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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보훈의 달 _ 기자수첩
 


6월은 모국에서 호국보훈의 달로 지킨다. 현충일도 6월6일이다. 캐나다를 비롯한 영연방국가들의 현충일은 11월11일 Remembrance day이고 미국에서는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메모리얼 데이로 지킨다. 현충일이 6월6일로 정해진 것은 절기와도 관계가 있는데 우리 조상들은 24절기 중에서 청명과 한식을 손(損)없는 날이라 해서 벌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냈다.
고려 현종 때도 망종에 거란과 전쟁 중에 죽은 병사들의 뼈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현충일이 처음 제정되던 1956년에도 망종이 6월6일이라 현충일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전신인 임시정부는 11월17일을 순국선열일로 정했다. 을사늑약 맺어진 날이 11월17일로 그 때를 전후해 많은 애국선열들이 자결을 하거나 국권회복에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순국선열일을 1945년부터 1949년까지 김구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이 같이 참석했다. 그 후에도 순국선열일은 정부에서 주관해 기념행사를 열었으나 박정희 정권에서 없어졌다. 일본군 장교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독립 운동하다 순국한 애국선열들을 기념하는 행사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현충원인가
서울을 갈 때마다 국립묘지를 가본다. 그 전에는 동작동 국립묘지라고 불렀는데, 정확하게는 서울 국립묘지였는데 2005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름만 바뀌고 정작 바꿔야 할 내용은 끄떡도 않고 버티고 있어 세인들이 혀를 차고 있다.
현충원에는 묘를 차지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처럼 자격도 안되면서 현충원에 묻히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특히 친일 반역자들은 현충원에 묻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10일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했다. 임시정부는 1919년 헌법에서 대한제국의 영토를 계승한다고 했고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므로 조선 말기부터 공동체를 배신하고 일신의 영달이나 가문을 위해 혹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일제에 협력한 자들은 경중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특히 임시정부가 일제한 선전포고한 1941년 12월10일 이후 친일행각을 한 자들은 적국을 이롭게 한 전시부역을 한 이적행위자들인데 이적행위자들이 국립묘지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전 현충원에 묻혀 있는 김창룡이 예가 될 것이다.
김창룡은 관동군 헌병 정보원으로 일하며 항일조직을 무너뜨리고 독립군들을 잡아 고문한 자로서 해방 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감옥을 탈출해 오히려 육사 3기를 입교했다. 김창룡은 그 후 특무대장으로 있으면서 각종 사건을 조작해 독재정권에 부역했다. 백범 살해범 안두희는 1992년 백범 살해 배후 인물로 김창룡을 지목했다. 이런 반역자가 현충원에 묻혀 있는 것은 민족정기를 흐리는 일이다.
호국영령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반민족행위자 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하는데 정부도 국회도 손도 안대고 있어 법안은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채 잠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현충원에 묻혀야 할 애국지사들은 “국립묘지 싫고 먼저 간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원 묘역에 묻어달라”고 유언할 정도다.
미라보 백작의 굴욕
프랑스 파리에 판테옹이 있다. 판테옹에는 지하묘지가 있는데 한국의 국립묘지나 현충원하고는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프랑스를 위해 현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지하묘지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다. 정치인들 보다는 문인, 예술가, 학자들이 많이 쉬고 있는데 레 미제라블로 우리에게 친숙한 빅터 유고도 그곳에서 쉬고 있고 루소도 그곳에서 쉬고 있다.
판테옹에 1호로 묻힌 영광을 얻은 사람은 미라보 백작이다. 프랑스 혁명 때 귀족의 특권을 포기하고 혁명을 지지해 평민쪽에 섰던 미라보 백작은 혁명파와 왕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 혁명의 과격화를 막고 입헌군주제가 정립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앙샹 레짐과 혁명 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루이 16세가 굴러온 밥상을 차버려 입헌군주제는 무너졌지만.
그러나 그 후 미라보 백작이 루이16세와 밀거래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혁명정부를 기만한 사실이 드러났다. 프랑스는 미라보 백작의 시신을 이장했다. 판테옹에 묻히기 위해서는 생전의 언행을 현미경으로 샅샅이 드려다 보는 공적 심사위원회가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을 위해 감사를 표하는” 영광스러운 팡테옹에 묻히기에는 미라보 백작의 생전 행동이 매우 부적절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라보는 다리 이름 하나를 얻었으니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미라보 백작은 여전히 팡테옹 매장 1호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공과를 가려야 한다느니 “황희 정승도 과가 있었다”느니 이상망측한 괴변과 물 타기로 본질을 흐리면서.
