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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상달 개천절 _오충근의 기자 수첩
 
북반구 대부분 지방의10월은 아름답다. 지역에 따라 짧을 수도 길수도 있지만 10월은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게 상쾌하고 하늘은 높아지고 나뭇잎은 울긋불긋 변해 시각을 자극하고 곡식과 과일이 무르익는 계절이라 먹을 것이 풍성해져 마음이 넉넉해지고 흐믓해지는 계절이다.
그래서10월은 전통적으로 대형 이벤트가 많은 달이다. 북미의 추수감사절, 바이에른의 맥주 축제, 벨기에도 맥주 축제가 있고 스페인 프랑스 영국도 꼭 10월은 아니더라도 가을축제가 있다.
우리에게는 추석이라는 대형 명절이 있고 고대에는 10월을 상달(上月)이라해서 우리 조상들이 만주 일대 살 때 영고 무천 등의 이벤트가 있었는데 동, 서양을 막론하고 가을 축제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농경문화에 닿는다.
일년 농사를 마감해 먹을 게 넉넉하고 기후도 좋으니 마음이 느긋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올 한 해 농사도 잘 되었고 무탈하게 살았으니 이웃 사람들과 모여 잔치라도 하자. 이웃들과 모여 먹고 마시는데 잘 살게 해 주신 하느님 혹은 하나님, 천지신명도 좋고 동구 밖 느티나무 신도 좋고 자연법칙도 좋고 하여튼 누군가에게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때 맞춰 바람 불고 비 오고 햇볕이 나 농사가 잘 되지 않았는가? 그런 마음에서 가을축제가 시작 되었다.

단군 할아버지, 우리들만의 조상인가?
이 좋은 계절에 단군 할아버지가 세상에 오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고조선을 건국하셨으니 그날이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로 10월3일이다. 개천절은 임시정부 때 제정 되었는데 원래는 상원 갑자년(B.C. 2457년) 음력 10월3일인데 정부수립 후1949년 양력으로 바꾸어 개천절로 기념하게 되었다.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 하는 방법이 있지만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환산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10월3일에 의미를 부여하여 양력으로 지킨다.
건국신화에서 말하는 단군 할아버지가 실존했던 개인일수도 있고 신권과 왕권을 가진 신정국가의 지도자일수도 있고 그냥 단순히 허무맹랑한 신화일수도 있는데 단군 할아버지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만의 조상이 아니란 사실이다.
할아버지가 나 만의 할아버지가 아니라 형제들 사촌들의 할아버지이듯 단군도 당고르, 팅고르 등 이름으로 유라시아 전역에 펴져 있는,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일컫는 여진 거란 말갈 선비 돌궐 흉노의 공통조상이다. 중국인들 보기에 우리도 동이(東夷)라는 오랑캐에 불과하다.
단군은 러시아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단군 연구에는 정책의 중심을 아시아에 두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있지만 러시아는 고구려사 발해사 등 한국 고대사 자료의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소비에트 연방시절 비밀리에 단군 연구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연방 통합차원에서 연구라고 하는데 워낙 비밀이 많은 나라라서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은 없다,
러시아 북방고고인류학연구소에 의하면 니콜라이 2세 때 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되자 6개월에 걸쳐 고조선, 몽골, 만주족 역사서를 수집해 1대에 23량이 연결된 기차 6대에 싣고 모스크바로 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 역사학 관련 고서 원본만 450,440권 있다고 한다.
동 연구소는 슬라브족도 단군을 시조신으로 모셨는데 표트르 대제 때 정치적 이유로 유럽 중심의 서구화 정책으로 단군을 러시아 역사에서 지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군을 공통조상으로 모신다 해서 수많은 민족들이 우리와 혈연적으로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갖는 것은 아니고 더구나 우리 민족이 그 옛날 광활한 대륙에 제국을 건설해 그들을 지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천만의 말씀”이다.

