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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문턱에서, 정녕 잔인한 달인가?_기자수첩
 
4월이 되면 문학이나 시에 관해 무지한 필자 같은 사람도 엘리어트의 ‘황무지’를 생각한다. 장편 서사시 황무지는 5부로 구성 되었는데 1부가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th)으로 첫 줄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고 했다.
평론가들에 의하면 황무지는 아무 것도 잉태할 수 없는 20세기 서구 문명의 정신적 황폐화를 상징한다. 춥고 황량한 겨울을 서구문명에 비유한 시인은 4월이 희망과 재생 생명이 부활하는 달인데도 황무지의 주민들은 ‘망각의 잠’ ‘평화로운 죽음’ 속에서 부활과 희망을 오히려 귀찮고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어트가 황무지를 발표한 것은 1922년으로 그 때는 일본 식민지였으니 엘리어트가 동양의 작은 나라를 기억했을 리도 없고 그 작은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것을 잔인하다고 생각했을 리도 없지만 신통하게도 4월은 한국인들에게 잔인한 달이 되었으니 시인의 예지력에 감탄할 다름이다.
황무지 도입부에 쿠마의 무녀(巫女)이야기가 나온다. 신이 무녀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무녀는 죽을 수가 없다. “젊고 오래 살고 싶다” 해야 되는데 ‘젊고’ 소리를 뺀 탓에 죽지 못한 채 몸만 늙어 작아져 아이들이 새장에 넣고 다니며 묻는다. “무녀야, 뭐가 하고 싶냐?” “죽고 싶어.”
OECD국가들 중 한국은 자살률 1위를 10년째 누리고 있다. 2013년 통계로 보면 10만명당 28.5명 자살로 OECD 평균 12.1명의 두 배가 넘었다.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쿠마의 무녀처럼 영생을 보장 받지도 못한 채 지겨운 일상을 되풀이 하는 것이 싫어 ‘죽고 싶어’를 실천하는 것이다.

4월에 일어난 잔인한 일들

희망과 부활, 소생의 4월에 한국에는 유달리 잔인한 비극적 일들이 많이 있었다. 제주 4.3 사건이 그 시발이다. 그전에는 4.3 폭동이라고 배웠는데 지금은 공식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잘 모르겠다. 제주 4.3사건, 4.3민중항쟁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데 분명한 것은 폭도들에 의한 폭동은 아니란 것이다.
사건의 발단이 남로당 제주도당에서 시작되었으니 ‘공산주의 폭동’이라고 우길만도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공산주의가 뭔지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양민들이니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해 주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9연대장으로 작전을 지휘한 김익렬 대령(예비역 중장)의 회고록이 좌, 우 이념의 희생물인 제주 4.3사건을 이념을 떠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다뤘다. 현지 지휘관의 객관적 기록조차 일부에서는 좌파라고 매도하고 있는데 아무리 가치 있는 이념일지라도 아무리 심오한 종교적 교리 일지라도 아무리 고상한 철학적 사고라도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1975년 4월9일은 ‘사법 살인의 날’로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선고 받은 8명이 20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인명 경시의 독재정권이 빚어낸 잔인한 비극이다. 우리가 독재권력을 배격하는 것은 독재가 인간의 기본적 신체 자유, 정신 자유를 구속하고 권력유지를 위해 인간의 기본권리를 탄압하고 반대자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2014년 4월16일에는 인천항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침몰되어 수학여행 가던 성남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이 희생되었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어 외국 TV에서도 실황중계 하는 사고현장에서 단 한 명도 구조 못했다는 것은 “과연 한국을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대형사고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한국은 과거에 일어난 대형사고로부터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교훈도 얻지 못하는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안전 불감증 국가’라는 낙인이 찍히기 충분하다.
문명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가 일어난 지 2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세월호’는 진행형이다.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는데 세월호 유족들을 종북 세력으로 몰고 반국가 세력으로 몰며 쪽박 깨던 정치인들이 선거 때가 되니 유족들 방문해 표를 구걸하고 있다.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면서 “어린 영령들에 대해 죄인 된 심정으로 살아왔다”는 사람이 세월호 수사에 대해 기소권, 수사권 주는 것도 반대하고, 유가족들에게 일방적 양보를 요구했던 사람이요, 무릎 꿇는 유가족을 외면하고 차에 오른 사람이다.
4월19일은 ‘미완의 혁명’ 4.19 기념일이다. 4.19 혁명이 반쪽으로 끝난 것은 우리 민족에게 잔인한 비극이다. 혁명의 주체가 권력을 잡고 혁명 이념을 실행해 나갔어야 하는데 정작 권력을 잡은 것은 주체 세력이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이었다.
해방된 지 15년만에 일어난 4.19 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친일파 정치인들이었다. 자유당에도 민주당에도 독립운동에 앞장 선 민족주의 양심 세력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친일파 정치인들이 혁명의 수혜자였고 이것은 한국 사회에 친일파가 세력을 뿌리 내리는데 일조를 했다.

