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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레시던트에서 수인번호 503으로 _오충근 기자수첩
 
박근혜가 구속 수감 되었다. 박근혜에 대해서는 개인적 소회가 있다. 필자는 박근혜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서강대 입학한 친구들도 있다. 서강대 입학한 친구 중에 한 명이 박근혜가 마음에 들었는지 박근혜를 따라 다녔다. 친구는 화학공학과, 박근혜는 전자공학과인데 교양학부에서 공통 과목 같이 수강하다 알게 된 모양이다.
그랬는데 중정에서 끌어다 혼찌검을 냈다. 중정에서 풀려난 친구는 어떻게 혼찌검을 당했는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박근혜 어디가 좋아서 쫓아 다니다 죽음까지 당했는지는 지금도 궁금하다. 그 때는 억울하다 소리도 할 수 없던 시절이라 친구 부모님은 생떼 같은 아들이 국가폭력으로 비명횡사 했는데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이 가슴에 묻어야 했다. 독재정치, 인권무시, 생명경시의 시대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 18년 동안 그런 아픔을 당한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이겠는가?

아버지 후광으로 상품가치 인정 받아
그때부터 40년 이상 세월이 흘러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 맞지 않는 구두였다. 박근혜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98년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선 소감이 “지하에 계신 아버지 이름을 욕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였다. 19년전 박근혜를 정치에 끌어드린 것은 수구 기득권 세력이었다.
IMF로 경제가 파탄 나자 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인들의 자존심이 상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듯 경제가 파탄 나자 한국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했다.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정경유착의 고질병폐 없이 중소기업 중심으로 더 건전한 경제성장을 이뤘으리라는 가설이 있고 그 가설을 뒷받침 하는 것은 당시 미국이 공산주의 확산을 막을 교두보로 한국의 경제개발을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나라에 공산주의가 침투하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이 절실하게 원했던 바다.
하여튼 박정희 시대에 맨 땅에서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경제 부흥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도 반대한 경제정책을 밀어붙여 성공한 게 소가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 되었지만 IMF가 터지자 한국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박정희를 그리워했고 때 맞춰 박근혜를 등장시켰다. 이회창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그가 발탁한 박근혜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경제성장은커녕 부채 680조를 차기 정부에 떠넘긴 채 뇌물 수수 등 13개 죄목으로 수인번호 503호를 달고 구치소에 수감 되었으니 “아버지 이름을 욕되게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볼 수 있다.

무혈혁명의 성공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킨 촛불의 힘은 무혈혁명의 성공이다. 국회로 하여금 탄핵소추를 발의하게 만든 것도, 헌재가 8:0으로 탄핵 인용해 박근혜를 파면 시킨 것도 촛불의 힘이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헌재 소장 대행의 낭랑한 음성에 전 국민의 80%가 환호성을 질렀지만 주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헌재가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한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박근혜 범죄사실이 13개인데 헌재 변론과정에서 5개로 압축되었다. 그 중에 최순실에게 국정에 관한 문서를 넘긴 것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으로 박근혜가 임명한 헌재 재판관들도 임명권자 탄핵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통령의 중대한 헌법위반은 아무리 봐주고 싶어도 봐줄 수가 없는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박근혜는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찌라시 수준의 음모’라고 부정했다. 그 후에 불거지는 모든 의혹을 거짓, 부정, 잡아떼기로 일관했다. 말은 특검과 검찰 조사에 성실이 임하겠다고 했으나 스스로를 초법적 존재로 인식하는, 일부 국민들도 초법적 존재로 인정하고 있지만, 그는 검찰이나 특검 조사 받을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고 증거가 명백한 객관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박근혜의 가장 큰 잘못은 죄의식이 전혀 없어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헌법이 대통령에 대해 임기 중 면책특권 불체포권을 부여한 것은 대통령이 잘나고 인격이 고매하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공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서인데 박근혜는 헌법이 부여한 막중한 책임과 권위를 최순실의 영업사원 역할 하는데 사용해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고 분노의 결집이 촛불이라는 무혈 혁명, 명예혁명으로 나타났다.

