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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조국을 보며 _기자수첩
 


역사는 반복하는가, 진보하는가
내노라하는 역사가들의 역사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르다. 토인비는 역사는 반복한다 했고 카는 역사는 진보하며 인류는 발전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랑케는 역사의 발전이나 진보를 믿지 않고 변화할뿐 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마음이 있어 필자는 “역사는 진보하며 인류는 발전한다”는 카의 말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요즘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굿판을 보노라면 깊은 회의가 생긴다. “과연 역사는 진보하고 인류는 발전하는가?”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은 이미 이명박-박근혜가 한나라당에서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측에서 제기한 의혹이 대부분이다. 그때는 그냥 묻어두었다. 언론에서 누구도 건들지지 않았다. 선거의 여왕 소리를 들을만큼 박근혜는 득표력이 있었으니 수구 부패 기득권에서는 이용가치가 충분한 인물이었다.
박근혜가 국가 지도자로서 자질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은 그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이미 2005년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안되는 이유 10가지를 열거했다. 알면서도 그 자리에 올려 놓은 것이다.
박근혜를 보면 이원범이 생각난다. 이원범은 조선 25대 왕 철종의 초명이다. 그는 ‘강화도령’으로 알려져 강화에서 농사 짓던 무지렁이가 왕이 된 인물로 알고 있지만 10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살다 큰 형이 역적모의에 연루되어 사형 당하자 연좌제에 걸려 강화로 귀양을 갔다 헌종이 새파란 나이 23세에 훙 하자 졸지에 왕이 되었다.
이원범은 알려진 바와 같이 농사나 짓던 무지렁이는 아니었고 그래도 기본 학문은 습득해 지력이나 판단력이 박근혜 보다는 나았지만 노회한 신하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으로 왕은 꼭두각시였고 노론들이 뒤에서 정국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 해 조선을 더욱 파국으로 몰고 갔으니 역사는 반복한다는 하나의 증거다.
전제군주시대에 어쩔 수 없이 왕의 가장 가까운 핏줄이 왕이 될 수 밖에 없어 이원범이 왕이 된 것 같이 박근혜는 오로지 박정희 후광이라는 물거품 인기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철종 때 노론들이 국정농단 하듯, 그전부터 세도정치로 왕권은 유명무실해졌지만, 꼭두각시 앉혀놓고 국정농단, 권력 사유화를 계속했다.
바지 대통령이지만 모든 책임은 박근혜에게
바지사장이란 실권은 없이 실세의 지시에 따라 결제나 하다 법적으로 책임질 일 있으면 실세 대신해 형무소도 가는 사장이다. 도박판에도 바지가 있지만 박근혜 같은 바지 대통령이 있다는 것도 새로운 사실이다. 바지황제 바지왕의 경우는 많이 있지만 예를 든다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가 있다.
프란츠1세는 전형적인 바지황제로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가 실제로 황제 노릇을 했다. 프란츠1세 뒤를 이은 아들 요세프2세도 모후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바지황제 노릇을 했는데 루이16세의 왕비로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사형당한 마리 앙뜨와네트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다. 요세프2세는 모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을 해보려다 폐위 당할 뻔 했는데 짤스부르크 미라벨 궁 뒤편에서 요세프2세 흉상을 본 기억이 난다.
왕이나 황제는 국민 의사에 관계없이 자기들끼리 알아서 권력을 주고 받지만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공화국의 대통령이 개인에 불과한 최순실의 바지대통령 노릇을 자청했다는 건 인류 역사에 드문 일로 기록 될 것이다. 최규하 대통령도 바지대통령에 속하지만 다른 이야기다.
최순실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박근혜의 성격이나 심리, 주변의 정황 등은 나중에 법정에서 정상참착용이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정부의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 시켜 대한민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책임은 박근혜에게 있다. 국민이 권력을 위임할 때는 대통령 박근혜에게 위임한 것이지 최순실이나 문고리 3인방 에게 위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박근혜다.
박근혜의 책임은?
