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장군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군바리(군인 비하 목적이 아님) 출신인데 문필가이고 시인이다. 저서도 많이 있다. 그는 생도 2기 출신으로 6.25 때 소대장으로 참전했다.
소대장을 비롯한 초급장교는 총알받이라고 부를 만큼 6.25 때 전사자가 많았는데 그는 살아남아 나중에는 월남전도 참전했다.
그는 문학적 소양을 살려 전사를 연구해 그 분야 독보적 존재이다. 전쟁박물관에는 그의 정성이 곳곳에 어려 있다.
박경석 장군은 오늘 죽은 백선엽이 현충원에 묻히는 걸 반대한다. 독립군 때려잡던 간도특설대 장교가 현충원에 묻힌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냐 면서 프랑스 같았으면 총살감이라고 말한다.
6.25때 백선엽이 세운 전공에 대해 박경석 장군은 “대부분 과장되고 미화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일본군 출신들이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 대본영의 전쟁 미화 선동을 그대로 본받아 6.25 때 써먹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초등학교 반공도덕 시간에 배운 육탄 10용사, 백선엽이 지휘하던 1사단에서 생긴 군인의 귀감이 되는 육탄 10용사도 날조된 가짜 무용담으로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 대본영에서 만들어낸 전설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지적한다.
다부동전투도 과장되었다고 지적한다. 낙동강 전선이 240 킬로미터로 한국군 5개사단, 미군 3개 사단이 북한군 남하를 막은 전선으로 다부동 전투의 비중은 1/8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 때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시도를 막는데도 박경석 장군은 뒤에서 힘을 보탰다. 혼자서는 역부족이라 채명신 장군, 이대용 장군, 박정인 장군의 도움을 받았다. 박경석 장군은 “6.25 때 참전했던 정의감 넘치는 장군들은 백선엽의 행적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독립군 때려잡던 사람이 원수가 된다면 대한민국이 전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된다.”
박경석 장군은 지만원 과도 한 때 친하게 지냈다. 지만원은 광주 5.18 때 북한군 600명이 넘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박경석 장군이 군사평론가 협회 회장일 때 지만원이 부회장을 했다. 지만원은 육사 22기로 장교 시절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학구파 군인이다.
박경석 장군 말에 의하면 지만원 박사는 “두뇌가 명석하고 예리한 관찰력에 일 잘하는 사람”으로 5.18 때 북한군 600명이 넘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왜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지 박사는 남에게 인정받고 관심 받는 걸 좋아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강연하고 연설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서 지만원의 성격 탓이 아니겠는가 라는 추측을 했다.
박경석 장군은 늦게 장군 진급해 5.18 때 인사참모부 차장으로 공적심사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전두환과 5.18 주역들의 공적심사를 거부하고 군복을 벗었다.
박경석 장군은 지만원이나 태극기 부대 같은 소용돌이도 역사가 진실의 바다로 흐르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백선엽 장군은 내가 모시던 상관이지만 본인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군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가족 묘지에 묻히는 게 가장 좋다.”고 해법을 내놓았다.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는 전쟁 수행 중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작전실수를 저지르는데, 그 중 하나가 경북 칠곡군 가산면 전투, 일명 다부동 전투에서 이 일대 고지들을 방어하고 있던 예하 3 개 사단 중 주력인 제 15 사단을 의성으로 이동시켜 일대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15 사단을 의성을 이동시킨 이유는 아마도 경주를 공략하기위해서 였던 것 같은데 이게 대구공략의 축선인 칠곡전선을 무너뜨려 연합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북으로 돌파할 수 있게 하는데 일조를 하게 됩니다. 전력이 크게 약화된 인민군 제 3 사단과 13 사단의 방어선을 결정적으로 무력화시킨 건 미국군 공군전력이었습니다.
백선엽의 거의 유일한 전공으로 과장날조되어 있는 다부동 전투를 도구삼아 그를 국립묘지나 대전현충원에 안장시키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고인을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