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위 모태신앙을 지닌 기독교인이고 2년전에 은퇴하기까지 캐나다에서 20년동안 교회에서 일한 목사입니다. 메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목회현장에서 저의 기독교 신학은 서서히 진화되었습니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서서히 물러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저도 과거에는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하느님의 축복론과 예수의 이분법적인 구원론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하늘 위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하느님과 교회가 만든 교리적인 예수는 사라지고 깨달음의 하느님과 참 인간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요일 예배의 강단에서 그리고 성경공부반에서 교인들에게 하느님을 믿기 보다는 하느님을 스스로 느끼고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면 더욱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체험이고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의 고백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은퇴한 후 요즈음 Religious Naturalism 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북미의 원주민들의 영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 한울님이냐의 논쟁도 무의미합니다. 하느님/하나님/한울님 은 믿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는 수단이고 표현입니다. 성서적으로도 God 이란 말은 고유명사의 이름이 아니라 영적체험을 표현하는 방법일뿐입니다. 따라서 성서에 God 에 대해서수 십가지의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저는 지금도 역사적 예수가 체험하고 가르친 하느님과 세상과 인간과 생명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만든 전지전능한 하느님과 최후 심판의 교리적인 예수에 대한 조직신학들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대신 역사적 예수가 깨달은 하느님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과 형이하학적인 삶을 신뢰합니다.
종교인의 신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생명들과 자연과의 상호관계를 존중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생각해 보지도 못한 분들은 부디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신선한 신앙고백을 접하니 무척 반갑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