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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사나이, 역사 속으로_기자수첩
 
11월4일 트뤼도 총리 당선자의 선서식을 앞두고 하퍼 총리는 데비드 죤스톤 총독을 방문, 총리직 사임을 재가 받아 캐나다 총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총리 재임기간은 2006년 2월6일-2015년11월4일로 이틀 모자라는 9년9개월동안 총리로 재임했다.
그는 온타리오 퀘벡이 주름잡고 있는 연방정치에 조 클락(Joe Clark) 전 총리와 함께 앨버타 출신 총리로 기록 될 것이다. 조 클락 전 총리는 하이리버 출신으로 39세에 총리가 되어 캐나다 정치사에 있어 가장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인물이다. 신임 트뤼도 총리는 43세로 두 번째로 젊은 총리다.
그러나 조 클락 전 총리는 피에르 트뤼도라는 거목 사이에 끼어 고작 9개월을 총리로 재직한 단명 총리로 하퍼 전 총리가 캐나다 연방정치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 앨버타 출신 총리라고 할 수 있다.
총리 사임과 동시에 그의 고향 캘거리에서는 캘거리 국제공항 이름을 스티븐 하퍼 공항으로 바꾸자는 청원이 있을 정도로 캘거리 알버타에서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공항 이름으로 삼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총리직을 사임하고 평의원으로 돌아온 서부의 사나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며 보수당의 영고성쇠를 되짚어 보는 것도 서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93 총선 이후 보수당
하퍼 전 총리는 브라이언 멀루니 전 총리 이후 지지부진, 사오 분열한 캐나다 보수세력을 하나로 규합해 집권을 이룬 보수 정치 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다. 1984년 집권한 멀루니 정권은 정책 실패와 당내분열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논란이 된 GST 도입으로 멀루니 정권은 인기를 잃었고 서부 지역당인 개혁당이 떨어져 나갔다. 멀루니 정권도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자유당 정부로부터 2,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물려받은 보수당은 재정적자 타개를 위해 GST 도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93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폭삭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으로 이때부터 보수당의 흑역사가 시작된다. 156석 거대여당에서 단 2석을 얻는데 그쳐 제5당으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보수당과 같은 뿌리인 개혁당(Reform party of Canada)은 1석에서 51석이 증가된 52석으로 제3당이 되었다. 52석 중 서부지역에서 50석이 당선되었다. B.C. 24석 앨버타 22석, 사스캐추원에서 4석.
개혁당 대표 프레스톤 매닝이 캘거리에 지역구를 갖고 있었거니와 개혁당은 서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일 뿐 당 명인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던 서부의 극우 인기영합 정당이다. 그래서 서부 지역구 정당인 개혁당은 서부와 온타리오 시골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캐나다 연합당의 등장
93년 총선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보수당은 97년 총선에서 의석을 20석으로 늘렸으나 여전히 제5당을 벗어나지 못했다. 개혁당은 60석을 차지해 제1 야당이 되었다. 두 당이 힘을 합해도 자유당을 이길까 말까인데 분열된 상태에서는 자유당을 이길 수 없었다.
그 당시 자유당이 불경기를 벗어나는 경제정책을 도입해 경제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유권자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것도 아니지만 보수당이 분열될 상태에서 어부지리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0년 총선에서도 1997총선과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연방정계에서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로 극우정당으로 알려진 개혁당은 캐나다인에게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친 편협 된 정당으로 인식되었다. 총선 때마다 계속되는 2등도 보수 지지자들에겐 큰 불만으로 ‘보수 연합’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미지 개선과 정권 탈환을 위한 보수연합으로 등장한 것이 Canadian Reform Conservative Alliance다. 보통 Canadian Alliance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캐나다 연합당이라고 할까? 지역구에서 전국구로 발 돋음 하기 위해 매닝은 개혁당 대표도 사임하고 새로 창당되는 당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새로 창당된 당, 즉 캐나다 연합당 대표는 매닝이 아니라 스톡웰 데이(Stockwell Day)에게 돌아갔다.
지역구에서 전국구로
그러나 캐나다 연합당 역시 극우 이미지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저 덩치가 커진 개혁당이 이름만 바꾼 것으로 개혁당 출신들이 연합당 간부가 되어 당권을 장악했다. 멀루니 전 총리조차 “팬티호스 개혁”이라고 혹평을 했다. 보수당 대표 조 클락조차 연합당의 극우적 이미지에 입당을 거부했다.
