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일본 집단적 자위권과 날개 단 친일파_기자수첩
 


집단적 자위권
일본 참의원 본회의는 지난 19일 새벽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11개 안보관련 법률 재, 개정안을 가결, 전후 70년만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 돌아왔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이 공격 받지 않아도 자국과 밀접한 나라가 공격 받을 경우 무력으로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가령 미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캐나다는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는 NATO 회원국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자동 개입하게 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집단적 자위권이라고 한다.
이런 당연한 권리가 일본에는 없었다. 2차대전 전범국으로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전수방위만 할 수 있게 헌법9조에 명시되어 있었다. 일본 헌법 9조는 “일본은 전쟁을 무력분쟁의 해결수단으로 삼는 것을 포기한다” 선언해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정하고 전수방위원칙만 지켜왔다. 전수방위원칙이란 공격은 하지 않고 오직 방어만 한다는 원칙이다.
집단적 자위권의 배후 미국
야당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집단적 자위권을 통과시킨 극우 성향의 아베정권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 지난 7월 미 국무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대해 “일본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신문과 인터뷰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자위대를 강화하고 미국과의 연대를 깊게 하려고 노력중인 아베 총리를 높이 평가한다.”고 추켜 세웠다. 미국이 일본을 추켜세우며 70년전 적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인정하고 준비시키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미국은 그 동안 방만한 국방비를 줄이려고 유럽과 동북아의 해외주둔군을 감축하고 신속배치군 개념의 해외 미군 재배치를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 때 전시작전권 반환에 미국이 합의한 것도 양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작권 찾아와 주권국가 면모를 갖추고 미국은 군살 빼고. 그 후 노론이 명나라 바지가랑이 잡고 늘어지듯 신노론이 눈치 없이 미국 바지가랑이 잡고 늘어져 전작권 반환은 아직 미결로 남아 있다.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팽창하는 것을 미국은 막아야 하는데 미국은 해외주둔군을 줄이고 동북아에서의 미군의 역할을 일본 자위대가 맡아줄 것을 바라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
일본은 과거에 나쁜 짓을 한 적이 있다. 나쁜 짓을 해놓고 별로 뉘우치는 기색이 없이 말로만 미안하다고 했다. 같이 나쁜 짓을 한 독일은 무릎 꿇고 빌면서 피해보상 다 했는데 일본은 피해보상은커녕 피해자가 눈 뜨고 살아 있는데도 나쁜 짓 한 것을 부정하면서 말로만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과거에 피해를 잔뜩 준 중국이 경제, 군사적으로 강해지자 일본은 은근히 겁이 났다. 일본 우익이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려는 이유는 바로 중국 때문이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이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아직도 휴전중인 한반도에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상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자위대 한국 파병은 한국 대통령의 요청이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자위대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요구했을 때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유사시에 자위대를 북한에 파병하는 문제에 대해 “헌법상 북한은 대한민국 영토로서 자위대 북한 파병도 한국의 동의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북한은 유엔에도 가입한 엄연히 국제법상 국가로서 자위대 파병에 한국의 동의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해석은 아전인수식 해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한 미국의 태도를 놓고 제2의 테프트 가스라 밀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테프트 가스라 밀약
테프트 가스라 조약이란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7월29일 윌리엄 테프트 미 육군장관과 가스라 다로 일본제국 총리대신이 비밀리에 교환한 각서로 일본제국은 미국의 필리핀 식민통치에 관여하지 않으며 미국은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보호령으로 다스리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가스라는 “일본제국은 필리핀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해 미국의 필리핀 정책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러일전쟁은 조선 때문에 일어난 전쟁으로 조선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자 일본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가스라는 “전쟁 이후에도 조선을 그대로 둔다면 다른 나라들과 조약을 맺던가 협정을 맺어 또다시 복잡한 상황을 만들 것이므로 이런 상황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확실한 조치라는 것이 외교권을 빼앗고 군대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가스라는 동양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테프트는 가스라의 견해에 동의했다.
