다만 테러단체 가입은 불법이다.
캘거리 살고 있는 딜론 힐리어(Dillon Hillier, 26세)는 패트리셔 경보병 여단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예비역군인으로 5년간 복무를 마치고 제대해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쿠르드 민병대에 합류했다. 그는 6개월동안 아프간에 참전한 실전경험이 있다. “나치와 싸우기 위해 캐나다가 파병한 것 같이 나도 IS와 싸우기 위해 가는 것이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쿠르드인을 위해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5,000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여행경비와 전투장비 구입은 자비로 구입 한다. AK-47소총이 700달러-2,000달러, M-16이나 M-4는 3,000달러-4,000달러 정도에 살 수 있다.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IS와 싸우기 위해 쿠르드 민병대에 합류하고 있고 캐나다 공군 출신인 이안 브래드리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자원봉사자들의 금전지원을 돕고 있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안락한 캐나다의 삶을 뒤로 하고 자진해 전선으로 나가는 젊은이들의 말이다.

기사 등록일: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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