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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화해 무드_기자수첩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40년 가까이 적대관계를 유지했던 미국과 이란이 화해무드에 접어 들었다. 이란과 미국의 화해무드는 작년부터 시작되었다. 쿠바에 이어 이란과 적대관계 청산을 시작한 것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업적으로 평가 될 것이다. 원래 이란과 미국은 매우 친한 사이로 이스라엘보다도 미국과 친했다.. 팔레비 왕조 때 이란은 중동 대표적 친미국가로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비롯해 문물을 수입했다. 미국과 이란이 친하게 지내자 한국도 덩달아 이란과 친해져 서울 강남에는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테헤란로가 생겼다. 친하게 지내던 이란과 미국이 원수가 된 것 이유에는 팔레비 왕조의 잘못이 컸다. 중동= 이슬람 국가인데 이란은 이슬람 국가면서도 20세기 초부터 세속국가를 지향해 시민들 생활에서 종교적 색채를 없앴다. 예를 들어 팔레비 왕조 때 이란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고 히잡 쓰는 걸 법으로 금지했다. 세속국가를 지향하면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시민들 의식은 서구화 되었는데 팔레비 왕조의 통치 스타일은 서구식 민주주의 방식과 거리가 먼 독재 억압 방식이었다. 거기다 지난친 세속화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반감을 샀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반정부 세력과 힘을 합해 팔레비 왕조 타도에 나섰다. 사방에 적으로 둘러 쌓인 팔레비 왕조는 미국의 성원에도 맥없이 무너졌다. 반정부 세력이 총 동원해 혁명을 일으켜 왕조가 무너지고 팔레비2세는 망명길에 나섰다. 팔레비2세는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우방 미국으로 갔으나 이란이 강력하게 항의해 파나마 멕시코를 전전하다 이집트에서 생을 마쳤다. 친구에서 적으로 1979년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혁명이 일어나 왕조에서 공화정으로 바뀐다는 것은 대개 체제의 진보 발전을 의미한다. 당분간의 혼란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은 하루 아침에 세속국가를 이슬람 신정국가로 변모 시켰다. 대통령 위에 자리잡은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해 나라를 다스렸다. 1920년대부터 개혁과 세속화를 시작한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자유스러운 나라였으나 포르노 보다 적발되면 사형 시키는 무시무시한 나라로 변했다. 이란의 민주주의 세력은 팔레비 왕조의 공포정치에 대항해 혁명에 참여했으나 공포정치보다 더 무서운 이슬람 신정국가가 된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면 초기에는 강경파가 주도할 수 밖에 없는데 서구문물을 부정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미 대사관 앞에서 팔레비2세의 송환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격화되며 시위대는 대사관 담을 넘어가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삼았다.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은 팔레비 왕조를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이란 시민들의 반미감정과 이슬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의명분이 만들어낸 사태로 이란과 미국이 친구에서 원수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란과 미국의 국교단절은 현대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에너지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하는 미국으로서는 에너지 공급원인 중동의 안정이 중요한데 이란이 적대국으로 돌아서자 원유 보급로를 보호하기 위해 페르시아만 인도양에 해군력을 증강해야 했다. 미 해군력의 증강으로 많은 나라들이 해적들에게 털릴 염려 없이 안심하고 원유를 수송하고 있다. 미 해군의 무력시위는 소련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 영국 등 서구국가들이 무자헤딘에게 무기와 자금을 공급해 소련에 대항하게 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자 무장한 무자헤딘들은 이합집산과 진화를 거듭하며 테러단체로 변했다. 그 테러단체 중에 악명 높은 IS도 있다. 이란이 교조적 시아파의 신정국가로 변모하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수니파 이슬람 국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와도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다. 긴장이 폭발한 것이 이란 이라크 전쟁이다. 이란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으니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것이다.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으로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 이란은 국제사회로부터 경제봉쇄를 당했다. 해외의 이란 재산이 동결되고 미국으로부터 미국 구입하기 위해 신탁한 4억 달러도 동결되었다. 대 이란 수출 수입도 금지되었다. 국제사회로부터 경제를 봉쇄당하는 악조건 속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란은 오직 알라에 대한 신앙심으로 뭉쳐 이라크와의 전쟁을 무승부로 끝내고 전쟁 난지 8년만에 휴전을 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제재 이란이 핵 무기 개발 의혹을 받은 것은 1991년부터였다. 그러나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사찰결과 핵무기 개발 증거는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후 핵무기 개발 의혹을 계속 받아 기존의 제재에 더해 2007년부터 강도 높은 대 이란 금융, 무역, 경제제재가 시작했다. 