남아있는 자들
앞으로 박근혜는 재판 받고 형이 확정되어 기결수로 복역하다 국가에 경사가 있으면 형 집행정지 혹은 사면으로 석방될 것이다. 무능하고 무지한 소통 불가능한 실체가 낱낱이 밝혀진 만큼 그에게 기대려는 정치세력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정치세력이 있어도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그 동안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득을 취했던 무리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을 요즘 한국에서는 ‘적폐청산’이라고 한다. 적폐(積弊)란 쌓이고 쌓인 폐단을 말한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당선된 다음 지도자가 설득, 합의, 인내,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 적폐를 말끔하게 청산하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여기서 주저앉아서는 안되고 한 단계 도약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면 적폐청산은 다음 정권이 반드시 이뤄야 할 시대적 과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정부패를 당연시하고 한국사회를 주식회사로 전락시켜 몇몇 주주들만 이익을 챙긴 폐단의 주인공들에 대한 단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앙샹 레짐을 고집하는 15%-20%의 국민도 껴안고 가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분명한 만큼 통합도 중요하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힘들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말끔하고 깨끗하게 청산하고 정리한 후에 진정한 통합이 가능한 것이지 오물과 밥을 섞어 놓고 먹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40년 세월을 넘어
1970년에 남영호 침몰사고가 있었다. 4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 사고도 세월호처럼 안 일어나도 될 안전사고이자 인재였다. 사고원인은 과적, 무리한 운행계획, 정원초과로 승객 335명 중 12명 구조, 나머지 323명 중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대부분은 행방불명으로 지금도 바다 속에 있는 남영호에는 승객이 100여명이 함께 수장되어 있다고 추측할 뿐 정확한 사실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인양기술이 부족해 해저 40미터 이하에서는 불가능했는데 남영호 침몰지역은 해저 89미터다. 설령 인양기술이 있었다 해도 인양한다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사고원인 속속들이 밝혀지면 책임 추궁 당할 사람 늘어나 오히려 산 사람을 괴롭힐 테고 더구나 그런데 돈 쓸 여유가 없었다.
대통령 딸 따라다닌다고 국가기관에 끌려가 맞아죽는 세상인데 죽은 사람 인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서울대학생들이 모여 “근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전형적인 인명경시 사건”으로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남영호 사건과 세월호 사건은 경위도 다르고 사건의 전개과정도 달라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남영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왜 그걸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 대통령이 무슨 죄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지난 40-50년 동안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정치적 격변기를 겪으며 국민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몸으로 깨닫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거기에는 무수한 희생이 따랐다. 그 희생을 딛고 국가와 국민 사이의 권리, 의무, 책임을 고민하고 자유, 인권의 가치를 깨달았다. 군부독재에 찌든 국민들이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 평화적 정권교체도 이룩했고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대회를 유치하며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내공이 쌓인 사회 인프라는 이번 촛불집회로 증명되었다. 20회에 걸쳐 연인원 1,600만명이 참여한 탄핵촉구 촛불집회는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고 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 후보라는 말까지 돌았다.
남영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70년대 생각, 70년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첨단 과학시대를 맞아 스마트 폰을 능숙하게 다루고 디지털 음향기기로 음악을 감상한다 해서 시대감각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 가치, 인식체계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느껴야 한다.
3년만에 인양되는 세월호를 두고 “국민이 낸 아까운 세금을 그런데 낭비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세금은 꼭 공산 오랑캐 때려 잡는데만 쓰는 게 아니고 그런데 쓰라고 걷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박근혜가 침몰하자 세월호 인양이 시작 되었는데 박근혜의 침몰은 앙샹레짐의 종말을 뜻한다.
구시대의 모든 잘못된 관행, 모순, 왜곡되고 감추어진 진실, 부정부패, 고질적 정경유착, 수구 기득권의 행패도 박근혜와 함께 침몰하기를.

기사 등록일: 201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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