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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하락의 이면_기자수첩
 

에너지 혁명, 셰일 가스
고전의 고전이 되었지만 영화 ‘자이언트’에 보면 제트 링크(제임스 딘)가 유정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원유를 흠뻑 맞고 미친 듯 좋아하는 광경이 나온다. 농장 일꾼에서 하루 아침에 석유재벌이 되는 인생 역전을 이룬 것이다.
자이언트는 영화 속 이야기지만 록펠러는 현실 세계에서 석유로 대재벌이 되었고 석유로 돈 방석에 올라앉은 경우는 영화처럼 많다. 록펠러 때는 자동차가 없어 석유는 불 밝히는 조명용으로 쓰였고 그 외 윤활, 연소 용으로 사용 되어 2치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록펠러가 처음 시추에 성공한 것이 1859년8월29일인데 그가 중국에 석유를 판 일화가 있다. 당시 석유는 불 밝히는 등유로 많이 쓰였는데 등잔 800만개를 만들어 중국에 뿌렸다. 무료로 아니면 아주 헐값으로. 그런 다음 석유를 팔았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나 미국에서 또 한번의 혁명이 있어났다. 이번에는 ‘셰일 혁명’이다. 미국의 과학자들, 지질학자들은 땅 속에 채굴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혈암(shale rock)속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존의 기술로는 채굴이 불가능하고 설령 채굴을 한다 해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어 채산이 맞지 않았다. 즉 경제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석유를 외국에서 수입해 쓰는 편이 더 나았다.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게 되자 미국은 에너지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취급해 에너지 확보가 우선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그 동안 미국이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도 에너지 확보 차원이었다. 이런 현상은 73년 1차 원유파동 이후 더욱 심화 되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국은 천연가스가 조만간 고갈 될 것으로 예측해 액화 천연가스 터미널 설치 공사를 했다. 해외에서 액화 천연가스를 수입 하기 위해 13군데 건설 된 터미널 공사에 수백억 달러가 소요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셰일 가스 채굴 기술이 혁신적으로 개발되었다. 수평시추공법과 수압파쇄공법으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사이 미국 천연가스 생산량이 50% 증가되었다.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할만하다. 셰일가스 개발로 이 엄청난 변화를 이끈 인물이 조지 미첼(George Mitchell)이다.
셰일 혁명의 아버지 조지 미첼
미국인이나 캐나다인 대부분이 그렇듯 조지 미첼도 이민자의 아들이다. 미첼의 아버지는 그리스에서 이민 왔는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구두닦이 밖에 없었다. 이민 1세대는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누구나 고생을 하게 마련이다. 구두닦이 하면서 아들을 대학 보냈는데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조지 미첼은 고학으로 대학교를 다니며 석유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텍사스의 대부분 청년들이 그렇듯 조지 미첼도 석유산업계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석유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미첼 에너지’라는 간판을 달고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돈을 조금 벌기도 했지만 1차 원유파동과 함께 텍사스의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많은 에너지 업자들이 텍사스를 떠났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1982년 우연한 기회에 그는 한편의 지질 보고서를 읽었다. 텍사스 땅 깊은 곳에 광범위한 셰일 암석층이 있고 그 암석층에 원유와 가스가 있다는 보고서였다. 당시 그런 보고서는 흔한 것으로 에너지 업계에는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셰일 암석층에 고여 있는 가스나 원유를 뽑아낼 기술이 없어 수 많은 에너지 업자들이 달려 들었다 빈 손 털고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갑이 넘은 나이에 조지 미첼은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하지만 셰일 가스 시추는 전통적인 수평 시추로는 불가능했다. 수평 시추로 셰일 암석층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수평 시추를 해야 했다. 셰일 암석층을 뚫기 위해서는 물, 모래, 화학약품을 정교하게 배합해 고압에서 뿜어 암석층을 뚫는 수압파쇄공법이 성공의 열쇠였다.
조지 미첼은 인적 물적 자원을 총 동원해 10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채굴 시도를 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중에는 동업자, 에너지 회사, 지질학자들도 “돈을 땅속에 퍼붓는 미친 짓은 그만 두자”고 그를 설득했으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지 미첼은 20년 이상을 수평 시추와 수압파쇄공법 개발에 몰두해 1998년 마침내 셰일 암석층에서 가스를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80세를 코 앞에 둔 나이였다.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더 이상 투자할 돈이 수중에 없었다. 그는 35억 달러에 회사를 팔고 그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불굴의 의지와 노력이 세상을 바꿔 놓을 획기적 기술을 개발 한 것이다.
셰일혁명과 환경 변화
조지 미첼은 수압파쇄공법 상용화를 이루고2013년 7월26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수압파쇄(프레킹)공법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프레킹 공법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에너지 부에서 규제를 엄격하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골치거리가 될 수 있다.”면서 “규제를 적절히 따르기만 하면 수압파쇄공법을 안전하게 할 기술이 많다. 그러나 문제는 독립된 업자들이다. 독립업자들을 모두 규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라며 소규모 업자들의 통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수압파쇄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수압파쇄에 사용되는 물이 지하수를 오염 시키고 고압으로 분사된 물이 지진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수압파쇄공법이 진행 중인 폭스 크릭 일대에서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도 거기에서 찾을 수 있고 지질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오염된 지하수를 마신 동물들이 생식 기능을 잃었다는 주장도 있다.

