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서울 갔을 때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그 중 한 군데가 종로서적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그 서점에서 책을 사고 종로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하던 추억, 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있는 종로, 명동 일대.
종로서적은 별로 변한 게 없었다. 5층까지 올라가는 비좁은 엘리베이터, 좁디 좁은 계단. 3층에서 책을 골랐다. 고등학교 2학년이 읽을 교양필독서적을. 그녀는 내게 골라야 할 책의 목록을 보여주었다. 목록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목록 중에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그 책은 금서였는데 이젠 고등학교 2학년 교양필독서적이 되었다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다.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나는 그 책을 읽어봤는데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는 게 왜 그 책이 금서였는지.
추측해 보건대 독재정권은 민중들 특히 젊은이들이 역사의식을 갖는걸 싫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 하는데 역사란 무엇인가 가 금서가 된 게 그런 이유가 아닐지.
아이들 책을 사고 어른들 책도 한 권씩 샀다.
나는 그녀에게 안도현 시집을 그녀는 내게 체 게바라 평전을.
우리는 인파 속을 걸으며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 와 죽을 때를 이야기 했다.
주인공 에른스트 그레버 와 엘리쟈벳의 절망적 이고 한시적 사랑을. 아니, 우리 자신이 그런 한시적 절망적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종로서적이 부도가 나서 문들 닫았다는 소식을 들은 게 3년 전, 추억의 한 모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