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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혁명과 전쟁_ 오충근의 기자수첩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번에는 3월8일이 평일이다 보니 대부분의 여성의 날 행사를 3월3일, 4일 주말에 치렀다. 여성의 날은 1908년에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110년이 되었고 유엔이 공식적으로 여성의 날을 제정한 것은 1975년이다.
110년전이나 올해나 여성들이 주장하는 바는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부당한 대우는 여전히 존재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들의 참정권 요구가 사라졌다. 아직도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의 참정권 인정이 제대로 안되고 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부당한 대우가 다른 문화권보다 심하기는 하지만.
수천 년을 이어져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동양이나 서양이나 여성의 역할이나 존재는 극히 제한되었다. 동양에는 삼종지도가 있다.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삼종지도 비슷한 게 서양에도 있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속하고 결혼하면 남편에게 속했다. 여성은 계약서에 서명할 수 없고 소송을 제기 할 수 없다. 결혼하면 여자의 재산은 모두 남편에게 속했다. 심지어 속옷도 남편 소유였다. 만약 여자가 일을 해서 돈을 번다면 돈은 남편에게 지불된다. 여자가 간통하면 남편은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으나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간통을 하면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
산업혁명 이전의 여성의 역할은 결혼해서 애 낳아주고 집에서 요리, 양육, 청소 등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것에 국한 되었고 그 나머지 모든 것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자들이 할 수 있은 일이라곤 귀족이나 상류층 집안의 하녀 노릇 밖에 없었다. 이런 여성의 역할에 변화를 가져 온 것은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손발이 하는 일을 기계가 하게 되어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생산수단을 보유해 부를 축적한 자본주의가 태동하였고 대량생산 체제에 맞춰 대량의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도 60년대부터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대도시 인구집중 현상이 생겼지만 산업혁명 때도 농촌인구들이 도시로 이주해 도시 인구가 급증해 노동계급을 형성했다.
산업혁명 당시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이윤의 극대화, 효율의 극대화를 위한 정부의 규제가 없는 철저한 ‘자유방임’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들에게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돌아왔으나 성인 남자 노동자들도 그랬지만 여성들과 어린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여성들도 자본주의의 일원이 되었으나 여성들이 할 수 있은 일은 제한적이었고 노동조건도 남자들에 비해 가혹했다. 특히 광산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조건은 지옥이라고 말할 정도로 열악했다. 남자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곳에 여성들이 투입되어 물이 무릎까지 차는 갱도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 임신한 여성들도 예외가 없어 갱도에서 일하다 출산하는 여성도 있었다. 차별과 가혹한 조건 속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불만은 언제 폭발해도 폭발할 문제였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민혁명도 여성들이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1848년은 유럽에서 혁명의 해였다. 혁명의 원조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자 3월 들어 비엔나, 베를린, 헝가리, 이탈리아에서 혁명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프로이센의 빌헤름 4세는 혁명의 불똥이 튈 위험에 처하자 여성들의 참정권 인정을 포함한 일련의 개혁정책을 발표했으나 혁명의 위험이 사라지자 여성 참정권을 비롯해 개혁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다. 그러나 빌헤름 4세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겠다고 선언한 3월19일이 초기에는 여성의 날이 되었다.
여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뉴욕의 방직공장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었다. 이때를 시작으로 미국 유럽의 여성노동자들이 참정권 인정,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저임금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달았다.
1908년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15,000명이 모여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런 여성들의 자각과 노력은 제2인터내셔날 노동자 회의에서 인정 받아 1910년 코펜하겐 노동자 대회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선포하게 되었다.


일차대전 여성의 지위를 바꾸다
일차대전은 인류 최초의 대규모 ‘패싸움’으로 강대국을 중심으로 두 패로 갈라져 싸운 전쟁이다. 전쟁이 나자 남자들은 모두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고 후방이 텅 비어 생산이 중단되게 생겼다.