세상을 바꿔 놓을 셰일 혁명
2005년 미국은 하루 1,2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60%를 미국이 수입했는데 때로는 수입 비율이80%로 높아지기도 했다. 원유 수입량은 2012년 하루 약 800만 배럴로 줄어들었다. 셰일 혁명으로 많은 양의 원유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이 하루 수입하는 원유가 약4백40만 배럴로 일본의 하루 수입량만큼의 원유가 시장에 남아도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2014년부터 중국의 경기가 저성장으로 돌아섰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 되어 유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해도 셰일가스 등장으로 원유는 남아돌아가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혁신적 기술 개발로 부존된 셰일가스 채굴량이 많이지는 것이다. 그 동안 OPEC는 원유 시장에서 생산 조정국(swing producer)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2014년 중반 이후 급락하는 원유가격에 OPEC는 생산 조정국의 역할을 포기했다.
배럴당 30달러 이하로 떨어졌던 유가를 그나마 40달러로 끌어 올린 것은 셰일가스 채굴 중단이었다. 이제는 OPEC를 대신해 셰일가스가 생산 조정자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회복하면 쉬고 있는 유정에서 다시 셰일가스 생산을 재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셰일가스 업계에서 경쟁력 없는 업체들은 이미 손을 털었고 경쟁력 있는 업체들만 살아 남았다.
수압파쇄공법의 눈부신 발전으로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전체 매장량의 20%가 채굴 가능해 약 100년 쓸 에너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젠 전체 매장량의 80%가 채굴 가능해 하루 200만 배럴을 생산할 경우 330년간 채굴 할 수 있는 양이 땅에 묻혀 있다.
셰일가스 개발로 미국은 2009년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 되었고 브리티시 페트로리움(BP)에 따르면 2014년 미국은 일일 생산량 1,160만 배럴로 39년만에 사우디 아라비아, 러시아를 제치고 최대 산유국이 되었다. 미국은 빠르면 2020년 에너지 자급자족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셰일혁명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OPEC 국가들이 아니라 러시아다.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 수출로 국가 경제의 2/3를 의존한다. 또한 ‘가스 공급 차단’이라는 카드로 유럽국가를 위협했다.
그러나 유가하락은 러시아 경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어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중국을 견제할 만큼 힘을 갖고 있어야 하므로 미국은 정치적 계산에 의해 러시아 경제가 붕괴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냉전시대에도 미국은 에너지를 수입하면서도 에너지 가격 조작을 통해 러시아를 번번히 골탕 먹였는데 이젠 풍부한 에너지를 손에 넣고 있어 러시아를 조정하기 더욱 쉬울 것이다. 가령 미국은 천연가스를 액화해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지난번 우크라이나 사태 때도 러시아는 ‘가스 공급 중단’ 카드를 들고 나왔는데 중요한 카드가 없어진 것이다.
셰일 혁명은 러시아뿐 아니라 앨버타 원유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가 하락은 앨버타 경제가 2년 연속 저성장 되는 현상을 가져왔고 앨버타 올해 예산은 사상 최대인 약 100억 달러 적자예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앨버타는 동 서 남으로 연결되는 4개의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하디스티와 미국 걸프만을 연결하는 키스톤 XL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는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거부 되었다. 공화당은 집권하면 키스톤 XL 파이프라인을 승인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원유시장 환경이 바뀐 현재로서는 공화당이 키스톤 XL 파이프라인 공사를 승인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 에너지가 앨버타 경제를 견인해 왔고 캐나다 경제에도 많은 기여를 했는데 그럴 날이 언제 다시 오려는지?

기사 등록일: 201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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