국립묘지는 그 나라의 역사관과 역사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들, 전시 부역자들이 국립묘지에 버젓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후세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정파적 이익을 떠나 반민족 행위자 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친일 확신범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나 조상들의 친일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로 감추고 싶어하고 독립운동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내세우고 싶어한다. 예를 들자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그는 부친 김용주의 친일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부친은 친일을 한 게 아니고 독립운동을 도왔다”고 강변하는데 진실 여부는 차지하고라도 새누리당에도 친일을 감추고 싶어하고 독립운동 업적을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고무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친일을 반드시 누군가 했어야할 당면과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친일 확신범인데 문득 생각나는 인물이 윤치호와 이광수다. 윤치호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어 한 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말년의 윤치호는 친일 확신범이다. 이광수도 상해에서 독립 운동하다 귀국한 후로는 친일 확신범으로 변했다.
친일 확신범들의 특징은 우리 민족을 게으르고 무지하고 열등해 스스로 앞날을 개척하지 못하고 누군가 이끌어줘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에 시대적 트렌드인 사회진화(Social Darwinism)의 영향 때문인데 19세기말 20세기초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가 부국강병과 근대화가 화두였으니 사회진화론이 지금은 많이 깨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거스를수 없는 대세였다. 사회진화론의 어두운면을 비판하는 변영만 같은 선각자고 있었지만.
이광수 같은 문필가는 동아일보에 이순신을 연재하고 조선일보에 민족개조론을 실어 총독부의 시책을 적극 홍보했다. 이광수는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1년 귀국후 회심을 하고 조선민중은 독립할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일본의 가르침을 받아야 된다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광수가 회심을 한 배경에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지만 그 중 천황현몽설(天皇顯夢說)이 설득력이 있다.
허영숙과 함께 귀국하는 선상에서 꿈에 천황이 나타나 “춘원아, 춘원아 나는 네가 배척하고 미워하는 덴노헤이까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에 동성애가 미친 것도 아니고 질병도 아닌 존중해야 할 사랑이라고 말해 게이 지지자들이 들으면 반색을 하겠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그가 조선 민중에 끼친 정신적 해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성웅 이순신과 민족 개조론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쓴 것은 1922년으로 회심 후 첫 작품일 것이다. 게으르고 비겁하고 나태해 엘리트 집단에 복종하고 지도와 계몽에 따라야 한다는 것인데 민족개조론은 사회주의 계열 인사 신일용, 신석우 동경유학생 출신 최원순에게 철저하게 공박 당했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당시 사회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나 민중이 어리석고 게으르고 비겁하다는 전제는 잘못된 것이다. 브나로드 운동이 시작된 러시아의 농민들도 교육을 못 받아 무지하고 생활환경이나 경제적 상태가 열악하기는 했으나 농민들이 게으르고 어리석다는 전제하에 계몽운동이 전개 된 것은 아니다.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이순신을 쓴 1931년에는 만주사변이 일어났던 해로 일본 제국주의가 욱일승천을 시작해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의 열망을 잃어버리고 2등국민으로라도 살아야 되지 않을까를 고민했던 민감한 그 시기에 소설 이순신을 통해 조선민중은 어리석고 게으르고 무지몽매하고 지도층은 당파싸움만 하고 왕은 무능해 스스로 개척하고 일어날 힘이 없는 민족으로 묘사했다.
총독부가 막대한 시간, 돈, 인력을 들여 주입시켜야 할 것들을 이광수가 소설로서 대신 해준 것이니 총독부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의 소설 이순신이나 민족개조론이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은 개발독재의 기수 박정희에게도 영향을 주어 근대화와 부국강병에 매달리다 더 중요한 정신적 가치를 잃어버렸다. 도덕심,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봉사, 정의감 등등.
어제 밤에 에드몬톤에서 경찰 한 명이 근무 중 순직하고 같이 근무하던 경관은 부상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순직한 경관을 애도하는 성명서가 연방 총리실과 주 수상실에서 발표되고 관공서 학교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조기를 계양 한다.
캐나다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경관 한 명에게도 국가에서 최대한 성의를 다해 업적을 기리는데 재산과 생명을 바쳐 독립 운동한 애국지사들은 묻힐 곳마저 없고 친일파들이 국립묘지를 차지한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기사 등록일: 20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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