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졸린 눈을 비벼가며 첫 차에 몸을 싣고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
어제의 혼잡함 속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청소를 서두르는 거리의
미화원,
조간신문을 돌리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삐 움직이는
신문배달원,
이렇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우리 어릴 때도 눈 온 새벽이면 동네 골목에 쌓인 눈을 헤치고 첫 발자국 남긴
분들도 그런 분들이었다.
지금 수십 년이 지났건만 오늘도 그들은 새벽을 열고 있었다.
우리 때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종을 딸랑이며 "두부사려!." 외치는 두부장수는
없어지고 바쁜 사람들을 위해 국이나 밥을 배달하는 사람과 녹즙, 아침을 깨워주는 콜 서비스맨 등 직업이 다양해진 것이 다를
뿐이다.
요즘 후배 화집에 평론을 쓸 일이 있어 마무리할 겸 밤을 새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피곤하여 녹차를 끓여 마시고 있는데 조용한 아파트 계단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아마 조간신문을 배달하는 분이라 여겨져 어떤 분인가 하는 궁금증도 있어 거실에 있는
비디오폰 현관/LP를 누르니 모자를 눌러 쓴 아주머니 같아 보인다.
우리 시절엔 대부분 학생들이 신문을 배달했었고 나 역시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을
돌렸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나와 사정은 다르겠지만 아이들 과외비를 벌기위해 새벽을 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이렇게 이른 새벽 우리가 새벽잠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은 별을 보며 누구보다도 가장 부지런하게 새벽을 열고 건강한 가정을 위해 이마에
땀 흘려 가며 고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각 우리 안방에선 "삑삑"하는 시계의 작은 알람 소리가 또 다른 새벽을 열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알람 소리는 꺼지고 집사람이 일어나겠지 하는 추측을 해보지만 알람은
들리지 않고 인기척 또한 없다.
"무슨 일이지?..." 하는 궁금증에 안방을 엿보니 집사람은 일어날 생각은 안하고
시계를 한손에 움켜지고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짐작하건데 알람은 울렸지만 무의식중에 알람을 끄고 다시 자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다가가 조심스레 시계를 손에서 빼내면서 일어날 시간인데 깨울까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요즘 피곤해하는 집사람을 생각한다면 깨울 용기는 나지 않아 내가 아침 준비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젊을 때는 밥 먹듯 밤을 많이 새워도 끄덕 없던 내가 나이 탓인지
갑자기 몰려드는 졸음으로 인해 더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에라 아침은 모두 굶지." 하는 생각으로 그 옆에 쓰러져 자고
말았다.
오전 8시경 집안의 부산한 움직임으로 눈을 뜨니 늦게 일어난 탓인지 아이와 집사람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시계 알람이 잘못 됐나 봐요. 울리지도 않네...덕분에 밥이 아직 안됐어요."하는
집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고 있었다
"응, 그래...이따 내가 알람을 고쳐 놀께..."라고 말을 하면서 알람 끈 것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집사람 늦게 일어난 탓을 알람 책임으로 돌리기로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가진 것이 별로 없어 젊어서부터 맞벌이를 하였다.
덕분에 남보다 일찍 집을 장만했고 안정을 찾아 큰 어려움 없이 보내고 있지만 아직도
집사람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잠이 모자라 집사람은 항상 피곤해 있는 편이다.
그걸 아는 나는 집안일 이것저것을 도와주는 편이지만 집사람 피곤 푸는 데는 도움이
못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고 집사람이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고 정년퇴임까지 다닐 생각을 하고
있으니 집사람의 아침 피곤은 계속될 것이고 그로 인해 오늘과 같이 무의식중에 알람 끄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피곤할지언정 아침에 우리의 가정을 위해 일찍 일어나려는 집사람의 노력은 이어
질것이고 무의식적으로 꺼버린 알람도 새벽을 열고자 하는 집사람의 집념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에서 또는 가정에서 아침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것이고 땀 흘린 의미를 느낄 때 마음들은 따뜻해 질 것이다.
( 퍼 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