스톡웰 데이 당 대표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어 연합당 의원 7명이 탈당을 해 조 클락의 보수당에 입당했다. 그러자 스톡웰 데이 당 대표는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당 대표 경선에 나섰다. 2002년 4월 열린 당 대회에서 스티븐 하퍼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되자 당을 떠났던 7명의 의원 중 5명이 돌아왔다. 그 때부터 스티븐 하퍼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반면 제5당으로 전락한 보수당은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고 2000년 총선에서 겨우 12석을 얻어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간신히 유지한 채 만년 제5당이 되었다. 조 클락 대표가 물러가고 피터 멕케이가 보수당 대표가 되었다.
2003년 10월15일 스티븐 하퍼의 캐나다 연합당과 피터 멕케이의 보수당이 합당을 선언했다. 합당 선언은 당원들 12월6일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인준되어 1867년 창당된 보수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새로 탄생한 보수당은 12월8일 합당한 보수당이 캐나다 선관위에 등록을 마쳤다.
이렇게 몸집을 키운 보수당은 스티븐 하퍼를 당 대표로 맞이해 2006년 총선에서 마침내 자유당을 누르고 13년만에 정권을 찾아왔다. 지역구에서 전국구로 발 돋음 한 하퍼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퍼 시대의 명암
보수 대연합이 출발하자 정치적 보수들은 하퍼 당 대표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이념적으로 다른 레드 토리를 비롯해 사회 보수, 자유의지론자, 극우파 등등. 보수주의자들의 기대에 부응해 2006년 총선에서 하퍼의 보수당은 정권을 잡았다.
하퍼정권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정부 씀씀이를 줄이는 관리능력을 발휘하여 2008-2009년의 불경기를 겪으면서도 비교적 빠른 시간에 균형예산을 이룬 점이다. 또 하나 중요한 업적은 재임기간 중에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TPP에 가입한 것이다.
감세정책도 하퍼 정권의 트레이드 마크다. 감세는 우파의 상징적 정책으로 하퍼 정권에서 캐나다인 모두가 소득세 법인세에서 골고루 감세의 혜택을 받았다. 하퍼 정권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환경변화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오일샌드 개발에 우선순위를 둔 것도 하퍼 정권의 특징이다. 형법을 강화한 것도 우파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그 외 일관된 친 이스라엘 정책, 아프간 주둔 연장, 시리아 이라크의 IS 소탕을 위한 공습에 가담한 것도 하퍼 정권의 우파적 성격을 나타내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보수당과 캐나다 연합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신생 보수당으로 보수당은 하퍼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하퍼가 대표에서 물러난 보수당이 과연 제 갈 길을 제대로 찾아갈지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보수당의 잔 다르크, 로나 암부르스
하퍼 전 총리가 보수당 대표에서 물러나자 이런 저런 인물들이 당 대표 물망에 올랐으나 임시 당 대표에 선임 된 사람은 로나 암브로스(Rona Ambrose)다. 암보로스 임시대표가 구원투수 역할을 잘 감당해 낙심과 침체에 빠진 당을 내년으로 예정된 당 대회까지 잘 이끌고 나갈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스스로를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라고 말하는 암부르스 임시 당 대표는 에드몬톤-스프루스 그루브 선거구에서 4선을 기록했고 이번 총선에서 이름만 변경된 스터전 리버-파크랜드 선거구에서 당선된 5선 의원으로 하퍼 정권에서 노동부장관, 보건부장관, 정무장관 등을 지냈다. 임시 당 대표는 차기 당 대표 경선에 후보로 출마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현재의 보수당은 아니지만 과거에도 보수당은 파산지경에 이르자 킴 켐벨(Kim Campbell)에게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의 역할을 맡겼다 별로 재미를 못 본 적이 있다. 성녀가 화형을 당하듯 당 대표이자 총리인 킴 켐벨 조차 지역구에서 낙선을 하는 수모를 당하며 장렬하게 산화했다.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센이라는 서부영화가 있었다. 악당을 물리치고 떠나는 센 에게 꼬마가 소리친다. “돌아와요 센!”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돌아오라고 소리칠 수는 없다. 대신, 굿바이 미스터 하퍼!

기사 등록일: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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