단일민족의 허와 실
단일민족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문화적 공유성을 바탕으로 하여 전통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인정되는 집단”. “일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점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집단”으로 정의한다. 그러니까 민족이나 단일민족 개념은 역사적 소산이지 생물학적 소산이 아니다.
나는 해주 오가 인데 아버지 성을 이어받는 전통 때문에 해주 오가 가 된 것이지 혈통적으로, 생물학적으로는 풍천 임가, 풍양 조가, 안동 김가 등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세 집안의 피가 섞여 있고 증조, 고조, 그 위로 올라가면 훨씬 더 많은 피가 섞여 있을 테니 혈통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나는 해주 오가와는 무관할 수도 있으나 조상들이 해주 오가라는 역사적 사실로 인해 해주 오가가 된 것이다.
개인도 이럴진대 수천만 명의 거대한 집단이 5천년 동안을 단군을 피라미드의 정점으로 만세일계의 혈통을 유지했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불가능한 일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혈통적 생물학적 단일민족은 거론한 가치도 없다.
그러나 한국인들 사이에는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작용한다. 역사적 소산으로 단일민족 개념이 언제부터 생겼을까? 그것은 우리가 언제부터 일본 중국 등 이웃 민족들과 다른 별개의 집단이란 사실을 인식했기 시작했을 때부터인가에서 시작된다. 그때가 청동기 시대로 발굴 되는 청동기 유물이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과는 별개의 독립된 집단이었고 주변에서도 독립된 집단으로 인정했다. 단군 할아버지가 건국한 고조선이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데 문헌에 등장하는 나라니까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 나라다.
그러나 근대 민족 개념과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 조상들이 혈연적으로 직접 관련이 없을지는 몰라도, 가졌던 집단 동류의식과는 개념의 차이가 있고 우리 역사를 보면 민족이란 개념보다는 국가단위로 역사를 써왔다. 고려도 그랬고 조선도 그랬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발해를 민족국가로 서술했지만 민족보다는 국가단위의 지역공동체였다.
민족보다는 국가단위의 역사는 삼국통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삼국통일을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망시켰다고 해석하는 것은 현대적 시각에서 본 자의적 해석이다. 그 동안의 다양한 자료와 연구를 통해 백제와 일본(왜)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백제를 구원하러 왜에서 군대를 보내왔다는 사실에서 삼국은 삼국간의 동맹은 물론 당을 비롯해 중국 왕조들이나 왜와 동맹을 맺어 국익수호와 영토확장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라는 통일 후 삼한일통, 뿌리가 같은 삼한을 통일했다는 의식의 저변에는 희미하게나마 한(韓)민족이라는 동류의식이 있었고 그 삼한일통 의식은 고려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고조선 이후 한(韓)을 계승한다는 의식은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분단된 조국도 간단히 줄여서 남한, 북한으로 부르고 있으니 우리는 싫으나 좋으나 한(韓)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다문화 사회와 민족주의
세계가 다원화 되고 통신 교통의 발달로 국가간 이주가 자유로워져 지구촌이 일일 생활권이 되어가는 추세에서 민족주의, 단일민족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 정신에 맞지 않는 고루한 발상이다.
더구나 19세기말 20세기초 유럽 제국주의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민족간의 편견을 이용해 전쟁을 일으켜 살육을 일삼은 어두운 과거 때문에 민족주의가 못쓸 생각, 반 인륜적 생각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것은 민족주의를 서구 시각에서만 바라본 사대주의 발상으로 ‘백의민족’ ‘한민족’ ‘배달의 민족’과는 다른 개념이다.
히틀러처럼 아리안의 혈통유지를 위해 남의 민족 가스실에 밀어 넣어 몰살 시킨다거나 민족 감정을 악용해 전쟁의 광풍을 일으켜 인류에 막대한 피해를 입하는 것만 민족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야구장에 가서 고향팀 응원하는 것이나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팀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도 민족주의고 강대국에 침범 당해 국권을 잃고 독립을 위해 일치단결하여 투쟁하는 것도 민족주의다.
민족주의에 좋은 민족주의 나쁜 민족주의 소박한 민족주의는 없다. 민족주의 자체는 가치중립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보느냐 닫힌 마음으로 보느냐 차이다. 히틀러 같은 민족주의도 있고 일차대전의 원인 중에 하나가 된 파괴적 민족주의도 있으나 페르시아를 통합한 키루스 황제(성경의 고레스)의 열린 민족주의도 있다.
다문화 다인종으로 구성된 캐나다에 살면서 남의 문화 남의 전통 남의 종교를 포용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되 “내가 누구냐?”라는 자기 정체성을 설명해야 한다.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황제는 각 민족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바벨론 시대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인을 석방해 고향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게 했으니 21세기에는 그런 열린 마음의 민족주의가 필요하다.

기사 등록일: 201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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