일차대전은 최초의 대량살상 무기가 등장한 현대전 개념의 전쟁이자 총력전으로 물자가 없으면 전쟁수행이 불가능해 평소에는 집에서 요리, 양육 등 가사노동에 전념하던가 일을 해도 남성의 보조역할이나 방직공장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남자들을 대신해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으니 일차대전이 아니었으면 여성들의 사회진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획기적으로 급격하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를 급진적으로 급격하게 변화 시키는 것은 전쟁과 혁명이다. 마치 전쟁이나 혁명을 찬양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역사 흐름의 큰 틀에서 볼 때 결과가 그랬다는 것이다. 백의의 천사 대명사인 나이팅게일도 크리미아 전쟁 이 아니었으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여자가 전쟁터에서 간호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였다.
평화주의자들은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결벽증적 반응을 보이는데 꼭 평화주의자들이 아니더라도 보편적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반대하므로 전쟁반대는 평화주의자나 진보주의자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일차대전으로 종래에 남성의 고유영역에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군수산업 무기산업에도 여성들이 진출했다. 통계에 의하면 1차대전 때 생산된 무기의 80%는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영국 Barnbow 군수공장의 16,000명의 종업원 중 93%가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운전, 자동차 수리 군수물자 정비를 비롯해 설계, 토목, 건축, 항공기 조종사 등 금녀의 구역을 하나 둘씩 허물며 들어갔다.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위해 생리대가 고안된 것도 일차대전 때이고 여자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도 일차대전이다. 그전에는 여자들이 바지를 입는 것은 부도덕과 정숙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여담으로 프랑스 파리는 1800년 시 조례로 여성들의 바지 착용을 금지했는데 조례가 폐지된 것은 2013년이었다. 이 황당한 조례는 오래 전에 사문화 되었지만 몇 년 전까지 파리에서 여자가 바지 입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여성의 참정권 획득이었다.


100년이 지나서
올해가 일차대전 끝난 지 100년 되는 해로 여성들의 지위가 급격히 향상되기 시작한지도100년 되었다. 지난 10월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 하비 웨인스타인이 수십년간 여배우들을 대상으로 성 폭력 한 것이 밝혀졌다. 감독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영화계에 발을 디딘 여배우를 농락한 것이다. 을의 위치에 있는 여배우들은 감독의 횡포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밝혀진 피해자는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3명의 피해자가 나왔으나 들불처럼 퍼지는 #Me too로 피해자는 계속 늘어났다. 그 중에는 안젤리나 졸리, 애슐리 쥬드 같은 유명 배우도 있다. 북미 대륙은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인데도 캐나다의 경우 성희롱 성추행 피해여성의 92%가 신고를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고해도 신고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폭력 고발이 미투 열풍을 타고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여자 검사가 상사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공개하면서 도미노현상이 일어나 문학계, 연극계로 번지더니 정치권에서도 성폭력 고발이 일어나 대선주자를 지낸 현직 도지사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직책을 사임하고 정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투의 본질은 단순히 성범죄의 문제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권력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발행하는 구조적 범죄이다. 직장, 학교, 교회 어디고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사회가 강자와 약자 구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성의 날 행사에서 매린 에드워드가 “성 평등과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나서자.”고 외친 것도 여성 문제를 떠나 강자와 약자의 구도에서 약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자는 뜻이다.
권력과 돈을 갖고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계층에서 억압과 착취로 약자를 괴롭히고 약자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 할리우드의 여배우들도 감독의 눈에 나면 배역을 받을 수 없으므로 한국의 여자 검사는 상명하복의 엄정한 위계질서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참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미투는 침묵을 강요하는 강자에게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자 약자의 구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자가 약자로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통보수주의 원조 에드몬드 버크(Edmund Burke)는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갑을관계, 상하관계의 구도에서 약자들은 연대를 통해 부조리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그 시작에 미투가 앞장 선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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