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운 날이 있다. 눈 녹아 질퍽대는 길 위에 서서 누군가 몹시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함께 있어도 쓸쓸한 세상, 허공에 떨어지는 네 그림자가 모르는 이름처럼 멀기만 하다.
네 어깨에 기대어 내 눈은 먼 산을 본다.
그리움도 인격이 있을까? 함께 있어도 쓸쓸함을 느끼는 염치없는 그리움도
인격이 있을까?
네 맑은 눈 속에서 나는 하늘을 본다. 조각조각 깨어져 길 위로 깔려버린 하늘, 하늘은 이제 질퍽거리며 녹고
있다. 깍깍거리며 울고 있는 새 한 마리, 철탑 위에 앉아 있는 그리움이 부르르, 진저리치며 떨고 있다.
김재진 /
함께 있어도 쓸쓸한 세상 그리움이라 했다.
기억해 나지 않아도 누군가가 눈앞을 어른대는 것이,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움 이라 했다.
눈물 이라 했다. 누군가를 그려보는 순간 얼굴을 타고 목으로 흘러 내리던 짠내 나는 것이 눈물이라 했다.
사랑이라 했다.
눈물과 그리움만 으로 밤을 지새는 것이, 그래서 날마다 .시뻘건 눈을 비비며 일어나야 하는 것이 사랑이라 했다.
몹쓸 병이라 했다.
사랑이란 놈은 방금 배웅하고 돌아와서도 그를
보고프게 만드는 참을성 없는 놈이라 했다.
그래서 사랑이란 놈은 그 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드는 몹쓸 놈이라 했다.
행복이라 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 이름을 불러보고 또 눈물 짓고 설레는 것이, 그래서 순간 순간 누군가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행복이라 했다.
이준호 /
사랑이라 했다 .그리움은 기다림을 낳았습니다.
기다림 때문에 나는 강물에 거칠게 출렁이는 일이 더 잦아졌습니다.
누구의 일생이든 그 속에 하나씩의 기다림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압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속으로 무척 단단해졌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하여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으나, 고통을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아파도 참는 거야. 우리가 참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소리를 낼 수가 없어. 우린 서로 함께 아픔으로써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거야. 어떻게 고통 없이 아름다워질
수 있겠니.
어떻게 네 몸이 닳지 않고 마당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느냐?
그럼 넌 너 대신 마당이 닳기를 바라느냐?
내가 간절히 원하던 삶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닳아 이 세상의 한 모서리가 눈부시게
깨끗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싶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 사랑으로는 날 수가 없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만 넌 날 수 있어. 사랑은
희생이야. 순수한 사랑에는 어는 정도 맹목성이 있는 거야. 고통까지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랑 말이야. 사랑은 기다림이다.
사랑은 그리움이다. 사랑은 고통이다. 사랑은 헌신이다. 사랑은 눈물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기쁨이며, 행복이며, 감사함이다.
정호승, 박항률의 어른을 위한 동화 <모닥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