대통령은, 특히 대통령 중심제의 한국에서 대통령은 제왕적 권한을 갖는다. 전제군주시대 만기를 친람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국가원수로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은 비상권한, 행정 사법 입법에 관한 권한 등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 막강한 공적 권한을 갖는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개인에게 매달려 국가를 파탄 지경에 이르게 했으니 국기문란으로 국민을 배신하고 나라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사람은 박근혜 그 자신이다. 흔히 ‘최순실 게이트’라면서 책임의 상당부분이 최순실에게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박근혜가 주범이고 최순실이나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공범이다.
명색이 국정의 최고책임자란 사람이 재벌 총수들 만나서 모금이나 강요하고 국가 안보에 해당하는 기밀을 개인에게 누설하는가 하면 부당하게 인사에 개입했다. 박근혜의 언행으로 여태까지 드러난 죄상만 해도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위반, 공무상기밀 누설죄, 직권남용, 제3자 뇌물수수, 강요죄 등이 있다. 박근혜의 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날 것이 확실시 되 형사상 소추를 면하지 못한다.
배신당한 국민의 분노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근본이 되는 대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라 권력을 위임한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 일대에는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박근혜가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지하철 승객 통계를 이용한 자료에 의하면 132만명이 참석해 박근혜 사퇴를 요구했다. 100만명이 넘는 대규모 시민이 모여 사퇴 시위를 벌이면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없었다는 것은 시위문화가 한 단계 성숙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폭력시위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공권력에 진압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공권력이 먼저 폭력시위를 유도해도 넘어가지 말자는 공감대가 시민들 사이에 펴졌다. 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들도 “한 건의 사고 없이 시위가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했다.
시민단체들은 박근혜가 사퇴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시위는 19일에도 26일에도 열릴 것이다. 그러나 일부 국민들과 박근혜 맹목적 추종자들은 박근혜 하야 혹은 사퇴가 국정 공백을 가져와 크나 큰 혼란이 올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바지대통령에 불과했고 그 뒤에서 아무런 직책 없는 민간인이 실권을 휘두른 것만큼 더 큰 국정공백, 더 큰 혼란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시위를 통해 시민들은 배신당한 분노를 절제 있게 표현했다. 그러나 시민들과 달리 박근혜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왜 100만명 넘는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지 조차 모를 것이다. 최순실이 전화나 문자로 “언니 그만 사퇴해야겠어요.” 한 마디만 하면 일은 쉬워진다.
그러나 최순실은 구속되어 박근혜에게 조언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친박 측근들의 조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박근혜 본인은 대통령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조용한 곳에서 최태민과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살고 싶을지도 모르나 권모술수와 권력욕에 눈이 먼 측근들에 의해 조종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버티면서 보여서는 안될 꼴까지 모두 보여주고 그만두는 것도 나라 전체의 장래를 보아서는 나쁜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이번 ‘박근혜 사태’를 통해 자질 없는 지도자를 뽑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좀 더 확연히 알 수 있는 학습효과가 생길 테니까.
평생 1번만 찍어 왔다는 사람들이 이번 박근혜 사태를 통해 후회한다고 커밍 아웃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으니 더 추악할 꼴을 보여주면 한 줌 남은 맹목적 추종자들도 고개를 가로 저으며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박근혜 앞에 놓여 있는 길
박근혜 앞에 놓여 있는 길은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는 길처럼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길이 아니고 사퇴냐 탄핵이냐의 갈림길이다. 가지 않은 길이고 처음 가보는 길이긴 하지만 두 길 중에 한 길을 택해야 하는데 여태까지 들어난 정황상 사퇴나 하야 보다는 탄핵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탄핵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탄핵을 발의하고 표결에 부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회가 일사 분란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온갖 추한 꼴을 다 보일 것이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탄핵이 결정된다 해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쳐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탄핵까지 간다면 헌법재판소 판결은 탄핵 불가로 판결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는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나지만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대통령 그만 둔 후에 더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본인 스스로가 결단했으면 좋겠다.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신문발행일: 20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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