미국의 동의를 받은 일본은 보름 후인 8월12일 영국과 2차 영일동맹을 맺고 영국으로부터 조선의 보호권을 확인 받았다. 9월5일에는 미국 뉴햄프셔 포츠머스에서 러시아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와 일본 전권대사 고무라 주타로 사이에 러-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조약을 주선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러-일 강화조약에는 “러시아는 일본이 조선에서 정치•군사•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또 조선에 대해 지도•보호•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러시아는 조선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2차 영일동맹과 포츠머스 조약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열강으로부터 인정받은 일본은11월17일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테프트-가스라 밀약 이후 3개월20일만에 일이다.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자 가장 먼저 외교관계를 단절한 나라가 미국이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에 명시된 “우호적 중재”라는 조약국의 의무를 헌신짝 내버리듯 내버린 것이다. 미국은 그런 나라로 테프트 가스라 밀약의 내용을 외교적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
을사늑약이 발표되자 윤치호는 저자거리에서 늑약이 무효임을 주장하고 고종황제에게 늑약에 찬성한 을사오적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을 처벌하라고 강경히 주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치호는 나라 팔아먹은 매국 친일파가 아니라 조선의 장래를 걱정하며 부국강병에 몰두한 고종황제의 충직한 신하였다. 그럼 누가 나라 팔아먹은 매국 친일파인가?
매국 친일파 날개를 달다
나라 팔아먹는데 앞장 선 친일파, 일본이 영원할 줄 알고 조국의 독립을 포기한 채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에 빌붙어 살아가기로 결심했던 파렴치한 친일파들은 다 죽었고 몇 명 안 남았는데 산송장과 다름없는 남아 있는 자들도 처벌하기는 불가능하다. 처벌할 수 있는 관련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방 후 친일파들을 처벌하기는커녕 친일파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반공을 내세우며 권력을 잡고 득세했다. 그 결과 지금도 친일파의 혈통적 후손 이념적 후손들이 사회 각 방면에서 선조, 선배들의 과거 친일행적을 미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근래 몇 년 들어 부쩍 심해졌다.
며칠 전에도 정안기 고대교수가 수업시간에 “그 시대에는 모두 친일파였다” “위안부는 성 노예가 아니고 그 일 그만두고 오려면 올 수도 있었다” “독립운동가 1명 때문에 99명이 죄인 취급 당하는 건 부당하다”는 궤변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위안부 희생자가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실체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위안부 희생자를 모독하고 독립운동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학생회가 정 교수의 해임을 요구했다.
고대는 전에도 뉴 라이트 친일 교수 한승조가 “일제 식민지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적 있어 “민족 고대”가 아니라 “일본민족 고대”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세종대 박유하 교수는 소설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와 일본군을 동지적 관계로 표현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고소를 당했다. 법원은 일부 표현을 바꿔야 출판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표적인 친일학자들 모임에는 ‘낙성대 연구소’가 있다. 안병직씨가 좌장으로 있는 낙성대 연구소는 도요다 재단이 기부한 돈으로 “일본 식민지가 조선의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연구를 해 발표했다. 안병직씨의 애제자 이영훈 교수도 일본 지배가 근대화를 이뤘다고 주장하는 학자인데 그는 8월14일 아베 총리의 담화가 “매우 훌륭한 문장이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런가 하면 정호섭 해군총장은 개인의견이라면서 “대북 전쟁억지 차원에서 자위대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수교를 맺은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에 나라 빼앗기는데 34년이면 충분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알고 보면 황당한 이론이고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이론이다. 19세기-20세기에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이 번듯하게 살지 못하고 지금도 다들 그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은 “우리나 너희를 근대화 시켰다”고 말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런데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중에 대만과 한국이 예외적으로 밥술이나 먹고 살다 보니 “우리가 근대화 시켜준 덕을 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는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었지 근대화의 모델은 아니었다.
말년에 친일파 소리를 들은 윤치호도 “일본이 조선에 도로, 항만을 건설하고 토지개량 사업을 실시하고 은행, 공장 등 현대적 설비를 세운 것은 수탈을 효과적으로 하고 일본 경제 발전을 위해서였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친일의 이념적 후손들은 일본 우파의 득세에 발맞춰 친일행각을 점점 노골화 하고 있다. 친일파 정리가 왜곡된 한국 현실을 시정하는 만병 통치약은 아니지만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한 대가로 광복 70년동안 은밀히 암약하던 친일파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5-09-25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캐나다 소득세법 개정… 고소득자..
  앨버타 집값 내년까지 15% 급..
  고공행진하는 캘거리 렌트비 - ..
  캘거리 교육청, 개기일식 중 학..
  첫 주택 구입자의 모기지 상환 ..
  앨버타 유입 인구로 캘거리 시장..
  로블로 불매운동 전국적으로 확산..
  에드먼튼 건설현장 총격 2명 사..
  해외근로자 취업허가 중간 임금 ..
  <기자수첩> 캐나다인에게 물었다.. +1
댓글 달린 뉴스
  2026년 캐나다 집값 사상 최.. +1
  개기일식 현장 모습.. 2024.. +2
  <기자수첩> 캐나다인에게 물었다.. +1
  캐나다 무역흑자폭 한달새 두 배.. +1
  캐나다 동부 여행-네 번째 일지.. +1
  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