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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정체성_기자수첩
 
내년이면 캐나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150년 된다. 제국주의 산물인 식민지는 독립을 할 때 전쟁이나 무력을 통해 독립을 하는데 캐나다는 영국과 합의와 양보를 통해 평화적으로 독립을 했다. 그래서 캐나다에는 독립이라는 말보다 생일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독립’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압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인민의 간절하고 비장한 염원과 투쟁적이고 처연한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공통조상은 영국 이지만 독립 과정이 달랐다. 캐나다와 달리 미국은 전쟁이라는 혁명적 방법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다. 캐나다보다 일찍 독립해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북미 대륙은 우리가 모두 다스려야 마땅한데’ 윗동네에 있는 영국의 앞잡이들이 못마땅했다.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이런 영토욕이 1812년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전쟁 전개와 결과에 관계없이 이 전쟁으로 캐나다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캐나다가 탄생되기 50년전에 일어난 전쟁이다.

1812년 전쟁

미국의 캐나다 침략전쟁은 미국이 갖고 있는 본질적 성격, 호전성과 영토욕을 보여준 전쟁이다. 그 당시 미국은 인구가 700만명이 넘었고 캐나다는 50만명도 채 안되었다. 그리고 군사천재 나폴레옹의 말발굽 아래 전 유럽이 신음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군은 캐나다에는 소수의 병력만을 남겨둔 채 나폴레옹 상대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으나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했다. 미국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유럽에 평화가 찾아오자 영국은 프랑스에 포로로 잡혔던 14,000명의 군인을 미국으로 보내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들이 비록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혔었지만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1814년 벨기에 겐트에서 조약을 맺고 전쟁을 종결했다. 그러나 미군에 의해 토론토가 초토화 되고 그 보복으로 영국군은 워싱톤을 불태우고 대통령 관저를 파괴했다. 파괴된 대통령 관저를 복구하면서 흰 색 페인트를 발라 그 후부터 백악관이라고 불렀다.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 하라도 이 전쟁으로 생겨난 부산물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하지 않고 몰락하지 않았으면 영국은 신대륙에 병력 파견하는 꿈도 꾸지 못했고 넓고 넓은 캐나다 영토는 미국 영토가 되어 캐나다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퍼 총리 때 캐나다는 1812년 전쟁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특히 전쟁 20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지냈는데 미국에서는 1812년 전쟁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쉬 쉬’하고 있다. 수도 워싱톤이 적에게 유린 당했다는 것은 미국에게는 치욕의 역사다.
전쟁을 시작할 때 미국은 영국계에 압제를 받고 시달리는 퀘벡 프랑스계를 구슬렸다. “우리와 같이 영국을 혼내 주고 독립하는 게 어때.” 그러나 영국계는 프랑스계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우리와 함께 침략자 미국을 물리치자. 그러면 프랑스 문화 전통을 계속 유지하도록 인정해 줄게.” 프랑스계는 영국계와 힘을 합해 침략자를 물리쳤는데 전쟁이란 외부 침략자를 이용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영국계와 프랑스계가 하나로 뭉쳐 미국을 물리친 것은 그 후 캐나다가 연방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다.

캐나다와 미국

캐나다와 미국은 같으면서 다른 나라다. 겉은 같은데 속은 다르다. 두 나라 모두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고 공통 조상을 가졌고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캐나다에서는 프랑스어도 공용어로 쓰이지만. 미국 공중파 방송, 미국 소설 잡지가 캐나다에 넘쳐 난다.
월 마트와 맥도날드 세이프 웨이는 캐나다 방방곡곡 어디 가도 없는 곳이 없다. 군사적으로도 북미 방공망의 보호를 받는다. 캐나다 전체 수출량의 7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캐나다를 미국의 위성국가나 미국의 원자재 창고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미국은 강대국이다. 영토는 캐나다가 넓지만 경제규모도 인구도 미국의 1/10 수준이다. 어느 나라던지 강대국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동양이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유럽이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듯 캐나다도 초강대국 미국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캐나다와 미국은 다르다.
우리는 흔히 미국을 ‘용광로 문화’ 캐나다를 ‘모자이크 문화’라고 말한다. 다민족이 모여 살면서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타협하면서 화합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policing country)로서 각종 분쟁에 무력으로 개입하지만 캐나다는 평화수호를 원칙으로 해 베트남 전쟁도 반대했고 이라크 침략에도 반대했고 미국과 적대적 관계였던 쿠바와도 수교를 했다. 그러나 미국과 정말 다른 점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데 있다.

캐나다의 가치

지금 여론조사를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2004년 국영방송 C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 선정에서 1위에 오른 인물은 토미 더글러스(Tommy Douglas)다. 신분의 고하, 빈부의 차이 없이 누구나 국가로부터 무상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니버설 의료보험을 시작한 장본인이다.
한국 사회 기준으로 토미 더글라스는 빨갱이다. 침례교 목사 하다 정치에 입문한 토미 더글라스는 좌파 정치인으로 무상의료보험으로 반대파에게 공격을 많이 당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토미 더글라스를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 1위로 선정 했다는 데서 캐나다인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위대한 캐나다인 2위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테리 폭스다.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테리 폭스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대륙횡단 마라톤을 시작했다 선더베이에서 중단했다. 암이 폐로 전이되어 더 이상 마라톤을 계속할 수 없었다.
한쪽 다리로 대륙을 횡단 마라톤을 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테리 폭스를 위대한 캐나다인 2위로 선정한 캐나다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위에는 일본계 캐나다인으로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데비드 스스키가 선정되었는데 캐나다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는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계층의 조합이 필요하다.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선정된 인물 중에는 정치인도 있지만 테리 폭스나 데비드 스스키 같은 비 정치인들이 많다. 자신의 뜻이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계에 진출해 권력을 잡거나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데비드 스스키는 권력과는 거리가 먼 환경운동가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어느 권력가 못지않게 자신의 이상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고 있다. 지난 파리 기후회담에서 환경과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 이슈가 된 것은 데이드 스스키처럼 환경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의 노력과 꿈의 결정체인 것이다.
테리 폭스는 암에 걸린 후의 삶은 비범했지만 그 전에는 운동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으로 그런 청년의 이상과 꿈이 실현 되는 사회가 캐나다다. 캐나다의 진정한 가치와 정체성은 비록 이민자일지라도 혹은 소수민족일지라도 설령 다리가 한쪽 밖에 없더라도 다양하고 평범한 개인의 삶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꿈과 이상이 실현되는 사회라는데 있는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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