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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타 PC당과 선거_ 기자수첩
 



조기 총선, 5월5일
5월5일은 앨버타 총선거일이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총선은 내년인데 작년 후반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유가로 인하여 올해 주 정부 예산편성이 크게 곤란을 겪었다. 원유 로얄티가 재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 정부로서는 50억불 적자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간접세를 비롯해 각종 공과금, 사용료, 범칙금까지 인상했다.
짐 프렌티스 주 수상은 예산안 편성을 현 정부에 대한 신임과 연계해 예산안 편성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면서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앨버타 주민들은 5월5일 한 표를 행사해 4년을 이끌 앨버타 일꾼을 선출한다.
현 집권당 앨버타 PC(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of Alberta)는 44년 집권 중인 최장수 집권당으로 의석 87석 중 70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여당이나 여론조사 결과는 PC, WR(Wild Rose), NDP의 3파전으로 전개되어 초반부터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선거는 PC 일방적 승리로 끝날 것 같지 않아 관심을 끌고 있고 더구나 한인 1.5세인 심재헌 변호사가 WR 소속으로 캘거리 Hawkwood 지역구에서 출마해 한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필자는 심재헌 변호사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에드몬톤 법률회사 다닐 때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고, 그 기사가 본지에 실린 바 있다 . 그는 16세에 부모를 따라 이민 와서 남 보다 몇 배 노력하고 공부해 10년만에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심 변호사의 선전을 기대한다.

앨버타의 보수성
앨버타는 캐나다 보수의 본거지다. 앨버타에서 선출되는 연방 하원의석이 28석인데 27석이 보수당 의석이다. 앨버타가 짙은 보수성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어느 자유당 의원은 “오일샌드가 존재하는 한 앨버타는 보수성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지정학적 이유도 앨버타의 보수성을 설명해 주고 있다.
앨버타는 캐나다 다른 주보다 개척이 늦었다. 캐나다의 중심지 동부에서 멀리 떨어진 앨버타는 시골풍의 오지로 띄엄 띄엄 떨어져 사는 농부들이 목축을 하던가 농사를 지으며 “내 것은 내가 지키며 내가 벌어 내가 먹는” 생활을 영위했다. 자연스럽게 독립심은 강해졌으나 반면 남의 간섭 받는 것도 싫어하고 남들이 내 영역에 들어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개척이 늦었고 시골사람다운 보수성을 갖고 있어 연방 가입도 늦어 1905년에야 캐나다 연방에 가입해 캐나다의 일부가 되었다. 연방 가입이 앨버타에게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거추장스럽고 어색했다. 연방에 가입했어도 당장 좋을 것도 없었다. 서울 구경한다고 오타와 가봐야 ‘서울 깍쟁이”들은 촌놈 취급하며 상대도 잘 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금을 뜯어다 생면부지의 퀘벡, 온타리오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농사 짓거나 가축 키우며 살다 원유가 터졌다. 이것은 마치 영화 ‘자이언트’를 연상하게 한다. 빅 베네틱트(록 허드슨)의 땅을 조금 얻어 농사 짓다 원유가 터져 검은 액체를 뒤집어 쓴 채 환호하는 제트 링크(제임스 딘), 오래 된 고전이지만 ‘자이언트’는 앨버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원유를 매체로 농업사회에서 공업화 산업화 되는 텍사스는 앨버타와 비슷하다. 이런 보수성이 PC, WR이 탄생하는 토양이 되었다.