그러나 이란은 국제사회 제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2009년 농축 우라늄 시설 10곳 추가 증설을 발표했고 2011년에는 20% 농축 우라늄 50Kg 생산을 발표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는 북한, 중국, 러시아가 연루되었다. 이란이 미국과 핵 협상을 시작한 것은 2013년 보수 강경파에서 중도파로 정권이 바뀌면서부터였다. 이란은 그 해 주요 6개국, 안보리 5개국+독일과 제네바에서 협상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핵 협상을 강력히 반대 했으나 길고 지루한 협상 끝에 작년 4월 이란과 국제사회는 핵 합의 도출에 성공해 이란이 다시 국제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란, 악의 축에서 국제사회 일원으로 지난 1월20일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제재를 해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 이란과 숙적관계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이란은 1,000억 달러의 해외자산을 복구해 숨 막히는 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또한 미국에 무기 구입자금 신탁한 4억달러도 돌려받게 되었다. 4억 달러는 그 동안 이자가 13억 달러로 배보다 배꼽이 몇 배 더 커졌다. 이란은 원금 이자 포함해 17억달러를 돌려 받는다. 그러나 이란의 국제사회복귀는 바닥을 치고 있는 원유시장에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이란은 OPEC 회원국이자 가스 매장량 세계 2위 원유 매장량 세계 4위의 거대 산유국으로 작년부터 제재가 풀리면 원유 생산량을 50만 배럴-100만 배럴 늘리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원유시장에서는 현 상황에서 이란이 생산량을 50만 배럴 이상 늘리면 유가는 배럴 당 18달러가 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어 산유국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란에 적대적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시장이 침체를 겪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경쟁자 생기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인위적 감산으로 유가를 조정할 기미는 당분간 보이지 않고 연말쯤 되면 OPEC비회원국 위주로 감산이 이루어져 유가가 조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로 수니파 근본주의자들인 IS 퇴치가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는 암암리에 테러단체 IS를 지원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국내 시아파 지도자들을 테러범으로 몰라 사형 시키고 이란과 외교관계 단절한 것도 미국을 향해 꼬장 부리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할거야?”라고. 이스라엘 역시 미국을 향해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중동의 왕정국가들도 겉으로는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를 반기는척하지만 속으로는 마땅치 않다. 이란은 보수 강경파가 물러가고 온건파가 정권을 잡으며 골수 신정국가에서 유연한 공화국으로 탈바꿈 하고 있다. 지도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공화국 이란은 중동 전제 왕정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나라로 언제 공화국 바람이 국경 너머로 불어올지 모르는 것이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가 정상화 되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한 위협이 없어진다. 미국의 중동정책도 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중요했는데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로 에너지 자급자족은 물론 수출까지 하고 있어 중동정책은 최상위에서 하위로 밀려 날 것이다. 페르시아만 과 인도양에는 두 척의 핵 항공모함 전단이 주둔하고 있는데 항모전단은 8척-13척의 군함과 숫자 미상의 잠수함으로부터 보호 지원을 받는다. 지난 30년동안 미국이 두 개 항모전단 운용에 퍼부은 돈이 7조3천억 달러인데 앞으로는 핵 항모전단에 그렇게 많은 돈을 퍼붓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태까지 미 해군은 자국의 해로뿐 아니라 중국 인도 한국 영국 프랑스의 해로도 보호해 주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많은 나라들이 미 해군 덕에 잔챙이 해적들에게 털릴 걱정 없이 해로를 마음껏 이용했다. 앞으로도 미 해군이 계속 주둔한다면 그 역할은 해로 보호에서 경쟁국 원유 수송을 감시 통제하는 역할로 성격이 바뀌게 될 것이다. 이란과 캐나다 캐나다는 2012년 하퍼 행정부 때 이란과 국교를 단절해 테헤란의 대사관을 철수하고 이란 외교사절을 추방했다. 핵 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에 동참하고 인권침해,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 지원 등이 외교 단절 이유다. 2007년 주 이란 대사를 지냈던 죤 먼디는 하퍼 정부의 대 이란 단교가 ‘실수’라고 규정했다. 외교관계란 한번 단절되면 회복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워 전쟁을 하는 교전국과도 외교관계는 유지하는 것이 통례라고 먼디는 지적했다. 그는 이란과 단교가 외교적 측면 보다는 이념적 측면이 강했다고 비판했다. 트뤼도 총리는 집권하게 되면 이란과 국교를 재개 하겠다고 지난 총선 기간 동안 다짐했다. 그러나 이란은 유럽연합이나 미국과는 관계 복원을 희망하지만 캐나다와 관계 복원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이란에서 캐나다 위치는 애매모호 해 이란은 캐나다와 국교 재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야당인 보수당도 이란과 국교재개는 위험하고 시기상조라고 변죽을 울리고 있다. 국제사회가 GDP 9천억 달러, 인구 8천만명의 새로운 시장에 도전을 하고 있는데 캐나다는 언제쯤 일까?

기사 등록일: 20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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