망각과 죽음, 잔인함

황무지의 주민들은 부활이나 생명의 소생, 희망을 거부한 채 죽음과 망각의 편안함을 찾는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황무지 주민들에게 생명의 씨앗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픔은 견딜 수 없는 잔인함이요 저주 받은 축복이다.
시인은 1차대전 후의 서구문명이 전쟁으로 무너지고 황폐되는 것을 시로 형상화시켰지만 황무지를 한국 현실에 대입시켜 보면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경제가 호황인 것도 아니고,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청년들은 직장이 없이 본의 아닌 백수 생활을 하고 있고, 40대, 50대 한창 나이에 정년퇴직이 기다리고 있고, 퇴직 후 노후대책이 없어 노년 빈곤은 늘어가고, 대학 진학 못하는 20%의 소외계층은 아예 사회적 관심 대상에서도 빠져 있어 빈곤의 대물림이 예상되고 평화통일의 희망은커녕 오히려 남북 갈등은 심화되고 있으니 ‘황무지’의 잔인함은 오늘날의 한국을 형상화 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평화, 평화, 평화

엘리어트가 ‘황무지’를 쓸 당시 개인적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과 고뇌의 세월을 지내며 황무지를 썼다. 가정에는 우환이 잇달았고 아내의 정신질환 등 불행했던 생활 속에서 쓰여진 시다. 황무지에 나타나는 종교적 구도자의 자세가 고뇌를 반영했다 볼 수 있는데 종교란 것은 등 따습고 배 부를 때보다 고통이나 고난이 닥쳤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엘리어트는 황무지를 쓴 후 영국 국교인 성공회 신자가 되었다. 한 때 불교를 믿어볼까 하고 기웃거렸으나 관념철학을 전공한 전문 철학자로서 이성적 사고와 시인으로서 문학적 창작력을 갖춘 엘리어트는 개인적 고통과 고뇌 속에서 조상들로부터 이어지는 지혜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엘리어트뿐 아니라 사람들은 고통, 고난, 역경을 통해 연단을 받아 정금 같은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욥기는 말하고 있거니와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고난 역경을 통해 성숙하고 건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니 한국사회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4월의 잔인한 일들도 다가올 영광을 위해 인을 치는 것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4월을 맞아 기나긴 겨울 동안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가사 상태에서 벗어나 소생하는 생명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러고 보니 4월13일이 국회의원 선거라고 한다. 한국 소식에는 관심이 없어 인터넷에서 큰 제목만 대충 훑고 지나가는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정신의 발현이다.
시의 마지막은 싼티, 싼티, 싼티로 끝난다. 싼티라고 해서 왜 갑자기 구루마에서 파는 티셔츠 이야기가 나오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산스트리트어로 shantih는 평화 평온이란 의미라고 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평화통일의 기틀을 이루는 계기가 되어 황무지가 옥토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의로운 지도자가 나타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고 폭우를 가리는 곳이 되고,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이 되기를 바란다. Shantih, Shintih, Shintih.

기사 등록일: 20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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