앨버타 PC와 연방 자유당의 악연
현대 캐나다의 골격은 연방 자유당이 만들었고 앨버타의 초석을 다진 정당은 앨버타 자유당이었다. 앨버타 초석이 된 정치제도, 사회제도, 교육제도, 인프라 건설은 앨버타 자유당이 이룩했다. 초대 주 수상 알렉산더 러더포드부터 3대 주 수상 챨스 스튜어트까지 자유당 출신이다.
자유당 후에는 UFA(농민연합당 United Farmers of Alberta)와 SCPA(Social Credit Party of Alberta 사회신용당)이 집권했다. 사회신용당 대표는 주 수상을 25년 역임한 Ernest Manning이다. 주 수상 재임 25년은 신기록으로 기록 경신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매닝 주 수상 말기인 1967년 PC는 6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되었다. 당시 당 대표는 피터 로히드였다.
제1야당으로 발돋음한 PC는 1971년 선거에서 마침내 집권당이 되어 당 대표 피터 로히드가 주 수상이 되어 44년 장기집권의 첫 걸음이 시작되었다.
앨버타 오일샌드에서 원유가 생산되기는 1967년이다. 원유가 나오자 연방정부에서 ‘갈라먹자’고 나섰다. 평소에 살갑게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오타와 가면 촌놈 왔다고 자기들끼리 수근거리며 킥킥거리더니 원유가 나와 살림이 나아지니 숟갈 들고 덤벼든다 말인가? 앨버타 대답은 “안돼”였다. 연방 결성 할 때 “내 땅에서 나오는 것은 내 것이고 네 땅에서 나오는 것은 네 것”이라고 못을 박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형제들 사이에도 그저 그렇게 살 때는 다툼 없이 잘 지내는데 조상 때 내려오던 땅 문서가 발견되었다던가 유산 상속 받을게 있거나 하면 형제들 사이에 으르렁거리면서 불화와 다툼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듯 앨버타에서 원유가 생산되면서 연방정부와 불화가 시작되었다.
더구나 당시 피에르 트뤼도 연방 총리의 정책이나 개성은 앨버타 정서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실크 햇에 망토, 영어를 프랑스식으로 말하는 가슴에 장미꽃 달고 다니는 세련된 도회풍의 남자는 앨버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만 늘어놓았다.
“소수민족의 문화도 존중해주자” “동성애는 죄도 아니고 병도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니 손가락질 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우하자” “프랑스어도 영어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공용어다” “이민자 정착을 돕는 것이 캐나다 장래를 위하는 길이다.” 앨버타 정서에 맞지 않는 연방총리의 언행은 앨버타가 연방에 반감을 갖게 만들었다. 연방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앨버타에게 영어권 문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문제는 원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국가 에너지 프로그램을 둘러싼 연방정부와 대결이었다. 당시 앨버타 주 수상이 피터 로히드로서 연방정부와 논쟁 끝에 앨버타가 유리하게 연방정부와 에너지 수입을 분배하는 협정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연방 자유당과 악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연방 자유당 사촌인 앨버타 자유당은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앨버타 PC
앨버타 현 집권당인 PC를 직역하면 진보 보수당이지만 보통 보수당이라고 부른다. 혹은 토리(Tory)라고 하는데 영국식 전통이다. 토리(Tory), 휘그(Whig)는 영국의 정당으로 토리는 지주계급의 이익을 대변해 곡물법을 지지하는 보수정당이었고, 휘그는 자유무역주의를 옹호하고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는 부르조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었다. 그후 토리당은 보수당으로 휘그당은 자유당의 전신이 되어 지금도 캐나다에서는 보수당을 영국식으로 토리당이라고 부르지만 자유당이나 NDP를 휘그당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PC는 앨버타 역사 초기에는 별다른 정치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PC의 할아버지 격인 Northwest Territories Liberal-Conservative Party는 1898년부터 앨버타가 연방에 가입하던 해까지 존재했다. 그 후 Alberta Conservative로 개명하여 1905년 선거에서 2석의 의원을 배출했다. 그 후 앨버타 자유당 정권, 사회신용당 정권에서 조연 역할을 하다 1959년 연방 보수당을 따라 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of Alberta로 당명을 바꾸었다.
앨버타 PC는 보수 정당답게 낮은 세금, 작은 정부, 환경 보호나 규제보다 개발 우선, 친 기업정책, 정부 간섭 최소화 등의 정책을 쓰고 있다. 이런 정책은 공기업의 민영화로 이어졌다. 1908년 주정부에서 설립한 전기통신회사 AGT는 민영화 되어 1991년 Telus로 넘어갔다 1996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주류 소매점도 주정부에서 운영하다1993년 민영화 되었다. Registry도 민영화 되었다. 1990년대 초에 불어 닥친 민영화 바람과 Health Care 대폭 삭감, 교육예산 대폭 삭감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랄프 클라인 주 수상 재임 당시 이루어져 2004년 흑자재정을 달성했다.
그러나 주 정부 예산의 상당부분이 원유 로열티에서 나오는 PC당 정부는 방만한 예산편성을 일 삼더니 2009년 예산은 48억 적자예산이었다. 불경기 여파로 유가가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자예산 5년만에 48억 적자로 돌아선 것에 대해 프레이저 연구소는 간단한 대답을 내 놓았다. “앨버타는 원유가격이 항상 피크에 있는 줄 알고 있다.”
올해 예산은 50억불 적자예산으로 주 수상은 선거와 연계하여 예산안에 대한 주민들 신임을 묻고 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기사 등록일: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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