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사랑을 노래하는 詩를 무척 폄하했었다.
그러한 여린 감성이 이 차갑기만 한 세상의 현실과는
무관한 것처럼 여겨졌고, 시간이 남아 돌아 한가로운
정신들이 호사스럽게 엮어내는 말초적 감상의 유희
같았기 때문이다.
무관한 것처럼 여겨졌고, 시간이 남아 돌아 한가로운
정신들이 호사스럽게 엮어내는 말초적 감상의 유희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나란 사람도 참으로 차갑게
살아온 흔적이 너무 많다.
살아온 흔적이 너무 많다.
그에 대한 회한에서 일까...
남들은 이미 오래 전,그들의 젊은 날에 노래했던 사랑을
이제사, 나의 빛바랜 詩 안에서 조금씩 노래해 본다.
이제사, 나의 빛바랜 詩 안에서 조금씩 노래해 본다.
늦은 나이에 감성적인 詩를 쓰는 궁색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돌이켜 생각컨데, 詩 안에서는 어떠한 주장이나 사상도
사랑만큼은 예술적이지 못한 것 같다.
사랑만큼은 예술적이지 못한 것 같다.
또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이며, 아름다운 信仰의 기도이다.
가치이며, 아름다운 信仰의 기도이다.
더욱이,이 살벌한 시대에 있어 사랑은 어려운 삶 속에서도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지게 하는 눈물겨운 '힘'인 것이다.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지게 하는 눈물겨운 '힘'인 것이다.
꼭이, 그것을 詩로써 노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